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트러블메이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01 1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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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잡'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다

[일요시사=정치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한때 '듣보잡'(인지도가 떨어지는 인물을 뜻하는 속어)이라는 굴욕적인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그는 시사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가 SNS를 통해 쏟아내는 말들은 어김없이 기사화되고, 그는 끊임없이 이슈를 생산해낸다. 변 대표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지만 그는 탁월한 이슈메이커임에는 틀림이 없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의 인터뷰가 확정된 후 주변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변 대표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막말하는 사람' '극우주의자' '여성혐오자' 등 이외에도 차마 기사에는 담기 힘든 평가들이 많았다.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은 "악플은 많이 달리겠지만 조회수는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변 대표는 인터뷰할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변 대표는 이슈를 생산해내는 과정에서 노이즈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주 받지만 한 정치비평가는 변 대표에 대해 "그는 욕먹어서 큰 것이 아니라, 욕먹을 만큼 큰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학연이 크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빅뉴스>와 <미디어워치>라는 언론사의 대표이면서도 언론사들에겐 절대 갑인 포털사이트의 퇴출을 주장해온 특이한 남자. <일요시사>가 변 대표를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봤다.
다음은 변 대표와의 일문일답. 


- 한때 '듣보잡'이라는 굴욕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변 대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달라진 자신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실감하는가?
▲ 진중권 교수가 지난 2009년 나를 '듣보잡'으로 지칭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그 시점에도 이미 난 유명했다. 1999년 인터넷신문 <대자보> 편집장을 했었고, 2003년에는 최연소 KBS 시청자위원이 됐다. 이외에도 청년창업가포럼 회장을 했었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객원논설위원으로 수차례 기고를 했었다. 어찌보면 우리 세대 논객 중엔 제일 앞서 있었는데 진 교수가 나를 듣보잡이라고 지칭한 것은 비열한 발상이라고 본다. 물론 대중적인 인지도는 많이 높아졌지만 논객으로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다.

- 서울대 미학과 출신이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 대학 시절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이 나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터넷에서 사회문제에 관한 글을 쓰다가 대학시절 <대자보>라는 인터넷신문을 창간하고 편집장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 변 대표의 행보를 두고 정치입문을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변 대표께서는 실제로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노회찬 전 의원 지역구에 출마할 수도 있다"거나 "MBC 사장에 응모 하겠다" "<한국일보> 3년 맡기면 신문업계 1위 만들겠다"등의 발언을 했었는데 인지도를 이용해 자리욕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정치입문 계획이 없다는 것은 수도 없이 이야기해왔다. 4월 재보선 출마 이야기는 안철수 의원과 이준석 전 비대위원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고, MBC 사장 응모 발언은 MBC 사장 선임이 너무 폐쇄적이니까 공개공청회를 한다는 조건으로 바람잡이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진지하게 이야기 한 것이다. 내가 볼 땐 사측이나 노조나 <한국일보>의 위기를 극복할 경영전략이 안 나오는데 우리 같은 벤처언론사와 손잡고 일을 해보자는 뜻이었다. 

-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사이트 이용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베 사이트의 극우적인 성격 때문에 일각에선 일베를 폐쇄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는데 일베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 일베는 우리나라 20~30대들이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고조되면서 나온 사이트다. 자유 통일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선 나는 일베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몇몇 이용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들에 대해 제재를 하면 된다. 오히려 아고라나 이런 곳은 헌법을 부정하는 사이트다. 일베에 대한 공격은 좌파들이 일베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연예인들이 네티즌들에게 비난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변 대표께서는 연예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일베 이용 연예인에 대한 비난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 일베를 이용한 게 아니라 일베에서 주로 쓰는 단어를 사용한 것뿐이다. 일베에 논란이 될 만한 글을 남긴 것도 아니고 일베에서 주로 쓰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좌파들은 광우병 사태 때 연예인 발언에 대해 연예인들도 자유롭게 정치에 참여하게 하자고 했으면서 일베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 떼거지로 공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욕먹어서 큰 것이 아니라, 욕먹을 만큼 컸다"
"<조선일보>도 약해" 아시아 최고 미디어그룹 꿈꿔

-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서울대 미학과 선후배 사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과거 '사망유희' 토론부터 최근 진 교수에 대한 석사논문 표절 의혹 제기까지 악연으로 유명하다. 진 교수를 싫어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일각에는 한때 진 교수를 선배로서 동경하던 변 대표가 자신이 쓴 책(<스타비평>)을 진 교수에게 선물했는데 그가 '쓰레기 같은 책'이라며 화장실 소변기 위에 두고 나온 사건 이후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도 있다.
▲ 허위사실이다. 단지 노선의 차이 때문이다. 나는 자유주의 노선이었고 진 교수는 신좌파 노선이었다. 당시 미학과는 대체로 신좌파 노선이 득세했는데 나는 진 교수와만 대립한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서울대 미학과 전체와 대립했다고 볼 수 있다.

- 트위터 계정에 친노종북포털 DAUM 퇴출이란 글귀가 인상적이다. 다음을 친노종북포털이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 뉴스 편집방향을 보면 <민중의소리>나 <오마이뉴스>와 똑같다. 완전히 노골적으로 친노종북세력의 집권을 도모하는 편집들을 8~9년째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포털이 언론권력을 남용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온당한 것이냐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 SNS에서 논쟁을 벌이다 가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모독해 논란을 겪기도 했다. 평소 냉철한 논객으로 유명한 변 대표께서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슈를 만들기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 SNS에 처음 뛰어들 때만 해도 나꼼수가 판을 주도하고 있었고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고 공지영, 이외수 등에 (우파가) 완전히 9대1로 밀릴 때였다. 우파에 스피커들이 없었다. 혼자서 이슈를 잡아야 했다. 당연히 마이너세력은 메이저세력에게 공격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표현이 거칠었다.


- 한 언론 인터뷰에서 광의로 볼 때 낸시랭도 종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낸시랭까지 종북으로 지목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내가 낸시랭을 종북이라고 했다는 것은 오보였고 정정보도로 바로 잡았다. 내가 말한 것은 낸시랭이 종북세력이 아니라 종북세력들이 낸시랭을 이용할 거라는 주장이었다. 진 교수가 사망유희 토론에서 박살난 다음 종북세력들이 대항마로 내세울 논객이 없으니 낸시랭을 내세워 이용하는 거고 낸시랭도 종북세력을 같이 이용하는 것이다.

- 변 대표께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보법 폐지, 미군 철수, 그리고 연방제 통일안. 이 세 가지를 모두 찬성하는 이를 종북으로 본다고 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닌가?
▲ 종북이라는 것이 김일성, 김정은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노선을 따르는 사람의 개념으로 본다면 맞다. 내가 주장한 세 가지는 대한민국 법원에서 판결난 북한의 3대 대남적화노선이다.

- 그동안 주류 여론과는 크게 벗어난 주장들을 많이 펼쳐 비판을 받기도 했다. 후회하거나 사과하고 싶은 발언들은 없는가?
▲ 최근에는 없다. 과거 2004년에 내가 여기자를 비하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땐 주장하는 방식이 잘못됐다. 그래서 그 당시 사과문까지 올렸다.

- 변 대표께서 유명세를 타다 보니 변 대표의 개인사까지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74년생으로 결혼적령기가 다소 지났다. 현재 만나고 있는 여성이 있는가? 일각에선 변 대표가 여성을 혐오한다는 소문도 있는데.
▲ 30대 중반에 결혼할 뻔한 여자가 있었다. 그 사람과 헤어진 이후엔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 연애를 안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결혼을 하려다 보니까 연애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신중하게 하다 보니까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변 대표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
▲ 5년 이내에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언론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는데, 어찌보면 <조선일보>도 약한 것 같고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그룹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변희재 대표 프로필>

▲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
▲ <브레이크뉴스> 창간
▲ <빅뉴스> 대표이사
▲ <미디어워치> 대표이사
▲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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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