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얼굴’ 아모레퍼시픽 횡포 논란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7.01 11: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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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선 “상생” 뒤로는 “갑질”

[일요시사=경제1팀] 국내 화장품업계 1위인 아모레퍼시픽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이른바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품 밀어내기, 영업사원 빼내기, 일방적 계약해지 등으로 대리점주들의 생명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아무리 판촉 활동 독려를 위한 채찍질이라지만, 대리점 입장에서는 생계수단을 한 순간에 빼앗길 수 있다는 압박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양유업의 욕설 영업 파문을 계기로 촉발된 식품업계의 대리점 밀어내기(물량 강제 발주) 영업 문제가 화장품업계 전반에도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심에 서경배 회장이 이끄는 아모레퍼시픽이 서 있다.

10년 인맥 빼가?

경남 마산에서 아모레퍼시픽 특약점을 운영하던 서행수씨는 2006년과 2007년에 실적이 역성장한 것에 대해 본사로부터 경영개선 요청을 받았다. 서씨가 공개한 공문에 따르면, 본사는 2007년 12월 서씨에게 ‘경영개선 요청 내용’을 보내 2008년 판매 증대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이에 서씨는 2008년 판매목표를 5% 성장으로 잡았지만 그해 9월까지 2.4%에 그쳤고, 본사는 결국 그해 말 거래를 종료했다.

서씨는 실적부진은 대리점을 직영점으로 전환하기 위한 본사의 핑계라고 주장했다. 서씨의 대리점은 과거 우수 대리점으로 선정된 적도 있었고,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서씨는 “본사 담당자도 실적 때문에 계약해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했다”며 “대리점을 10년 정도 운영하면서 분할을 한 번도 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씨가 운영했던 방문판매 특약점은 가정 등을 방문해 화장품 외판을 하는 이른바 ‘카운슬러(화장품 방문판매원)’를 관리하는 업체다. 본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제품 등을 받아 재고를 관리하며, 카운슬러의 모집 및 교육 등을 맡고 있다. 카운슬러는 보통 화장품 주구매 대상과 비슷한 여성이 많은 편이고, 학습지 교사 등과 같은 개인사업자(특수고용직) 지위로 특약점 등과 계약을 맺어 영업을 한다.

본사는 계약을 해지하면서 서씨의 특약점에서 10년 동안 계약을 맺어온 60여명의 카운슬러들을 그해 모두 다른 특약점으로 가도록 했고, 이듬해 절반은 다시 직영점으로 이동시켰다.

서씨는 “2009년 1월1일 즉시 아줌마들(카운셀러)에게 (본사가) 문자메시지를 보내 나와 계약이 끝났으니 다른 영업장으로 출근하도록 했다. 방판 특약점 특성상 10년 영업을 해오며 쌓아온 자산과 인맥을 고스란히 내주는 셈이 되었다”고 말했다.

영업실적 강요…달성 못하면 ‘계약해지’
영업사원 교육과 훈련비용도 점주가 부담
제품 밀어내기에 사원 빼내기까지

아모레퍼시픽 특약점주들은 일방적 계약 해지와 인력 빼가기 등의 횡포 외에도, 본사로부터 직영화를 강요받았던 것으로도 나타났다. 과거 태평양 시절인 1970년대 세분화 작업을 하면서, 힘들게 유치한 고객을 타 대리점에 대가없이 넘겨주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됐다는 것이다. 특약점주들은 실적이 좋은 대리점을 강제로 직영화 하면서 회사에서는 합의하에 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현직 특약점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회사의 압박에 카운셀러 수십명을 다른 직영점에 빼앗겼다”고 말했고, 또 다른 관계자도 “지금 부산·경남 15개 직영점은 모두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약점주들은 화장품 밀어내기 영업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목표영업실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밀어내기 식으로 상품을 강매하고, 목표영업실적을 달성한 경우에도 대리점 매도·분할을 강압적으로 유도하고 거부시 계약해지 등을 통해 결국 우수대리점·특약점을 다른 아모레퍼시픽 퇴직자에게 넘기거나 직영화 한다는 것이다.


실제 부산 지역 한 특약점의 2012년 1∼6월 ‘월별 영업 현황’에 따르면 1∼5월 회사에서 특약점에 넘긴 제품 액수가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 가량 계속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달 매출은 보통 1억원 안팎이었다.
이밖에도 특약점주들은 방문판매 영업사원의 교육과 훈련비용 또한 부담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우월한 지위를 가진 주체에 의한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행위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철호 가맹거래사는 “영업이 잘되지 않는 특약점은 실적으로 압박하고, 잘되는 점포는 인력을 빼앗는 방식으로 아모레가 직영조직을 키워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제남 진보정의당 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회 위원장은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인류를 아름답게, 사회를 아름답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횡포 그 자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측은 계약해지 과정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약정서상 계약해지 3개월 전 통지하도록 되어있으며 이에 맞게 진행된 사안”이라며 “계약을 어기거나, 전체 550여개 대리점의 매출과 비교해 해당 점포의 매출이 낮으면 경영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계약을 종료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주장일 뿐”

또 카운셀러를 다른 대리점으로 이동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카운셀러는 개인사업자로 해당 특약점의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할 수 있어 다른 특약점이나 직영점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하는 것”이라며 “특히 2003년과 현재 80개 직영점의 영업사원 수를 비교하면 오히려 직영점의 카운슬러 수는 감소해 영업사원을 빼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올해 경영방침은 ‘함께 가자’다. 고객, 세계, 사회, 임직원과의 ‘동반성장’에 방점을 찍고, 일찍부터 상생 행보를 강조해왔다. 그랬던 아모레퍼시픽이 ‘갑의 횡포’ 중심에 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자신들을 향한 ‘을의 분노’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아모레퍼시픽의 앞으로의 추이와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LG유플러스 ‘슈퍼갑질’논란
“성추행에 술접대까지”

남양유업의 대리점 파문에 이어 대기업들의 횡포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을의 피해사례 보고대회’에서는 ‘갑의 횡포’에 눈물을 흘린 피해자들이 대국민 보고대회를 진행했다.
특히 이날 LG유플러스의 피해사례 발표에서는 본사의 무리한 영업 강요로 자신의 돈까지 들여가며 고객을 유치하는 이른바 ‘오버펀딩’ 영업피해 사례와 함께 술접대는 물론 성추행까지 당했다는 사례가 보고돼 충격을 줬다. 

충주에서 LG파워콤센터를 운영한 A씨는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3억 원이 넘는 빚과 함께 본사 직원이 여동생에게 성추행까지 저질렀다”며 “해당 직원은 이 일로 형사고소를 당하자 재계약을 미끼로 여동생으로부터 합의를 받아냈고, 여동생은 불안 증세와 우울증으로 현재도 약을 복용 중”이라고 말했다. 


직영 점장을 하다가 본사의 권유로 2008년 대리점을 오픈한 B씨는 “대리점을 열고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본사 상근 담당자에게 술을 대접하는 일이었다”며 “이를 한두 차례 거부하자 본사 직원들은 차량까지 보내면서 ‘와서 술값 계산을 하라’고 요구했다”고 부당한 처사를 고발했다. 

행사를 주관한 김제남 진보정의당 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회 위원장은 “겉보기에 근사해 보이던 LG유플러스 대리점의 속사정에 이런 대리점 점주들의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며 “LG유플러스의 사례는 특별히 전국적인 피해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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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