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18)장치혁의 고합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6.19 11: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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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섬유원료에서 제품까지 동일단지에서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이룩한 기업. 설립 23년 만에 재계 21위까지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지만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린 기업. 하지만 지나친 사세확장과 대북 사업으로 워크아웃 1호가 된 기업. 바로 '고합그룹'이다.

오너의 '외도'

고합그룹은 장치혁 전 회장이 1966년 1000만원의 개인회사로 시작한 고려합섬을 모태로 한다. 76년 고려합섬은 당시까지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산 나일론 제품을 몰아내고 나일론 종합플랜트를 최초로 국산화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이후 70년대 초 개발한 '해피론'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해피론을 설립, 82년 고합상사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81년 1억6600만달러에 머물렀던 고합그룹의 수출목표는 82년 2억8800만달러로 급증, 이를 바탕으로 고합그룹은 82년 고려합섬에서 석유화학 부문을 떼어내 고려종합화학을 설립하고 88년 TPA(화학섬유 원료의 하나)사업에 진출했다. 이로 인해 고합그룹은 '원료생산-섬유생산-직물생산-제품생산'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그림자도 있었다. 80년대 초 대규모 투자 때문에 자금난에 빠져 85년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주거래은행이었던 한일은행이 고려종합화학을 제2자에게 매각하라고 종용할 정도였다. 다행히 86년 화학섬유산업의 호황이 시작되면서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88년 창업 22주년을 맞이해 장 전 회장은 '제2의 창업'을 선언, 유전공학,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정밀화학 분야에 진출했다. 기본 구상은 화학합섬과 아울러 통신, 유통을 양대 축으로 그룹의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충남 당진에 자동차 내장용 부직포 공장을 건설하고 이탈리아·일본 기업과 제휴해 유통 분야에 진출할 계획을 추진했으며 94년 고합물산 내 의류사업부를 신설하고 95년 의류 브랜드 '예씽'으로 캐릭터 캐주얼 의류 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문제는 오너의 '외도'였다. 장 전 회장은 92년부터 북방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92년 ▲연해주 전용 공단 설립을 위한 협의를 시작으로 ▲연해주 나홋타 한국공단 투자 환경 조사 ▲북한에 방문해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공장 설립 협의 ▲한·러 극동협회장으로서 러시아경제사절단과 에너지 합작투자 및 농업그룹 사업 가능성 타진 등의 활동을 했으며 94년에는 장 전 회장이 독립운동가였던 부친 고 장도빈 선생을 기려 설립한 고려학술재단이 연해주 독립운동유적지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95년에는 고합그룹과 소련이 50대 50으로 합작해 연해주와 아무르에 2억8000만평 규모의 대규모 농축산물 경작사업을 추진했다. 같은 해 한·러 시베리아가스 공동개발에 대한 공동합의문을 채택한 장 전 회장은 전경련 산하 남북경협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으며 고려학술재단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극동대학교에 러시아 최초의 한국학대학 설립을 지원했다.

북방 프로젝트 실패 '제1호 워크아웃'
고합홀딩스 설립…버리지 못한 재기 꿈

'회장님'의 외도는 그룹의 외형을 거대하게 성장시켰지만 정작 내실은 챙기지 못했다. 결국 고합그룹은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한 채 98년 7월 '제1호 워크아웃 기업'으로 결정됐다. 당시 고합의 부채 규모는 3조5000억원, 부채비율은 424%에 달했다.

고합그룹은 한일은행을 비롯한 68개 채원금융기관으로부터 2430억원의 협조융자를 받으면서 13개 계열사는 ㈜고합으로 합병하고 3400억원의 유가증권과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정상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면서 장 전 회장은 2001년 채권단의 결정으로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퇴진했다.

2002년 ㈜고합은 "전 경영진이 92∼97년 분식결산으로 회사실적을 부풀리고 재무상태가 불량한 계열사들에게 지급보증을 하는 등 불법을 저질러 회사에 2000여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장 전 회장은 2005년 분식회계로 6794억원의 불법대출은 받은 혐의와 워크아웃 직전인 98년 1월 회삿돈 7억5000만원을 인출해 유용하고 계열사 자금 30억원을 모 선교재단에 출연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장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이듬해 광복절 특별 사면됐다.

지난 2011년 5월 확정 판결이 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재판부가 "장씨는 고합에 33억5000만원과 이자를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온 장 전 회장은 국세청, 금감원, 검찰 등 관계 당국으로부터 재산도피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았고 그때마다 장 전 회장은 무일푼임을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1년 반이 넘도록 병상에서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재기'를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는 말이 들린다. 울릉도 심층수를 이용한 소금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연어양식장 사업 등에도 손을 댔다는 말도 있다. 고려학술문화재단의 회장직도 유지하고 있다.

장 전 회장은 부인 나옥주씨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뒀다. 그 중 장녀 호정씨는 강원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대지 1만2000평, 산림 1만여평을 보유한 땅부자다. 호정씨는 이 곳에서 스포츠시설과 낚시터, 송어양식장, 주말농장, 인공폭포, 식당, 물놀이장 등을 갖춘 초대형 펜션을 운영 중이다. 본지(2003년 12월4일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바 있는 해당 펜션에는 장 전 회장도 가끔 들러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저기 문어발

장 전 회장 일가의 재기 움직임은 호정씨가 운영 중인 한 회사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호정씨는 건설·레저·숙박·음식·영농·무역 등 광범위한 분야를 영위하는 ㈜고합홀딩스의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장 전 회장이 이끌고 있는 고려학술문화재단의 사무실 바로 옆에 ㈜고합홀딩스의 사무실도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이 위치한 서초동 오퓨런스빌딩은 법조타운 핵심요지인 법원·검찰청 정문 앞 대로변에 있는 요지 중의 요지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고합그룹은?>

▲1966년 고려합섬 설립
▲1970년 ㈜해피론 설립
▲1982년 고합상사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고려종합화학 설립
▲1988년 TPA 사업 진출
▲1992년 대북 및 북방 사업 진출
▲1994년 고합물산 내 의료사업부 신설
▲1995년 의류브랜드 '예씽' 론칭
▲1998년 워크아웃 기업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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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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