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사건 대학생 시국선언 내막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6.24 11:13:32
  • 댓글 0개

‘잠자던 지성’ 드디어 깨어나나

국정원 부정선거 의혹에 잠잠하던 대학생들이 출렁이고 있다. ‘더는 못 봐주겠다’는 분위기다. 서울대학교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각 대학 총학생회가 규탄성명을 내며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은 ‘잠자던 지성이 깨어나고 있다’며 일단 박수를 보냈다. 과연 역대 대한민국 역사를 바꿨던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부활할 것인지. 답답한 국민의 기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6월 둘째 주와 셋째 주 대학교 도서관은 빈자리 없이 빼곡하다. 1학기 중간고사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취업수험서를 펼친다. ‘캠퍼스의 낭만’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그랬던 대학생들이 이번엔 발끈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등장하는  ‘4·19혁명’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

대한민국 최고규범인 헌법의 전문만 보더라도 4·19 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을 짐작할 수 있다. 헌법 전문은 국가기관과 국민이 존중하고 준수해야 할 최고의 가치규범이다. ‘4·19민주이념계승’은 1962년 박정희정권 당시 처음으로 헌법에 명시됐으며, 1980년 전두환정권 시작과 함께 제5공화국 헌법에서 삭제되었다가 노태우정권 때 다시 명기됐다. 제19대 대선 부정선거의 역사적 중요성은 이처럼 헌법 면면에서 드러난다.  

이승만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했다. 그리고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대규모의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경남 마산이었다.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칼과 폭력으로 강제진압에 나섰다.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정부는 무고한 학생과 시민까지 ‘빨갱이’로 몰면서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이 와중에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됐던 김주열군의 시신이 발견됐다. 김군이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떠오른 것. 이에 분노한 시민의 2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고려대학교 4천여 학생들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 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음 날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1960년 4월19일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다. 이승만정권은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진압하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4·19혁명 이승만 하야, 6·10민주항쟁 직선제 도입, 역사 바꿔
시국선언 망설이는 학생회 “어차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시위는 갈수록 더욱 격렬해졌다. 4월26일 서울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자비한 무력에도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 마산에서 목숨을 잃었던 학생이 김군뿐이 아니라는 점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규탄시위로 인한 186명의 희생자 중 77명이 학생이었고 그 중 대학생은 22명이다. 고등학생 36명,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19명이다. 이들은 ‘민주주의 완성’을 외치며 거리로 나와 제일 먼저 희생됐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역사적 비극의 단면이다.

1987년 전두환정권은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적 분노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것이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전두환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 조치 시행을 약속했다. 

이후 시위의 모습은 다소 변화하는 양상을 띤다. MB정권 초기 <PD수첩>을 도화선으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처럼,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대학생의 시위 또는 집회는 개인적인 ‘의식주’ 문제에 국한됐다.


그동안 대학과 정부는 학과통폐합, 반값등록금, 로스쿨 합격제한제, 3고시 폐지 등의 문제로 학생들과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위와 집회는 시국문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이는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불거지는 젊은층의 저조한 투표율과 함께 ‘20대 청년의 정치 무관심’과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정치에 등 돌린 20대

“자발적 참여 중요”

대학교의 시국선언 추진에 여론이 반색을 표하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언론인은 매체를 통해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을 뿐만 아니라,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라고 시국선언을 격려했다.

비운동권인 서울대 총학생회의 시국선언은 한국대학생연합 소속인 이화여대·숙명여대와 비운동권인 고려대·연세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시국선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는 것이 특징이다.SNS가 도화선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생의 움직임이 단순한 시국선언으로 끝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몇몇 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판결이 안 난 상태에서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이르다” “시국선언을 하겠지만 정치적인 내용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며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학시절 학생회에서 활동했던 강모씨는 “대규모 촛불집회로 나간다면 이건 아직 학생회 조직의 힘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회를 중심으로 운동을 주도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것을 시작으로 자발적인 흐름이 모여서 거대한 줄기를 형성해야 한다. 총학생회가 국정원사건을 이끌길 기대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