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자' 김한길 벼랑 끝 승부수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26 15: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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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 회군이냐 무작정 진군이냐 '진퇴양난 외통수'

[일요시사=정치팀] 이제 갓 당대표 취임 100일을 넘긴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야심차게 시작한 국정원 국정조사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나버렸고, 청와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장외투쟁까지 불사했던 민주당은 이제 와서 국회로 회군할 수도, 그렇다고 무작정 진군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김 대표는 본인의 정치생명을 건 벼랑 끝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11일 서울 시청광장에 마련된 임시 천막상황실에서 초라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김 대표의 아버지 고(故) 김철 전 통일사회당 당수의 기일이기도 했다.

취임 100일을 맞이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대표는 폭염 때문에 연신 땀을 닦아내면서도 "날이 갈수록 힘이 난다"며 애써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수척해진 얼굴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김한길의 위기
건강까지 악화

김 대표는 5월4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체중이 6kg 이상이나 빠졌다고 한다. 지난 1일부터는 최악의 폭염 속에서 장외투쟁을 주도해오면서 과로, 불면증 등에 시달리며 건강에 적신호까지 켜졌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여러모로 현재 김 대표가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했다.

김 대표는 '국정원 정국'이 불거진 이후 밤낮 없이 뛰어다녔다. 취임 후 100일 동안 총 1만3338㎞를 이동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김 대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는 김 대표의 리더십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렵게 성사시킨 국정원 국정조사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더욱 힘이 실리는 몇 가지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기엔 부족했다. 민주당이 국정원 국정조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을 감안한다면 그 결과물은 초라하기만 하다.

국정조사가 끝난 후 민주당은 국정원과 경찰의 범죄 행위가 드러났다고 자평했지만 국정조사만을 벼르고 벼르던 민주당이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6일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청문회였다.

침묵 중인 청와대, 퇴로 닫힌 민주당
장외투쟁 거둘 명분 없어 '진퇴양난'

민주당은 그동안 장외투쟁에서 "'원판김세(원세훈, 김용판, 김무성, 권영세)' 안 나오는 국정조사는 무효"라며 두 사람의 청문회 출석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장외투쟁의 구호로 사용할 만큼 원하던 인물들이 국정조사장에 출석했지만 이날 청문회에서 민주당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질문은 이미 공개된 공소장 내용 위주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예리한 추궁을 통해 증인에게서 결정적인 진술을 받아낸 것도 아니었다.

다만 민주당 특위위원들은 질문순서가 돌아오면 두 사람의 답변 태도 등을 문제 삼아 호통을 치는 데 더 열을 올렸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청문회를 지켜본 후 "민주당이 두 사람의 증인출석을 왜 그토록 원했는지 모르겠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고 증인들이 이를 전면부인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냥 두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부른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국정조사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여야 특위위원들의 폭언과 막말 등으로 점철되면서 국민들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국정조사가 이런 식으로 끝이 나면서 김 대표는 현재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전면적인 장외투쟁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국회로 회군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국정조사 실패
극에 달한 실망감

일단 민주당은 현재 원내외 병행투쟁을 선언한 상태다. 장외투쟁을 계속하면서도 국회 일정이 있을 때에는 국회로 돌아와 민생에 차질이 없도록 협력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국정조사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만큼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중단하고 국회로 복귀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민주당은 이 같은 예측을 일축했다.

지난 19일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일부 언론에서 '민주당이 조만간 장외투쟁을 접을 것이다', '장외투쟁 회군을 고심하고 있다'와 같은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은 현재 원내외투쟁을 병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어떤 원내활동 및 국회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미 국회에 와 있고, 그러면서도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원외투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장외투쟁의 장기화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하지만 문제는 원내외 병행투쟁이 과연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카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민주당이 현재 실시하고 있는 원내외 병행투쟁은 국회활동에 충실하며 장외투쟁을 이어 가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한 정치 전문가는 "민주당의 원내외 병행투쟁은 한 마디로 일은 정상적으로 하면서 업무 외 시간에 파업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착한 파업'이라면 과연 사업주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겠느냐?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국정 정상화를 위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4가지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 ▲성역 없는 책임자 처벌 ▲국회가 중심이 된 국정원의 개혁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그것이다. 하나같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요구조건들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국정원 정국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면 원내외 병행투쟁을 철회하고 전면적인 장외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판단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만약 민주당이 전면적인 장외투쟁으로 나설 경우 결산국회는 물론 다음 달 정기국회까지 연계해서 투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면적인 장외투쟁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카드다. 자칫 민주당이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이 요구하고 있는 4가지 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인데 대통령의 사과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의혹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 자칫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정통성마저 흔들릴 수 있는 문제다. 민주당이 전면적인 장외투쟁에 나선다면 대통령의 사과 없이는 복귀가 힘들다.

결국 양쪽 모두 끝없는 평행선만 그리다 탈출구가 없는 정쟁의 수렁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게다가 현재로선 박 대통령이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사과를 너무 끈질기게 요구하다보면 민주당에 역풍이 불 가능성도 크다. 현재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무려 60%대에 육박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대통령 사과?
증거도 없는데

민주당 내부에서는 특별검사제를 통해 끝까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민주당 국조특위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조는 문제 해결을 위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새누리당의 감싸기로 김ㆍ세(김무성, 권영세)에 대한 증인채택이 안된 만큼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특검 카드를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은 채 여론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현재로선 국정조사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마당에 특검제를 도입할 마땅한 명분이 없는데다 여권에서는 특검 요구를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몰고 가고 있고 특검 역시 결론 없이 정쟁만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에서 알 수 있듯이 역대 특검에서 기소된 인사 중 상당수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 특검이 실시될 때마다 특검무용론이 불거졌었다. 특검을 통해 무엇인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섣불리 발 빼려다간 오히려 '역풍'
당내 강경파 반발 이견도 너무 커

그렇다고 민주당 입장에서는 회군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장외투쟁이 길어지면서 여론이 민주당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민주당으로서는 회군에 대한 마땅한 명분이 없다. 국정원 사건의 핵심인 박 대통령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인이 회동을 하고 국정원 선거개입 재발방지 약속을 천명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현재 서울시청 광장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하야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발방지선언 정도로 그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때는 그들과 함께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민주당이 재발방지선언에 만족하고 먼저 발을 뺐다간 지금까지 촛불세력을 이용만 하고 배신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또 현재 국정원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국회 주도의 국정원 개혁안 마련 등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조건 중 어느 것 하나 성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야 간의 대결 구도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민생 앞세워 회군?
정치적 외통수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유일한 명분인 '민생'을 앞세워 회군한다고 해도 회군에 따른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것이란 전망이다. 또 회군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당내 강경파들의 거센 반발을 감수해야만 한다.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당이 깨질 것까지 각오해야 하는 결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최근 국정원 정국과 관련해 김 대표가 외통수에 빠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회군이든 진군이든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책임은 당대표가 모두 짊어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김 대표가 국정원 정국에 떠밀려 중도사퇴를 하게 된다면 김 대표는 앞으로 상당기간 다시 당 전면으로 나서기는 힘들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반대로 김 대표가 국정원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게 된다면 그의 당내 영향력은 크게 높아지게 된다. 벼랑 끝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김 대표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내리게 될까?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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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