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추위타는 의원님들 사연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17 09: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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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에어컨 틀고 '덜~덜'…절전은 '너나 하세요'

[일요시사=정치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 고위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그런데 적어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올 여름 전 국민이 유례없는 전력난으로 '더위와의 전쟁'을 벌이며 부채질을 하고 있을 때 일부 의원들은 외부에서 몰래 에어컨을 들여와 시원한 여름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얌체 의원님들의 실태를 <일요시사>가 공개한다.



지난달 18일 '특별한 손님'이 청와대를 찾았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업체인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만남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불볕더위에도 불구하고 절전정책에 모범을 보이겠다는 이유로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이날 박 대통령과의 대화 도중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물을 마셨다.

냉방온도?

이후 일각에서는 외빈에게 일종의 실례를 범한 것이 아니냐며 너무 고지식한 대응이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전 국민이 전력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청와대라고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 같은 비판을 일축했다.

올 여름 전 국민이 더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고질적인 전력난에 원전사태까지 겹친 올 여름의 더위는 역대 최악이다. 평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일선 공공기관에서는 흐르는 땀이 서류를 적실 정도이며, 일부 학교에서는 더위에 지쳐 쓰러지는 학생들이 발생할 정도다.

정부의 절전정책에 따라 현재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전기 다소비 건물은 실내온도를 26도, 공공기관은 28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국회도 이에 적극 동참하며 지난 6월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노타이 국회가 열리기도 했다. 본회의장에는 부채까지 등장 했다. 언론에서는 이 같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솔선수범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선 기관들에서는 너무 가혹한 냉방온도 제한이라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대통령부터 국회의원들까지 솔선수범하는 상황에서 감히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의 이기적인 얌체행동이 이러한 동료의원들의 노력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결과 다른 의원들이 부채질을 하며 더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일부 의원들은 남몰래 외부에서 에어컨을 가져다 설치하고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적극 실천해야할 의원들이 자신들만 편하자고 '꼼수'를 쓴 것이다. 올 여름 더위에 시달리며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는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실제로 <일요시사>는 약 80여 의원실을 표본조사해 이중 3개 의원실이 외부에서 따로 에어컨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의원회관은 모두 중앙냉방식이다. 에어컨을 따로 들여와 사용할 이유가 없다. 에어컨을 따로 들여와 사용했다는 것은 그동안 냉방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공교롭게도 확인된 의원실은 모두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적극 동조해야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이었다. 우선 이들의 해명을 들어보면 이모 의원실의 경우 "너무 더워서 업무효율이 떨어져서 사용했다. 평소엔 틀지 않고 너무 더울 때만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앞에선 부채질, 뒤에선 에어컨 '빵빵'
도 넘은 얌체행동, 국민들은 '허탈'

또 김모 의원실의 경우는 "18대 때 사용하던 에어컨을 가져다 놓은 것뿐이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일요시사>는 이에 대해 "의원회관은 중앙냉방식인데 왜 18대 때 사용하던 에어컨을 가져다 놓은 것이냐? 쓰던 에어컨을 둘 곳이 없어 의원회관으로 가져온 것이냐?"고 재차 묻자 답변을 회피했다. 김모 의원은 친박연대 비례대표 출신으로 친박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권모 의원실 관계자는 취재기자에게 "이런걸 뭐하러 취재하냐"며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하며 "야간에는 냉방을 해주지 않아 야근할 때만 사용하려고 가져다 놓은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권모 의원은 검사출신으로 이번에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의 핵심인물이기도 하다.


이중 일부 의원실 관계자는 "개별 에어컨을 사용하는 의원실이 한두 군데도 아닌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며 "공평하게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한편 이들 의원실은 에어컨을 의원회관으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에어컨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숨겨서 들여온 것도 아니었다. 국회 측이 일부 의원들이 개별 에어컨을 설치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은 셈이다.

특히 이번에 <일요시사>가 확인한 의원실은 모두 스탠드형 대형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부 의원실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미니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도 있었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비서관은 "이번에 확인된 의원들은 그나마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사용하는 보좌관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도록 허락한 양심있는 의원들"이라며 "몇몇 의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방에만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원방 내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의원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보좌진실이 보이고 가장 안쪽에 의원방이 있는 구조다. 이 같은 제보들을 종합해보면 <일요시사>가 확인한 세 명의 의원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의원들이 이번 여름을 개별 에어컨으로 시원하게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양심온도?

물론 일부 의원실에서 에어컨을 따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내온도 기준을 위반한다 해도 따로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고 시정요청 공문만 발송될 뿐이다. 하지만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의원들이 이런 꼼수를 사용해 나 홀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일각에서는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국회의원 본인들도 참기 힘들 정도로 너무 가혹한 냉방온도를 정해놓은 것이 아니냐"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냉방온도를 현실적으로 더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어떤 변명을 해도 다른 동료의원들이 더위로 곤혹을 치르고 있을 때 자신들만 개별 에어컨을 가져다 두고 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핑계로 일관하기보단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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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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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