박근혜 지지율 고공행진의 비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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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장외투쟁 중인데 '묻지마 지지율'?

[일요시사=정치팀] 취임 6개월을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취임 6개월 차 지지율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2번째로 높다. 야권이 국정원 사태의 해결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장외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야권 일각에서는 여론조사의 신뢰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취임 6개월을 맞이했다. 5년의 임기 중 10분의 1이 지난 것이다. 취임 6개월을 맞이한 박 대통령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9~22일 전국 성인 남녀 12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8%p) 박 대통령은 59%의 지지율을 기록해 전주 대비 지지율이 5%p나 상승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취임 6개월차 역대 대통령 지지율 중 2위에 해당한다.

역대 2위 지지율
야권은 어리둥절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만 하더라도 국정지지도가 40%대를 맴돌며 취임 1년차 1분기 역대 대통령 최저 지지율 기록을 잇달아 갱신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취임 6개월 차에 역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대통령은 14대 김영삼 대통령(83%)이었고,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56%,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53%였다. 16대 노무현 대통령은 29%, 17대 이명박 대통령은 23%로 역대 대통령 중 취임 6개월차 지지율 꼴찌를 차지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청와대 개방과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를 단행해 큰 인기를 얻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고, IMF 구제금융 위기 때 강한 리더십으로 국민통합을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도 앞서는 기록이다.

이 같이 높은 지지율은 야권이 국정원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최악의 정치상황 속에서 얻은 성과라 더욱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야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야권의 장외투쟁 속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얻자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 보수결집 효과
비정상의 정상화, 진보진영도 지지

이들은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심할 경우 지지율의 격차가 25% 가까이 벌어지기도 한 점과 같은 내용이라도 질의 방식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얼마든지 상이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6개월은 원칙과 신뢰를 쌓는 토대를 만드는 기간이었다"며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초기 지지율이 하락했던 반면 박 대통령은 지난 6개월간 꾸준히 상승했다. 국민들이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착각해선 안 된다. 지지 이유가 분명치 않고 견고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신기루 같은 환상거탑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도 "지난 지지율은 정치적 허니문 기간에 나온 국민의 기대심리"라며 "초기 인사 문제나 기초연금 4대중증질환 등 공약 말 바꾸기, 전력대란 세금대란 등 각종 대란이 발생해도 국민 지지가 높으니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박 대통령은 스스로 수렁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일단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장외투쟁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입장이지만 새누리당은 결산국회와 정기국회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장외투쟁을 반대하는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지지율 질주
장외투쟁도 못 막아


박 대통령의 취임 후 6개월간의 지지율 변화 추이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54.8%의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 당시 얻은 득표율 51.6%보다 높은 지지율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고,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김학의 법무부 차관 등 장차관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지지율은 급락했다.

3월 마지막주 지지율은 45%대까지 떨어졌다. 4월에는 지지율이 다시 조금씩 올랐다. 특히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 박 대통령이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의 도발 위협에 적절히 대처했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보수층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5월은 다시 시련의 시간이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과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면서 5월 첫째 주 지지율은 50%를 넘어섰고 둘째 주 지지율은 취임 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방미 중 성추행사건이 발생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p 가량이나 급락했다. 이외에도 중국 방문, 증세논란, 국정원 국정조사, NLL 대화록 논란 등 주요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요동쳤다.

그렇다면 취임 6개월차를 맞이해 국정원 사태와 증세논란 등을 겪으면서도 공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많은 정치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의 이유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꼽는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들 중 28%는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사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처음부터 큰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를 게 없다는 평가와 함께 남북대결 구도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북한의 개성공단 중단 위협 이후 시종일관 단호한 대처로 결국 개성공단 협상 타결을 이끌어 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대북관계에 있어 '저자세 외교' 논란을 겪어왔던 것을 감안하면 개성공단 협상타결 과정에서의 북한의 태도변화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군통수권자다. 대선기간부터 과연 여성 군통수권자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려의 시각들이 많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 미사일 발사 위협 등으로 이어지는 강도 높은 도발 위협을 겪으면서도 이를 비교적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나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점이 높은 지지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단호한 대북정책

특히 안보는 보수세력을 집결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평소 진보진영의 대북정책을 '북한에게 끌려다니기만 한다'며 비판해왔던 보수진영에서는 박 대통령의 단호한 대북기조를 환영했고, 이를 계기로 보수가 결집하면서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뒷받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박 대통령은 내치에서는 인사잡음과 대선공약 후퇴 논란, 국정원 사태 등으로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지만 성공적인 방미, 방중 등 주로 외교적인 부분에서 이를 만회했다는 평가다.

두 번째 이유는 박 대통령의 ‘선긋기 전략’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NLL과 국정원 등 각종 정치적 이슈가 부각됐음에도 정치현안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민생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치전문가들은 "야권이 박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해도 대응하지 않고 민생에만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온 박 대통령의 대응은 일각에선 불통이라며 비판을 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안정적 국정운영을 하는 것으로 보인 것"이라며 "박근혜정부 출범 후 연일 이어진 정쟁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와 선 긋기, 불통 또는 민생
높은 지지율 이유로 일방통행은 안돼

다른 정치전문가도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어 논란이 될 만한 발언들을 여러 차례 하는 바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박 대통령의 침묵은 국민들에게 오히려 묵직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안정감을 주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이유는 박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며 이를 새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모토로 삼아왔다. 그 결과 이전 정부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개혁이 실시되고 있다. 이 같은 개혁이 박 대통령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진보진영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는 평가다.

비정상의 정상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추징금 환수 작업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대법원이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했으나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며 이중 1672억원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던 전 전 대통령과 그 일가는 이후에도 호화 생활을 영위하며 국민들을 우롱해왔다.

복합적 요인
차분히 돌아봐야

그러다 박근혜정부 들어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검찰은 수사를 통해 경기도 오산 땅과 서울 한남동 땅 등 800억원대에 이르는 전 전 대통령 일가 소유 재산을 압류하고,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처남 이창석씨를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근혜정부 들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기업 총수 비리에 대한 수사 역시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총수에 대한 수사와 판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엄격해졌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박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권 초반 기대 심리 탓이라는 분석과 지역과 보수진영을 기반으로 한 콘크리트 지지층의 존재 때문이라는 분석, 야권의 실책에 따른 반사효과라는 분석 등이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이처럼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며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임기 초반 힘 있게 국정을 펼쳐나가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론 높은 지지율에 도취해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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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