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이어져온 대한민국 계파정치 현주소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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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줄 잘서야 크는 정치판 "줄을 서시오 줄을…"

[일요시사=정치팀] 계파정치를 빼놓고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이야기 하긴 힘들다. 1970년대 이후 계파정치는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좌우하는 큰 흐름이었고, 4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계파정치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계파정치는 군사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이후 정치권은 계파정치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계파정치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될까? 대한민국 계파정치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4주기 추도식이 지난 18일 엄수됐다.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1970년대 이후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해왔던 계파정치의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 4년 만에 뿔뿔이 흩어졌다. 정치권에서 이들이 동고(同苦)는 했지만 동락(同樂)은 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교동계의 현재다.

동교동계
상도동계

우리나라의 계파정치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은 옛 봉건영주가 가신을 보호해주는 데서 비롯된 일본식 파벌정치가 우리나라로 유입돼 군사독재시절 변형되면서 시작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야권은 DJ(김대중)와 YS(김영삼)로 나뉘어 각각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결집하며 이후 우리나라 정치권만의 독특한 계파문화를 만들었다.

계파정치란 특정 정치계파의 이해관계를 놓고 정치적인 해석이나 정치행위를 하는 것을 뜻하는데, 계파정치인들은 계파의 수장이 내세우는 정치적 주장에 뜻을 함께하며 따르고, 보스는 따르는 정치인들의 미래까지 책임져주며 살폈다.

과거 정상적인 정치활동이 어려웠던 군사정권 시절 서슬 퍼런 탄압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우리나라 특유의 계파정치는 이처럼 불가피한 면이 있었지만 그 부작용은 심각했다. 기본적으로 계파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계파 보스만을 바라보는 정치다. 계파 간의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국민은 뒷전이었고, 계파 간 주도권을 잡기위한 정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계파정치 양대산맥 동교동-상도동계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 '견원지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정치인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이른바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해졌고, 당내 화합을 저해하고 '끼리끼리' 문화를 조장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켰다. 게다가 과거 계파정치의 대표적인 사례인 DJ의 동교동계와 YS의 상도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계파정치는 이후에도 친노(친노무현),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으로 이어지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여야가 최근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계파청산을 부르짖고 있는 이유다. 지난 5·4전당대회 이후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가장 먼저 계파청산을 언급한 것도,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의원이 한 언론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친박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계파도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며 계파청산을 강조했던 것도 모두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불가피한 선택
부작용은 심각

먼저 동교동계는 DJ가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됐다가 5·16군사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이듬해 3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그 명칭의 뿌리가 생겼다.

그러나 동교동계라는 이름이 정치권과 언론에 본격 등장한 것은 지난 1973년 DJ가 일본 도쿄에서 납치사건을 겪고 생환한 뒤 가택연금조치를 당한 것을 당시 언론이 박정희정권의 압력으로 '김대중'이라는 이름 대신 '동교동계 재야인사'라는 익명으로 보도하면서 부터다.

DJ는 동교동 집에서 가택연금 등을 겪으면서 고통과 침묵의 세월을 측근들과 함께 보냈다. 1979년에는 경찰이 DJ를 감시하기 위해 동교동 사저 부근에 주택 3채를 구입해 사용했는데, YS의 집권 후인 1994년에야 감시용 주택이 매각됐을 정도로 동교동은 오랜 세월 군사독재정권의 집중적인 감시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신과 비서 그룹이 형성됐고, 이들은 군부정권 하에서 고문과 투옥을 겪으면서도 주군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충실하게 보좌 했다.

이렇게 형성된 동교동계는 YS의 상도동계와 함께 군사독재 시절 제도정치권 내 민주화세력의 양대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고, DJ가 1995년 경기도 일산으로 자택을 옮긴 뒤에도 동교동계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DJ가 집권하면서 동교동계는 당정을 아우르는 막강한 파워그룹으로 떠올랐고 집권기간 내내 줄곧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됐다.

국회에선 동교동계 실세의 이름들이 각종 비리의혹과 함께 거명됐고, 권노갑-한화갑 두 사람의 '양갑' 갈등 속에서 구파, 신파 등으로 불리며 사실상 계파가 갈리기도 했다.



동교동계와 함께 한국 현대정치의 양대산맥을 형성했던 상도동계도 YS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1998년 YS의 퇴임을 전후해 내부 알력으로 사분오열되면서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걸었다. 상도동계 수장이었던 한나라당 최형우 전 고문과 2인자였던 서석재 전 의원은 민주산악회와 나사본 등 사조직 장악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을 벌였고, 다른 한편에선 YS의 차남 김현철씨와 김덕룡 전 의원이 세대결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15대 대선과정을 거치며 상도동계는 이회창, 이인제 당시 대선경선후보에 대한 지지여부에 따라 한나라당 잔류파와 국민신당파로 분열됐고, 한나라당 잔류파도 신주류와 비주류로 다시 분류되면서 구심점을 잃었다.

또 작년 18대 대선을 거치면서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마구 뒤섞여 박근혜 후보 진영과 문재인 후보 진영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한때 대한민국 정치권을 쥐고 흔들었던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그야말로 사분오열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계파정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정치권을 크게 보면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민주당은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져 있다. 기존 정치판을 뒤엎겠다며 호기롭게 출발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노계였지만 친노계 조차 정권 중반부터는 서로 반목을 거듭하며 갈라서기 시작했다.

친박 대 친이
반복되는 역사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지지도가 눈에 띄게 하락한 2006년부터는 대권을 노리는 차기 주자들의 차별화 행보가 노골화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인 2009년에는 친노계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수사가 이뤄지면서 노무현정부 시절의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비리혐의에 연루돼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약화되어 가던 친노계는 역설적이게도 그해 노 전 대통령이 비리 수사에 대한 압박감을 이유로 서거하자 이를 계기로 부활하게 된다.

친노계는 여전히 민주당 내 주류이며 민주당 내 계파갈등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민주당 내에서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친노계는 한편으론 민주당을 든든하게 떠받치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민주당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선 패배 직후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민주당 의원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안 팔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있느냐"며 친노계를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친박의 분화 "친박에도 급이 있다"
계파정치 청산, 정녕 요원한 꿈인가?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에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새롭게 부상하며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다. 특히 대선후보경선 당시에는 친이계와 친박계가 계파 수장의 당선을 위해 사활을 걸고 싸웠다. 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 당내 경선에서의 승리가 곧 대권승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경선 당시에는 같은 당이라도 친이계와 친박계는 함께 밥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계파갈등이 극심했다. 결국 대선경선은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고, 경선에서 패배한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게 적극 협력하기로 하며 계파갈등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친이계는 집권 초기부터 불협화음을 내더니 결국엔 이상득-정두언계로 쪼개져 사사건건 싸웠다. 게다가 대선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친박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자 양 계파간의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부 친박계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연대라는 이름으로 총선 출마를 강행했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끝없는 분화
끝없는 싸움

이후 친박계는 한나라당 내에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4년 뒤 19대 총선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이 전 대통령이 총선 당시 '살아있는 권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이학살’이라 불리는 공천이 이뤄진 것이다. 현재는 새누리당 내에서 소수인 친이계가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며 박 대통령을 견제하고 있는 모양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2006년 박 대통령이 임시 당대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친박계는 그동안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해왔다. 그 절대적인 기준은 박 대통령과의 거리. 친박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탈박(脫朴), 상대적으로 친박성향이 덜한 범박(汎朴), 원조 친박이라고 해서 원박(元朴), 중립성향이지만 박 대통령에게 호감을 가진 호박(好朴), 박 대통령의 영향력 확대로 친이계에서 친박으로 넘어온 월박(越朴) 등의 신조어들이 꾸준히 생겨난 것은 이 같은 세력변화를 잘 말해준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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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