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역대 대통령 고향 발전사 엿보기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12 11: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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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면 "당연한 것!" 낙후되면 "웬 역차별?"

[일요시사=정치팀] 국내 경기가 아무리 냉랭해도 대통령의 고향은 불황이 없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취임한 후 대통령의 고향이 급격하게 발전하며 특혜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의 고향은 늘 주목을 받아왔다. 이처럼 지역주의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구태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들의 고향은 그동안 어떤 특혜를 받아왔던 것일까? <일요시사>가 역대 대통령의 고향 발전사를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이었다. 게다가 이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는 줄곧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광복 이후 국내로 돌아왔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이 국내엔 없었고 지연을 이유로 특혜를 입은 지역도 딱히 없었다.

대통령의 힘
대도시로 탈바꿈

이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한 윤보선 전 대통령의 고향은 충청남도 아산이었지만 윤 전 대통령 역시 채 2년이 되지 않은 임기로 고향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대통령의 고향이 본격적으로 혜택을 입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였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은 경북 구미다.

구미는 역대 대통령 고향 중 가장 크게 성장한 도시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구미는 인구 2만의 작은 농업도시였지만 박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구미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현재는 연간 350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국가산업의 전진기지로 발돋움 했다.

정부가 구미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게 된 것은 구미가 풍부한 용수와 노동력, 편리한 교통 등 내륙이지만 수출 공업단지에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미가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고향발전을 염두에 두고 구미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묻지마 투자'로 야당 반발 직면하기도
취임만 해도 기대심리로 부동산 호황

박 전 대통령이 고향발전을 염두에 두고 구미에 산업단지를 조성한 것인지 단지 입지조건이 맞았기 때문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어찌됐든 박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인구 2만의 구미시는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인구 50만의 경북 제1의 도시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이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최 전 대통령의 고향은 강원도 원주시. 하지만 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를 1년도 채 지키지 못했다. 최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단 기간 대통령직을 역임했다는 불명예스런 기록의 소유자다. 당연히 고향이 혜택을 받을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최 전 대통령은 대통령 시절 자신의 모교인 원주초등학교의 도서관 신축을 위해 금일봉을 전달하고 편지도 직접 써 보냈으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정관계 인사들과 만날 때면 낙후된 강원도와 원주 발전을 위해 신경 써 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후문이다.

수십년 묵은 사업도
한마디에 OK

최 전 대통령에 이어 권좌를 차지한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전 전 대통령의 고향은 경남 합천이다. 전 전 대통령의 고향 사랑은 무척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합천은 인근에 지방도가 새로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큰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나마 가장 큰 변화는 전 전 대통령이 합천에 합천댐을 건설한 것이다. 합천댐은 전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1984년 4월 본격 착공해 1988년 12월 준공했다. 합천은 다목적댐인 합천댐의 건설로 홍수조절과 수력발전은 물론이고 훗날 관광지로 변모하며 크게 발전했다. 합천댐 건설과 도로정비는 전 전 대통령의 막후지원이 큰 힘이 됐다.


합천댐은 일제시대부터 계획이 있었지만 수십 년 동안 실행되지 못했던 것을 전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실행에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 역시 합천댐의 건설이 합천군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취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향은 대구시 동구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은 역대 대통령 고향 가운데 가장 변화가 없는 곳으로 손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고향인 대구시 동구 팔공산 자락에 순환도로를 내 시민들의 팔공산 접근성을 크게 높였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발전 현황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원성이 높다는 후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고향인 경남 거제시는 한때 'IMF도 피해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특히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잠재적인 발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거가대교는 김 전 대통령 생가가 위치한 거제시 장목면과 부산 강서구 천성동 가덕도를 잇고 있다.

거제시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과거 어촌마을이었던 거제시는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초대형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크게 발전했고 1인당 국민소득 역시 울산, 구미, 포항, 창원 등과 함께 전국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평가는 야박하다. 조선소가 없었으면 거제도는 죽은 도시라는 것이다. 사실상 김 전 대통령은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은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로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호남출신 인사였다. 역대 정권을 거치며 소외감을 느꼈던 호남에서는 김 전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하의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나 떨어진 섬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김 전 대통령은 실질적 정치적 고향인 목포 발전에 많은 투자(?)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많은 예산을 투입해 목포대교, 북항과 신항, 쌍둥이 빌딩 등 목포 미래 발전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특히 목포-광양 고속도로는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예비타당성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의 임기 중 예산이 본격 투입돼 건설됐다.



김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가 고향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중 김해시는 전체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도로가 확장됐으며 주변에 아파트들도 많이 들어섰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예산을 몰아줬다고는 볼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은 특이하게도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한 후 더욱 발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간 첫 대통령이었다. 논과 밭이 즐비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던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들어서고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묘역까지 이곳에 마련되면서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리게 됐다.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시설들이 속속 들어서며 발전을 거듭했다. 이후 봉하마을에는 165억원이 투자돼 종합복지관, 정자, 생태연못, 생태체험장 등을 갖춘 '웰빙 생태마을'로 변신했다.

관광객 행렬
또 다른 부수입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애정을 쏟았던 친환경 생태농업이다. 노 전 대통령 덕에 홍보효과는 높았고 친환경 무농약쌀인 봉하쌀은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경남도가 발표한 지역별 인구증감 추세에 따르면 김해시는 도내 인구증가율 1위를 차지했다. 김해시는 지난 2010년 10월4일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15번째로 인구 50만명을 돌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본 태생이다. 하지만 실질적 고향은 경북 포항.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매년 예산심사 때마다 자신의 고향이자 이 전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에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과도하게 책정해줘 논란을 겪었다.

이른바 '형님예산' 논란이었다. 당시 야당이 지목한 형님예산 사업은 포항~삼척철도건설(1100억원)과 울산~포항복선전철(2200억원), 포항영일만신항인입철도(100억원), 포항영일만항(126억원) 등이었다.

사실 이 전 대통령의 대구·경북(TK)사랑은 유별났다. 이 전 대통령은 경북 포항출신으로 명실상부 TK정치인이었지만 TK지역에서 지지기반이 유독 약했다. 때문에 더욱 TK지역에 신경을 썼던 것이다.

살림살이는 나아졌는데 만족은 못해
고향 특혜냐 배신이냐 대통령의 딜레마

이상득 전 의원이 "이 대통령의 약점은 대구·경북 사람들이 대통령을 고향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동생이기는 하지만 불쌍하고 가련할 때가 많다"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TK지역에서 이 전 대통령은 박근혜 당시 경선 후보에게 사실상 완패 했다. 이때부터 TK를 향한 이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애는 시작됐다.

이동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 같은 경우도 이 대통령이 챙겨주지 않았으면 선정되지 못했을 프로젝트"라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유력한 후보는 일찍부터 의료기기 클러스터를 준비해온 강원 원주시였다. 원주시를 제치고 대구가 첨단의료복합단지에 선정됐을 때 특혜 논란이 많았는데, 이 홍보수석비서관이 특혜 논란을 확인해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은 대구 달성군이다. 대구·경북의 부동산 시장은 최근 나홀로 호황이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올 상반기 대구의 부동산 매매가격 상승률은 3.6%로 전국 평균(-0.2%)을 크게 웃돌았다.

아파트만 놓고 보면 6월 기준 대구 매매가는 1년 전에 비해 8.0% 급등했다. 같은 기간 서울은 4.22% 떨어졌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구미가 5.42%로 전국 시·군·구 중 1위를 차지하는 등 경북 지역의 상반기 부동산 상승률도 3.17%였다. 이제 겨우 취임 6개월을 맞이한 박 대통령은 고향 지원을 위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기대심리가 대구지역의 부동산 호황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취임만 해도
부동산 호황

특히 박근혜정부에서의 지방공약 중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경북지역 공약이 최우선적으로 시행되지 않겠냐는 기대심리가 지역 부동산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출신지역에 따른 지역적 차별은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다. 대통령이 취임한 후 대통령의 고향이 급격하게 발전하면 특혜 논란이 일었고, 반대로 고향발전이 더딜 경우엔 지역여론이 배신감으로 들끓기도 했다. 고향만 챙길 수도, 고향을 안 챙길 수도 없는 대통령의 딜레마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에 대해 "역대 대통령의 고향이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하지만 아무리 특혜를 줘도 대통령을 배출한 고향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긴 어려웠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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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