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묻지마 해외출장 일정 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30 08:46:16
  • 댓글 0개

국회만 끝나면 고고씽 “묻지마 관광 뺨치네”

[일요시사=정치팀] 국회 일정만 ‘땡’ 치면 국회의원들은 해외로 나가기 바쁘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해외출장을 떠나는 의원들은 저마다 정상적인 의원활동이라며 항변한다. 국민들은 그들의 항변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국회의원들의 국회 휴지기 해외출장 일정을 해부해봤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정치권에 몰아닥친 정치쇄신의 바람이 거세지만 국회의원들의 국회 휴지기 해외출장 러시는 올해에도 예외가 없었다. 물론 해외출장을 떠나는 국회의원들은 정상적인 의원활동임에도 무조건 ‘외유성’이라고 비판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출장이유 묻지마

하지만 <일요시사>가 살펴본 국회 휴지기 해외출장 실태는 여전히 출장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우선 지난 5월, 4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 심사가 마무리되자마자 75명의 국회의원들이 해외출장을 떠났다. 5월 한 달 동안 이들의 해외출장비에 지급된 예산은 약 8억원에 달한다. 국회의원 1인당 평균 1000만원이 넘는 경비를 사용한 것이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지난 5월20일부터 28일까지 체코, 폴란드, 크로아티아 등을 다녀왔다. 약 77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 이 출장의 목적은 사법제도 및 정치·행정제도 변화 연구였다. 박영선 위원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권성동, 김회선, 김도읍 의원과 민주당 이춘석, 최원식 의원이 함께 갔다. 법사위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사법제도 현황파악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출장을 떠나고 있지만 해외출장을 다녀온 후 뚜렷한 성과는 내놓지 않고 있다. 해외출장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국토교통위원회는 5월19일부터 26일까지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국가를 다녀왔다. 방문목적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관련해 도시재생제도의 다양한 사례 조사 및 시찰을 통해 우리 현실에 맞는 도시 재생 정책 방향 모색이었다. 주승용 위원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안효대, 이철우 의원과 민주당 이윤석 의원이 함께 갔고 약 62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하지만 법안이 이미 국회를 통과한 시점에서 뒤늦게 관련 사례 조사를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밖에도 지난 5월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목적에는 단순한 친선 교류 형식이 상당수였다. 국회의원들은 5월에만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영국, 아일랜드, 파라과이, 페루 등 다양한 국가로 출장을 떠났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민주당이 7월 임시국회를 열겠다며 자당 의원들의 해외출장을 만류했던 7월에도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러시는 이어졌다. 6월 임시국회가 끝난 후 31명의 국회의원들이 해외출장길에 나섰다. 역시 국회의원 1인당 해외출장비는 평균 1000만원을 웃돌았다. 또 해외출장 사유 중 대부분은 ‘친선’이었다.

국회일정 끝나면 쫓기듯 줄줄이 해외로
의원 1인당 해외출장비 1000만원 웃돌아

지난 7월3일부터 10일까지 새누리당 안홍준, 유재중, 신경림 의원과 민주당 김우남, 최재천 그리고 무소속 송호창 의원은 한러의원외교협의회 합동회의에 참석했다. 투입된 예산은 약 8600만원이다.
지난 7월18일부터 23일까지는 한중의원외교협의회 청년의원대표단이 양국 의회 간 협력 증진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새누리당 정몽준, 김용태, 김희정, 서용교, 홍지만, 하태경 의원과 민주당 김관영, 정호준, 이언주 의원이 참여했다. 투입된 예산은 약 3300만원이다.

이외에도 7월28일부터 8월6일까지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의원친선협회 상대국 방문도 예정되어 있다. 새누리당 송광호, 정갑윤, 신성범 의원과 민주당 백재현, 이찬열 의원, 그리고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이 참여한다.
7월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일정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안전행정위원회의 페루, 아르헨티나 출장이다. 이번 해외출장에는 경찰간부를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아 논란이 됐던 김태환 안행위 위원장과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 민주당 이찬열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치안제도 및 재난방지제도를 조사하겠다며 페루와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하지만 페루와 아르헨티나는 치안이 불안하기로 유명한 국가다. 도대체 무엇을 배워오겠다는 것인지 궁금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안행위 측은 “치안이 불안한 국가라고 해서 배울 제도가 없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취재기자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를 배우기 위해 간 것이냐?”고 질문하자 “자세한 사항은 같이 가신 행정실장님이 알고 있다”며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안행위 위원장이 포함된 해외시찰 일행이 해외출장을 떠난 목적을 행정실장 외에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들의 일정을 살펴보면 7월16일부터 26일까지 무려 10일간이나 현지에서 체류하면서도 공식적인 일정은 7월19일 아르헨티나 경찰청 부청장 면담과 7월22일 페루 국회 치안위원장 면담, 페루 내무부 장관 면담이 전부였다. 이외에는 일정이 전혀 없는 것인지 단순히 기재를 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페루와 2시간 거리인 멕시코에서는 지난 7월15일부터 21일까지 세계태권도대회가 열렸는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태환 위원장은 세계태권도대회에 참석한 후 해외시찰 일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세계태권도대회 참석 일정을 고려해 안행위의 해외시찰 국가를 멕시코와 가까운 페루로 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안행위 해외시찰에는 약 59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의원 1인당 2000만원 꼴이다.

국회의원들은 또 공식 해외출장이 아니더라도 공짜로 해외여행을 즐겼다. 새누리당 정희수, 권성동, 조해진, 홍일표, 김동완, 김종태, 김태흠, 민병주, 박대동, 손인춘, 안덕수, 윤명희, 이강후, 이상일, 이현재 의원과 민주당 김재윤 의원 등은 지난 7월3일부터 4박5일간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및 사회지도층 항일전적지 탐방’ 행사에 참여해 중국 동북3성을 순회했다.

일단 가고보자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고 공짜 여행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탐방에는 장태평 마사회장과 신용섭 EBS 사장, 이청휴 현대자동차 이사, 정승인 롯데백화점 전무, 박형일 LG유플러스 상무 등이 참여하고, 이들 기업이 1000만~3000만원씩 협찬금을 내 후원했다. 이재현 회장 구속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CJ그룹은 협찬을 하지 않은 대신 현직 대표이사가 참여했다.

이와 관련 현역 국회의원들이 대기업의 협찬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매년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과 관련해 문제가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해외로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해외일정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떠나고 또 돌아와서는 무엇을 얻었는지 국민들에게 설명해 달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화섭 외유 ‘6월 부패뉴스’ 3위
한국투명성기구 발표…전국적인 사건 제쳐

민주당 소속 윤화섭(안산) 전 경기도의회 의장의 ‘프랑스 칸영화제 외유’가 지난달 대한민국 부패뉴스 3위에 올랐다.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인 ㈔한국투명성기구는 지난 22일 6월 한 달간 각종 언론에 보도된 기사와 자료를 검색한 결과를 바탕으로 ‘부패뉴스’를 선정해 발표했다. 지방의회의 외유 뉴스가 전국적인 부패사건을 제치고 3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윤 전 의장은 지난 5월 거짓 핑계를 대고 칸영화제를 다녀온 사실이 알려져 경기도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