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박근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 풀가동 전말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7.22 13: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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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매우 쳐라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위기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12월에 휘몰아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여파에도 불구하고 그간 박 대통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 지지율을 유지했다. 이유는 뭘까? 정치권에선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대통령을 '성동격서의 달인'이라고 평가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란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라는 뜻의 한자성어다. 이는 병법(兵法)의 한 가지로, 한쪽을 공격할 것처럼 속여서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다른 쪽으로 쳐들어가 적을 무찌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정국의 핵 원세훈
개인비리로 묶어두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자칫 박근혜정부에 대한 '정통성 시비'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논란을 최소화하고, NLL·4대강 논란 등에 불을 지펴 야당의 공세를 원천 차단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법 위반이나 국정원법 위반이 아닌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는 일단 물 건너간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0일 건설업자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원 전 원장을 전격 구속했다. 원 전 원장은 2009년부터 황보건설의 황보연 대표로부터 5000만원어치의 선물과 현금 1억6000만원을 받아 챙기고 공사수주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은 "그냥 생일선물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원 전 원장은 "억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며 "그냥 생일선물"이라고 답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그게 바로 뇌물이에요" "진짜 뇌물을 얼마를 줘야 하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사건 자칫 박근혜정부 '정통성 시비' 비화 가능성 커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시국선언 확산, 박근혜 책임론 일어

야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원 전 원장을 개인비리로 구속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가 개인비리 혐의에 덮여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진보정의당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국기문란 행위의 진상과 책임이 혹 원 전 원장 개인비리에 덮이는 일 따윈 절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한 누리꾼 역시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먼저 구속했어야 했다. 뇌물 및 금품 수수는 한낱 여죄일 뿐이다. 개인비리로 물 타기 하지 마라"라는 의견을 남겼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국정원에 대한 민심은 점점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국정원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마저 새누리당의 배수진으로 표류하자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민심이 곳곳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집회에선 일주일 새 2배로 늘어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후 최대 인원이 몰렸다.

NLL카드 실패
'물 타기용' 비난

집회를 주최한 '국정원 대응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는 참가자를 2만3000여 명(경찰 추산 6500명)으로 추산했다.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는 지난달 21일 처음 열렸으며, 초기에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평일 150~200명, 주말에는 1000여 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물타기와 버티기 역공이 계속되면서 국민 반발이 증폭, 지난 8일 집회 때부터는 1만여 명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잇따라 서울대 등 이미 전국 30여 개 대학교수들이 참여했고,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교수들의 이 같은 규모의 시국선언은 극히 이례적이다.

청소년도 들고일어났다. 전국 464개교 중·고등학생 817명이 지난 17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 이들은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청소년 61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의 NLL대화록 공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5.3%가 '국민의 촛불, 시국선언의 확산을 막기 위한 물타기용'이라고 답했다. 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응답자의 33.2%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촉구'라고 답했다. 이어 '국정조사'(24%), '철저한 진상규명'(20.4%), '원세훈·김용판 구속'(13.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전국적으로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 의혹과 박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박 대통령은 이에 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국정지지율은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성동격서’ 전략이 현 정국의 위기를 제대로 관통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4대강 감사에
친이계 반발 극심

첫 번째 '물타기용'으로 꼽히는 NLL대화록 공개는 '역풍'을 맞아 실패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성급한 자충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 전 원장에 대한 언론 보도는 대폭 줄었다. 물타기라는 비난에도 여야의 NLL을 둘러싼 팽팽한 기싸움에 국정조사가 미뤄져 새누리당으로선 충분히 시간을 번 셈이다.

NLL 정국이 새누리당에 불리하게 돌아갈 즈음, 박 대통령은 '4대강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새누리당이 야권과 사활을 건 대치전선에서 4대강 사업은 국정원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반드시 부딪쳐야 하는 사안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야권의 '대선불복' 조짐을 진화하고 박근혜 정부의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의 산은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4대강 사업' 정리 '이명박근혜' 고리 끊는 첫 단계로 인식돼
국정원 국정조사 앞두고 검찰 전두환 일가 본격적 압수수색

국민들은 그동안 4대강 사업 정리는 '이명박근혜'라는 고리를 끊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이 이명박정부의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아 박근혜정부의 앞길을 순탄하게 다지는 첩경 역할에 해당하는 사안이지만 이보다는 현정권 앞에 가로놓인 '국정원' 산을 넘기 위한 정치적 징검다리의 성격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웬만해서는 실명보도를 삼가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감사원이 4대강 감사결과를 발표하자 "내 이름을 써도 좋다"면서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첫 포문을 연 것도 그렇다.

친이계는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4대강을 ‘정치제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마저도 감사원의 4대강 결과에 대해 비판했다. 4대강 사업 정리로 인해 당내 친이와 친박 갈등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전두환 추징금 환수
"난센스"라 해놓고…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에 대해 여당 내 잡음이 일자 이번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기 위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이미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보여주기식 수사'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지난달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가 불거질 당시 박 대통령은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등 전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문제가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도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에서 해결을 못 하고, 이제야 새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새정부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난센스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앞두고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자택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 대통령의 태도에 묘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는 것.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찾기가 '박 전 대통령의 성동격서 전략' 중 하나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다.

진통 끝에 통과한 전두환 추징법이 검찰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시작하는 단초가 됐다는 해석도 있지만 검찰 수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도 적지 않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8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가 첫 전체회의를 열었다. 특위는 새누리당 정문헌·이철우 의원과 민주당 김현·진선미 의원의 특위 배제를 놓고 벌어진 논란 때문에 개점휴업상태였다.

이들 의원들이 모두 특위위원직에서 사퇴하면서 15일 만에 본격적으로 특위가 열렸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모든 이목이 쏠려 특위 진행 과정과 성과가 얼마나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이은 박 대통령의 다음 성동격서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위기 때마다 빛을 발하는 눈부신 탈출능력으로 위기의 달인이라 평가받는 박 대통령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채동욱 검찰총장 VS 전두환 '다시 이어진 악연'  

"무력 점거, 군사 반란 아니냐?"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해 검찰이 사실상 전방위 수사에 착수한 배경에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채 총장은 취임 이후 전 전 대통령 등 고액 벌금 추징금 미납 집행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추징금 환수 특별팀 구성을 지시했다.

채 총장은 지난 95년 5·18특별법 제정으로 구성된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에 합류해 전 전 대통령의 공소유지를 맡은 전력이 있는데 이번 검찰수사와 맞물려 두 사람의 인연이 회자되고 있다.

채 총장은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인 전 전 대통령의 혐의 입증을 위해 집중 추궁했다. 채 총장은 1996년 3월11일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전 전 대통령에게 "(12·12군사반란이)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출동한 것은 불법이지요?"라고 물었다.

전 전 대통령은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정식 계통입니까?"라고 반문했고 채 총장은 "국방부, 육본 등 정식 지휘계통의 지휘에 따라야 할 군부대로 하여금 대통령의 사전 승인조차 없이 무력으로 국방부와 육본을 점거하도록 한 것은 결국 군사반란이 아닌가요"라고 불법성을 강조했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은 "그때 상황으로는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채 총장은 특히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할 때 논고문 초안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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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