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최윤정

욕망에 휩쓸리는 시대상 그리다

[일요시사=사회팀] 위계질서가 뚜렷한 신분사회. 조선시대의 명인 신윤복은 암울한 시대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의 그림들이 변치 않는 생명력을 갖는 건 한 시대의 단면을 들춰냈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했지만 아직도 작가의 역할은 시대상을 그려내는 것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최윤정 작가의 그림은 비장하지 않아 더욱 날카롭다.



TV드라마에 나온 명품백은 방송 직후 완판된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들고 있는 할리우드 파파라치컷은 커피 매출 신장에 기여한다. 야구가 유행이면 야구 유니폼이 불티난 듯 팔리고, 등산이 유행이면 멀쩡한 산 밑에 등산용품 매장이 들어선다. 사람들은 대체 무엇에 홀린 것일까. 서양화가 최윤정 작가는 사람들이 '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 작가가 주목한 안경의 실체는 바로 '프레임'이다.

'안경' 쓴 사람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파악할 때 눈을 이용합니다. 눈을 통해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대개 만들어진 거예요. 이런 가공의 이미지를 만든 게 바로 미디어고요. 어디까지나 가공이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이미지'가 진짜라고 믿죠. 그만큼 미디어의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고…."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축적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갖게 되죠. 이게 프레임입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한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아마 늑대소년이라면 모를까(웃음)."

최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안경을 쓰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프레임이 씌워진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중은 교육을 통해 또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프레임을 강화시킨다. 최 작가는 사람들이 특정 프레임을 갖는 것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종교)과 신분으로부터 해방된 현대 사회의 새로운 굴레는 다분히 억압적이다.


"전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영역이 갈수록 줄어들 거라고 봐요. 시스템이 사람보다 앞서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죠. 가령 미디어는 내가 배가 고파서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 전에 무엇인가를 당신이 먹어야 한다는 욕망을 불어 넣잖아요. 일상 대화에서도 저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다들 어디에선가 본 얘기를 하고 있단 말이죠. 자신의 취향이 없고, 사회가 부추기는 욕망에 휩쓸리기만 하는 그런 시대상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최 작가의 그림은 군더더기가 없다. 작품의 구도와 색상, 질감까지 꽉 짜인 틀 안에서 완결된 메시지를 갖는다.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한없이 낯선 그의 그림들은 미학에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의 형식을 차용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스타벅스나 코카콜라와 같은 이미지가 그의 작품 안에선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안경'소재 작품 발표
매스미디어 풍자·비판

"사람들은 미술품하면 '행복한 눈물'만 떠올려요. 그건 정말 0.1%의 세계인데 그것이 진실인 양 왜곡된 정보를 전파하는 거죠. 어쩌면 너무 사회가 빠르게 변하다보니 심연을 들여다 볼 그런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가령 결혼을 주제로 한 제 그림이 있는데 그림 안에 interest를 집어넣었어요. 보통 흥미란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자 혹은 이해관계란 뜻도 있잖아요. 이런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재밌어요."

최 작가의 작품은 주제부터 스타일까지 굉장히 독특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최 작가를 흉내 낸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도 있지만 최 작가는 "내 생각을 표현하려면 그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컬러, 구도, 장치는 물론이고 인물의 표정과 피부 등 모든 것이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난다고 봐요. 저도 첫 전시를 열었을 때는 안경을 쓴 인물의 얼굴로만 그렸다가 신체를 집어넣고, 비율에도 조금씩 차이를 주고…. 그렇게 그림이 변하는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직업보다 화가란 직업의 장점은 내가 원하는 구성으로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거죠. 구성 안에 내가 담고 싶은 메시지를 넣을 수도 있고요."

최 작가는 "시각미술의 특징은 한 눈에 보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 앞에서 직접 몇 가지 그림을 그려 보이며 '시각심리'에 대한 설명을 폈다.


주제부터 스타일까지 독특
구도·색상·질감 완벽 조화

"개인전을 열면 간간히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그림을 중간에 집어넣어요. 이건 의도된 기획이죠. 단편적으로 봤을 때는 독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던 텍스트도 다른 텍스트와 결합하면 또 다른 이미지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불필요한 장치들을 빼내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독자들이 제가 의도한 것을 그대로 생각하길 원치는 않아요. 저는 즐거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 작업도 항상 즐겁게 하는 편이고요. 평론가처럼 해석하면서 그림을 보는 사람이 필요하고, 즐겁게 그림을 즐기는 사람도 필요해요. 모든 사람이 너무 똑같은 건 재미없잖아요?"

낯설지 않은 낯선

미술교육을 전공한 최 작가의 그림은 다양한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드문드문 지식인의 냉소도 엿보인다. 최 작가는 "안경을 벗고 살면 과연 좋은 것일까"라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전시장 한편에는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가녀린 손이 붉게 물든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미래의 인류를 기다리는 건 가공된 신화만 남겨진 디스토피아일까.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최윤정 작가는?]

▲1971년 서울 출생
▲1994년 홍익대 회화과 졸업
▲2006년 홍익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
▲2008년 Mystic Frame(무이 갤러리) 외 개인전 9회
▲2011년 콜라보레이션 with HITE(서울) 등 다수
▲한성대(07년∼)예술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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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