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이종승

“작가들이 뭉쳐야 현실이 바뀔 수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그에게 그림은 동경하고픈 미지의 세계. 백발이 성성한 노장, 이종승 작가는 지금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대한다. 그에게 그림은 존재 이전의 흔적이며, 탄생 이전의 신비다. 자궁 안에 있는 태아처럼 이 작가는 세상을 그림으로 뚫고 나오기 위해 오늘도 붓을 든다. 




성화 속에 등장하는 예수를 닮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이종승 작가는 첫 만남부터 예술가만이 가진 아우라를 풍겼다. 얼핏 고독해보이면서도 자신감에 차있는 그의 얼굴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를 연상케 했다.

예수 닮은 예술가

"어떻게 해서 추상화를 그리게 됐나.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작가가 그림을 그리다 보면 소재를 표현하는 방식이 사실화냐 추상화냐 이렇게 갈리는 거지. 화가라고 해서 16세기부터 있어왔던 그림을 그대로 답습할 이유는 없죠. 그런데 현대미술이라는 건 결국 작가의 철학이 중요한 거거든. 창조를 하는 거니까. 내 생각을 종이에 토해내는 게 작가고 그렇게 나온 그림이 바로 추상화란 거죠."

이 작가는 서양사상과 동양사상을 융합한 추상 예술을 추구한다. 그의 오래된 주제는 카오스. 이 작가는 카오스가 "혼돈과 질서"라며, 천지창조 이전의 세계가 자신의 관심 분야라고 밝혔다.

“천지창조 이전의 세계를 그리려다 보니 모티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결부시켰고 한참을 고민하다보니 여성의 자궁이 바로 그런 세계가 아닐까 생각했던 거죠. 제 작품은 음과 양을 합친 뒤에야 비로소 결과가 나타나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이렇게 그려야겠다고 해서 꼭 그 그림이 나오는 건 아니란 말이죠."


"부부가 아이의 성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저도 여러 색을 배열해 놓고 결과를 기다립니다. 일종의 데꼴라주(Decollage) 기법인데 저는 색으로 데꼴라주를 구사하는 거죠. 여러 색들이 한데 뭉쳐 있으면 그 안에서 오묘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게 바로 카오스 작업이죠."

이 작가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만다라' 작업을 펼쳤었다. 만다라는 "원 안에 우주를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이 작가는 소개했다.

"그림을 잘 보면 각 원 안에 무수한 행성이 있어요. 한 4년 정도 준비했는데 그때 그렸던 그림이 2002점입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전시를 했는데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제가 정식으로 FIFA측으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그래도 좋아서 했으니 후회는 없어요. 보여준 것만으로 만족하자. 그렇게 생각했죠."

"현대미술은 철학이 중요"
천지창조 이전 세계 그려
추상화 50년간 오직 한길

이 작가는 무채색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 무채색이 이끌어내는 변화무쌍한 유채색의 변화를 이 작가는 잘 알고 있다. 파스텔 톤의 온화한 색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모두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색들이다. 그러나 특별히 선호하는 색은 없다고 이 작가는 말한다.

"제가 꼭 원하는 색이 아니라고 해도 제 손에 그 색이 쥐어져 있으면 그때그때 작업을 했어요. 저는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라 색을 칠하고 또 떼어내고를 반복했죠. 그런데 말이죠. 한국에서는 다들 추상화가 어렵다고들 해요. 그냥 그림은 보는 건데도 꼭 해석을 필요로 하고."

"하지만 전 늘 하고 싶은 그림을 해왔어요. 누가 어떤 그림을 구체적으로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달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제 문제는 여기 작업실에 남아 있는 그림이죠. 어떤 작가들은 죽기 전에 남아 있는 그림들을 모두 찢어서 불태우기도 해요. 어디서 안 좋은 대접을 받을 바에야 다 태우겠다는 거죠."


이 작가는 "무상으로 기증받은 그림은 결국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외국 작품만 우대하는 관행도 문제. 하지만 이 작가는 이런 미술계 현실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쎄요. 해법을 찾으려면 서로 뭉치고 해야 하는데 많은 작가들은 대개 '에고이스트'에요. 개인주의자. 우리나라는 뭉쳐서 으?으? 하면 들어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끼리도 힘을 합치지 못하는데 현실을 바꾸는 건 더 힘들지 않을까. 혹은 화가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면 좋을 텐데 아직까지는 없죠. 대변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뭉쳐야 산다

그의 작업노트에는 "흔적(작품 주제)은 나의 세계를 검정해 보이는 일, 대중에게 나의 작업이 미적 이정표로 남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동양적인 감각의 추상화'라는 다소 낯선 길을 밟아온 이 거장은 그의 화가인생을 정리하는 50주년 기념전을 앞두고 있다. 그의 말처럼 이 노장의 마지막 임무는 자신의 삶을 '추상화가로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현석 기자 <
angeli@ilyosisa.co.kr>


[이종승은?]

▲개인전 12회
▲홍익대 미술대학 64 동기회전 
▲한일현대회화전(서울갤러리)
▲1994~2002 ART EX TOYAMA(일본)
▲7th Artex Pairs(프랑스)
▲2002월드컵 2002점 특별전시(종로갤러리)
▲선화랑개관 33주년 기념전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현 한국미술협회 상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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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