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국회 '제 밥그릇 챙기기' 백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6.26 10: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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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싹둑싹둑 짠돌이, 자기 일엔 물 쓰듯 펑펑

[일요시사=정치팀] 국회는 한 해 350여조원에 달하는 국가예산을 주무르는 곳이다. 예산심의 때만 되면 온 나라의 이목이 국회로 집중된다. 그러나 예산심의에 있어 국회의원들은 냉정하다. 소외계층의 복지예산도, 수년간이나 건의되어 온 지역숙원사업도 '재정 건정성'이란 대의를 위해 가차없이 삭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짠돌이' 국회도 예산을 물 쓰듯 할 때가 있다. 바로 자신들과 관련된 일이다. <일요시사>가 뻔뻔한 국회의 제 밥그릇 챙기기 백태를 살펴봤다.

지난해 국회의원의 세비가 20%나 오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큰 파장이 일었다. 이 같은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이한구 의원이 지난해 9월 원내대책회의에서 "19대 국회의원 세비가 18대 국회보다 20% 더 늘었다"며 "정기국회 때 대충 하다가는 분명 추가 세비반납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대중에 알려졌다.

세비 몰래 인상

국회의원의 세비는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여야 원내대표 간 협의를 거쳐 국회의장의 결재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알 길이 전혀 없었다.

 

국회의원의 세비 인상을 결정한 것은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과 새누리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장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지난해 행정부 공무원들의 임금인상률은 3.5%, 대기업 근로자들은 5% 안팎이었다.

이 같은 비판여론 때문에 여야는 지난 대선 때 의원 세비 삭감을 약속했지만 새해 예산 심사과정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또 한번 비난을 받았다. 그나마 당초 정부안은 공무원 봉급 인상률 2.8%만큼 세비를 인상할 것을 제안했으나 국회는 세비를 동결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공통적으로 세비 삭감을 약속했던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제 밥그릇을 내려놓지 못한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짠돌이 국회는 제2의원회관 신축 및 의원회관 리모델링에는 화끈하게 25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완공된 제2의원회관의 경우 당초 2200억원 정도의 공사비용이 들어 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잦은 설계변경으로 예산이 크게 늘어났다.

국회 내 부지에 들어선 덕에 토지비가 전혀 들지 않았지만 건축비만 2500억원이 들어간 것이다.

지난해 입주가 완료된 제2의원회관은 시공과정에서 내부 인테리어에 고급 대리석을 사용하는 등 '호화판 회관'이라는 논란을 빚었었다. 의원 1명당 사무실 면적은 구 의원회관(85.6㎡)과 비교해 1.7배가 넘는 148.76㎡로 늘어났고,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사용하는 보좌관실의 면적은 35.3㎡에서 76.2㎡로 2배 이상 넓어졌다.

또 현 의원회관에는 없던 회의실(17.8㎡)과 창고(2.64㎡)도 생겼다. 제2의원회관의 건립 당시 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과 보좌관을 포함하더라도 3000명 남짓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국회 사무처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오히려 당당했다.

지난 1월엔 국회가 제2어린이집을 준공한지 3년 만에 26억원짜리 제3어린이집 신축예산을 편성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회운영위원회 예비심사보고서에 따르면 국회 제2어린이집 후면 주차장 부지에 130명 규모의 제3어린이집을 신축하기 위해 2013년에 설계비 1억800만원, 시설비 8억4900만원, 감리비 등 1900만원 등 9억7600만원이 편성돼 있다. 내년에는 시설비 15억7000만원, 감리비 1300만원 등 15억8700만원이 예산으로 잡혀있다.


물고 뜯고 싸우다가도 세비 인상엔 대통합
부끄러움 모르는 국회, 도덕적 해이 극심

국회 사무처는 이에 대해 현재 제1, 2어린이집을 합쳐 정원이 290명인데 대기자는 260명이기 때문에 신축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이 공개한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 현황(지난해 6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 대기자수 상위 10개 지역은 평균 정원 약 2500명에 평균 대기자수는 약 7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마다 편차가 크지만 정원에 비해 대기자수가 3배에 이르는 것이다. 그에 반해 국회 어린이집의 대기자수는 정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 신축예산이 4년째 19억여원에 머무르고 있는 가운데 국회 어린이집을 신축하는데 26억원이 편성된 것은 국회의 이기주의가 극에 달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국회가 총 430억원을 들여 짓기로 한 제2국회연수원도 논란의 대상이다. 국회는 최근 연수원을 강원도 고성에 부지면적 42만7063㎡(12만9413평), 건립예산 총 430억원을 들여 짓기로 했다. 워낙 규모가 크다보니 기획재정부는 이례적으로 연수원의 건립 예산 규모를 336억원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연수원을 짓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는 기존 연수원 사용 용도를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투명사회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인천 강화군에 있는 국회연수원의 지난해 사용 건수는 582건으로 3638명이 다녀갔다.

이 중 561건(96%) 3320명은 가족모임과 휴양 목적으로 다녀갔고, 교육과 연수 목적의 방문은 21건(3.6%) 318명에 그쳤다. 국회 연수원의 사용 목적은 사라지고 아예 강화 연수원을 국회 직원들의 휴양소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원도 고성에 또 다른 연수원을 430억원의 혈세를 들여 신축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새로 지어지는 고성 연수원은 강화 연수원 면적의 10배, 건립 예산은 30배에 달한다. 게다가 그동안 국회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강화 연수원이 아닌 서울 시내 호텔에서 각종 세미나를 진행해 왔었다. 그런데 큰돈을 들여 강화보다 더 먼 강원도 고성에 연수원을 짓겠다는 것은 사실상 제2의 국회 전용 호화 콘도라는 지적이다.

제2 호화콘도?

한편 이 같은 국회의 제 밥그릇 챙기기는 국회 사무총장의 보여주기식 치적 쌓기의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에는 사무총장이 바뀔 때마다 건물이 하나씩 생긴다는 말이 있다. 국회 사무총장은 대부분 중진급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 출신들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역시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또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의장이 임명하는데 의원들로서는 국회의장의 복심인 사무총장이 추진하는 사업에 딴지를 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국회와 건설업체 간의 검은 커넥션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제2의원회관의 시공사인 태영건설은 지난 2012년 무려 14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파주 장남교 붕괴사건을 일으킨 기업으로 이 사건과 관련해 입찰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회사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 쇄신을 외치다가도 선거가 끝나면 늘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는 국회. 국회의 이런 행태는 언제쯤 개선될 수 있을까?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다.

김명일 기자 <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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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