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정영주

"소외된 이들의 추억, 주인공으로 그리죠"

[일요시사=사회팀]사람들은 흔히 시공을 넘나든다는 말을 쓴다. 여기서 시공은 시간과 공간. 예술은 이 시간과 공간을 비틀어 관객에게 특별한 정서적 경험을 안겨준다. 정영주 작가의 그림은 이 시공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른바 시공을 허문 초현실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프랑스 유학파인 정영주 작가는 집이라는 공간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온 국내 미술계의 주목받는 블루칩이다. 그의 주된 작업 모티브는 산동네와 판자촌 그리고 마천루가 거세된 도시 한편의 서정성이다. 정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그리운 마음 담아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소외된 것들과 잊혀진 것들을 그 속에서 끄집어내어 그들의 파라다이스로 바꿔보고 싶다. (중략) 거대한 빌딩 속에서 소외된 채 숨어 살고 있는 판잣집과 숨겨진 추억들을 과감하게 등장시켜 그들에게 주인공의 역할을 부여해주고 싶다."

최근 경기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9번째 개인전을 연 정 작가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가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산동네가 등장했다.

"저는 산동네에서 태어났고,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한때는 부모님이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죠. 구박받는다는 기분? 그래서인지 한국에 있을 때는 굉장히 내성적이었어요. 지금은 작업을 통해 제 성격을 스스로 극복했지만 아직 소외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많아요. 어쩌면 그 어린 날의 여러 가지 모습이 집이라는 공간으로 압축돼서 표현된 것일 수 있죠."


정 작가는 대학시절 프랑스문화원을 1주일에 1번씩 들르며 프랑스 유학을 꿈꿨다. 그에게 유학은 억압된 현실의 출구이자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유럽 유학생활을 마친 정 작가는 90년대 중후반 세계 미술계의 큰 흐름을 따라 뉴욕으로 갔지만 예술가가 거대 도시에 압도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유럽에 있다가 서울에 오면 굉장히 다이나믹해요. 여기서 다이나믹은 굉장히 순화된 표현이고요(웃음). 그런데 전 이런 다이나믹함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어찌됐든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돌아다닌 것 같아요. 서울에서 시골로 다시 서울로 대학에 왔다가 외국으로 또다시 서울로 부산으로…. 그때마다 느낀 정착하고 싶다는 욕구. 어쩌면 제가 집이란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런 결핍된 무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산동네 판잣집 주제로 활동  
한지 소재로 '콜라주' 작업 주목

정 작가는 한지를 소재로 한 콜라주(혹은 파피에콜레)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의 소재인 집도 굉장히 한국적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정 작가에게 '유학을 왜 갔느냐'고 묻는다.

"저는 유학을 가면서 다 버리고 새로 출발해야 한다는 결심을 세웠어요. 진짜 내 것이 무엇인가란 고민이 있었고요. 우리처럼 획일적인 문화에 매몰돼 있었다면 지금의 작품이 나올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당시 미디어아트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미술이 유행했지만 전 저한테 맞는 작업이 제일 정직한 작업이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구성이나 형식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정 작가는 "어릴 때 갖고 있던 기억을 매개로 새로운 가상의 공간을 그림 안에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한지의 따뜻한 물성과 입체감은 매끈한 캔버스와 대비돼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무엇보다 이국적인 색감의 조합은 때론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때론 신비로운 느낌으로 관객들을 흡인한다.




"전 제 그림을 통해 인간의 따뜻한 정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평소 집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너무 럭셔리해선 안 되고, 들어갔을 때 아늑한 정말 인간 친화적인 집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그림도 보면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면 좋겠어요. 집이 가진 생명력처럼요."


정직한 작업

정 작가의 그림에서 빛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연의 빛을 그대로 담는 물성을 지닌 한지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정 작가가 그린 야경에는 빛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빛은 시각적으로 시선을 모아주기도 하고, 구성적으로는 생명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빛의 향연은 그림 안의 시간의 흐름을 멈춘 채 무한한 공간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정 작가의 그림은 그래서 정박된 영원함에 대한 갈구다. 그리고 이 같은 주제의식을 연출하는 그의 감각은 탄성을 자아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정영주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94)
▲프랑스 에꼴데보자르 회화과(97) 졸업
▲갤러리고도 기획전(13), 무이갤러리 기획전(09) 등 개인전 9회
▲서울옥션(12), 현대미술-루트전(11) 등 그룹전 60여회
▲KCAF 한국현대미술제 개인부스전(12) 등 다수 아트페어 참여
▲홍익대·경성대·동의대 등 강사 역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