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이어져온 대한민국 계파정치 현주소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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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줄 잘서야 크는 정치판 "줄을 서시오 줄을…"

[일요시사=정치팀] 계파정치를 빼놓고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이야기 하긴 힘들다. 1970년대 이후 계파정치는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좌우하는 큰 흐름이었고, 4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계파정치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계파정치는 군사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이후 정치권은 계파정치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계파정치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될까? 대한민국 계파정치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4주기 추도식이 지난 18일 엄수됐다.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1970년대 이후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해왔던 계파정치의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 4년 만에 뿔뿔이 흩어졌다. 정치권에서 이들이 동고(同苦)는 했지만 동락(同樂)은 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교동계의 현재다.

동교동계
상도동계

우리나라의 계파정치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은 옛 봉건영주가 가신을 보호해주는 데서 비롯된 일본식 파벌정치가 우리나라로 유입돼 군사독재시절 변형되면서 시작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야권은 DJ(김대중)와 YS(김영삼)로 나뉘어 각각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결집하며 이후 우리나라 정치권만의 독특한 계파문화를 만들었다.

계파정치란 특정 정치계파의 이해관계를 놓고 정치적인 해석이나 정치행위를 하는 것을 뜻하는데, 계파정치인들은 계파의 수장이 내세우는 정치적 주장에 뜻을 함께하며 따르고, 보스는 따르는 정치인들의 미래까지 책임져주며 살폈다.

과거 정상적인 정치활동이 어려웠던 군사정권 시절 서슬 퍼런 탄압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우리나라 특유의 계파정치는 이처럼 불가피한 면이 있었지만 그 부작용은 심각했다. 기본적으로 계파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계파 보스만을 바라보는 정치다. 계파 간의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국민은 뒷전이었고, 계파 간 주도권을 잡기위한 정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계파정치 양대산맥 동교동-상도동계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 '견원지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정치인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이른바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해졌고, 당내 화합을 저해하고 '끼리끼리' 문화를 조장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켰다. 게다가 과거 계파정치의 대표적인 사례인 DJ의 동교동계와 YS의 상도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계파정치는 이후에도 친노(친노무현),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으로 이어지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여야가 최근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계파청산을 부르짖고 있는 이유다. 지난 5·4전당대회 이후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가장 먼저 계파청산을 언급한 것도,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의원이 한 언론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친박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계파도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며 계파청산을 강조했던 것도 모두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불가피한 선택
부작용은 심각

먼저 동교동계는 DJ가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됐다가 5·16군사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이듬해 3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그 명칭의 뿌리가 생겼다.

그러나 동교동계라는 이름이 정치권과 언론에 본격 등장한 것은 지난 1973년 DJ가 일본 도쿄에서 납치사건을 겪고 생환한 뒤 가택연금조치를 당한 것을 당시 언론이 박정희정권의 압력으로 '김대중'이라는 이름 대신 '동교동계 재야인사'라는 익명으로 보도하면서 부터다.

DJ는 동교동 집에서 가택연금 등을 겪으면서 고통과 침묵의 세월을 측근들과 함께 보냈다. 1979년에는 경찰이 DJ를 감시하기 위해 동교동 사저 부근에 주택 3채를 구입해 사용했는데, YS의 집권 후인 1994년에야 감시용 주택이 매각됐을 정도로 동교동은 오랜 세월 군사독재정권의 집중적인 감시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신과 비서 그룹이 형성됐고, 이들은 군부정권 하에서 고문과 투옥을 겪으면서도 주군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충실하게 보좌 했다.

이렇게 형성된 동교동계는 YS의 상도동계와 함께 군사독재 시절 제도정치권 내 민주화세력의 양대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고, DJ가 1995년 경기도 일산으로 자택을 옮긴 뒤에도 동교동계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DJ가 집권하면서 동교동계는 당정을 아우르는 막강한 파워그룹으로 떠올랐고 집권기간 내내 줄곧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됐다.

국회에선 동교동계 실세의 이름들이 각종 비리의혹과 함께 거명됐고, 권노갑-한화갑 두 사람의 '양갑' 갈등 속에서 구파, 신파 등으로 불리며 사실상 계파가 갈리기도 했다.



동교동계와 함께 한국 현대정치의 양대산맥을 형성했던 상도동계도 YS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1998년 YS의 퇴임을 전후해 내부 알력으로 사분오열되면서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걸었다. 상도동계 수장이었던 한나라당 최형우 전 고문과 2인자였던 서석재 전 의원은 민주산악회와 나사본 등 사조직 장악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을 벌였고, 다른 한편에선 YS의 차남 김현철씨와 김덕룡 전 의원이 세대결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15대 대선과정을 거치며 상도동계는 이회창, 이인제 당시 대선경선후보에 대한 지지여부에 따라 한나라당 잔류파와 국민신당파로 분열됐고, 한나라당 잔류파도 신주류와 비주류로 다시 분류되면서 구심점을 잃었다.

또 작년 18대 대선을 거치면서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마구 뒤섞여 박근혜 후보 진영과 문재인 후보 진영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한때 대한민국 정치권을 쥐고 흔들었던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그야말로 사분오열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계파정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정치권을 크게 보면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민주당은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져 있다. 기존 정치판을 뒤엎겠다며 호기롭게 출발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노계였지만 친노계 조차 정권 중반부터는 서로 반목을 거듭하며 갈라서기 시작했다.

친박 대 친이
반복되는 역사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지지도가 눈에 띄게 하락한 2006년부터는 대권을 노리는 차기 주자들의 차별화 행보가 노골화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인 2009년에는 친노계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수사가 이뤄지면서 노무현정부 시절의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비리혐의에 연루돼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약화되어 가던 친노계는 역설적이게도 그해 노 전 대통령이 비리 수사에 대한 압박감을 이유로 서거하자 이를 계기로 부활하게 된다.

친노계는 여전히 민주당 내 주류이며 민주당 내 계파갈등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민주당 내에서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친노계는 한편으론 민주당을 든든하게 떠받치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민주당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선 패배 직후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민주당 의원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안 팔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있느냐"며 친노계를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친박의 분화 "친박에도 급이 있다"
계파정치 청산, 정녕 요원한 꿈인가?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에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새롭게 부상하며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다. 특히 대선후보경선 당시에는 친이계와 친박계가 계파 수장의 당선을 위해 사활을 걸고 싸웠다. 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 당내 경선에서의 승리가 곧 대권승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경선 당시에는 같은 당이라도 친이계와 친박계는 함께 밥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계파갈등이 극심했다. 결국 대선경선은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고, 경선에서 패배한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게 적극 협력하기로 하며 계파갈등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친이계는 집권 초기부터 불협화음을 내더니 결국엔 이상득-정두언계로 쪼개져 사사건건 싸웠다. 게다가 대선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친박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자 양 계파간의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부 친박계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연대라는 이름으로 총선 출마를 강행했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끝없는 분화
끝없는 싸움

이후 친박계는 한나라당 내에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4년 뒤 19대 총선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이 전 대통령이 총선 당시 '살아있는 권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이학살’이라 불리는 공천이 이뤄진 것이다. 현재는 새누리당 내에서 소수인 친이계가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며 박 대통령을 견제하고 있는 모양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2006년 박 대통령이 임시 당대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친박계는 그동안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해왔다. 그 절대적인 기준은 박 대통령과의 거리. 친박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탈박(脫朴), 상대적으로 친박성향이 덜한 범박(汎朴), 원조 친박이라고 해서 원박(元朴), 중립성향이지만 박 대통령에게 호감을 가진 호박(好朴), 박 대통령의 영향력 확대로 친이계에서 친박으로 넘어온 월박(越朴) 등의 신조어들이 꾸준히 생겨난 것은 이 같은 세력변화를 잘 말해준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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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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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