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풀리는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전말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5.30 14: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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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어 모아 담더니 한번에 모두 총살

[일요시사=정치팀] 한국전쟁 당시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에 전국이 피로 물들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는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이들만 3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학살’이었다. 단지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낙인이 그들을 끔찍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진실은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했다.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고통에도 ‘빨갱이’라는 족쇄 때문에 쉬쉬하며 오랜 세월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대대적인 학살이 자행된 지 6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야….



‘보도연맹’은 몇몇 공안 담당검사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다수를 차지했던 사상범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기타 사회지도자들의 검토와 동의를 거쳐 만든 사실상 관변단체다. 다시 말해 ‘빨갱이 관리조직’이었다. 보도연맹은 좌익인사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보도연맹원(이하 연맹원)으로 가입시켜 한국전쟁 직후 이들을 총살하거나 무자비하게 때려죽였다.

회원 가입 강제 할당
‘데스노트’도 실적주의

보도연맹 중앙본부에는 내무부 주관에 법무부, 검찰청, 국방부 등 행정부의 각 부서가 합동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공조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정부가 직접 민간인 학살에 개입할 수 있었던 구조다.

좌익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전향하거나 남조선노동당을 탈당한 이들이 당초 보도연맹 가입 대상자였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연맹원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강제 할당에 의한 회원 가입방식에 의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좌익뿐만 아니라 이승만정권의 테두리 안에 명확하게 포함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가입대상, 즉 학살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연맹원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1950년 6월15까지 계속됐다. 보도연맹 중앙본부는 각 지역 경찰들에게 연맹원을 모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에 따라 마을 구장(이장) 또는 자수한 마을 책임자들이 사람들을 연맹원으로 가입시켰다.

비료나 고무신 받으려
자진해서 도장 찍어


좌익전향자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도 보도연맹 가입을 권유받았다. 거부할 경우 품앗이나 배급 등 마을 공동생활에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부는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보도연맹 현장 생존자 임모씨는 “이승만정권부터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가입했다. 당시 마을의 젊은 남자들은 좌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권유에 따라 가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라고 진술했다.

참고인 우모씨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마을 곳곳에 ‘자수하면 살고, 아니하면 죽는다’라는 글귀를 엄청나게 써놓았다. 그게 보도연맹에 가입하라는 글이었다.”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아도 죽고, 해도 죽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단체의 성격도 구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입 도장(주로 지장)을 찍은 가입자도 있었다. 무학의 농민들이 그 대상으로, 그것이 자신을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승만정권 테두리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가입대상
현장 생존자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가입했다”

진상조사 신청인(이하 신청인) 박모씨는 “학살이 있기 한 달 전쯤 품앗이도 하고 비료나 고무신을 타려면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내용도 모르고 남편이 도장을 찍었다”라고 말했다.

현장 생존자 유모씨는 “사건(학살)이 일어나기 20~30일 전쯤에 지서(파출소)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마을사람 12명과 함께 갔다. 거기에 순경이 저희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종이(보도연맹 가입신청서)를 한 장씩 나눠주면서 아무 설명도 없이 무조건 ‘보도연맹에 가입하라’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이름에 지장을 찍었다. 당시 함께 지서로 간 사람들은 모두 좌익 또는 우익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저는 옆 마을에 거주하며 좌익활동을 했던 전영문이 우리 이름을 일러주어 이를 근거로 경찰에서 가입시킨 것으로 짐작했다”라고 진술했다.


이들은 모두 경찰에 의해 불시에 소집됐다. 경찰서에 모여 반공교육을 받거나 노역을 했다. 심한 경우 우익단체 단원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신청인 김모씨는 “진천면 문봉리의 강주완은 좌익활동을 했다고 우익단원들이 집의 세간을 부수고 구타하여 앓다가 죽었다”라며 구타로 말미암아 살해당한 비극적인 사연을 전했다.

그리고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긴급명령1호를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 판단 하에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약식재판과 사형선고가 가능하게 됐다. 당시 경찰서 순경으로 근무했던 김모씨는 전쟁이 일어난 날 상부로부터 연맹원 명단을 올려보내라는 전통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 후 2~3일에 걸쳐 연맹원들을 소집시키라는 지시가 각 지역 경찰서에 내려왔다. 대학살의 전조가 울린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정권
사건 거론 철저 금지

각 지역 관계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맹원들을 소집했다. 종을 치거나 경찰이 논밭으로 찾아다니기도 하고 교육이 있다거나 비료를 나눠 준다거나 피난을 시켜주겠다고 속여서 모으기도 했다.

“7월8일 오전에 들에서 논을 매고 있던 중 징소리를 듣고 가보니 마을 마당에 (마을 청년) 40여 명이 모여 있었고 총을 맨 지서 직원 1명과 소방대원 10여 명이 있었다. 그들을 따라갔는데, 그때까지 전쟁이 난 것을 몰랐다.”

“이웃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 마당에 가면 비료 한 짝을 준다 하니 아버지에게 연락하라’라고 하여 들에서 일하던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지서에서 나온 경찰관들이 ‘인민군이 쳐들어와 난리가 났다. 우선 연맹원들로부터 피난을 시켜주겠다’라고 했다.”

당시 소집된 마을 사람들의 진술이다. 이들 대다수는 소집 및 감금에 저항하거나 불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고 자신에게 큰 처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맹원들은 감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 구타로 살해당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군인들은 저희를 공산패라고 하며 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리고 나중에는 쇠로 창을 만들어 옆구리를 쑤셔 몸에서 피가 났다. 때리다가 총 개머리판이 부리지는 경우도 있었다.”

현장 생존자 임모 씨의 진술이다.

6·25 발발하자 보도연맹원 소집 지시 떨어져, 학살의 대전조
소송 50건 진행, 오는 6월 소멸시효 끝나 구제 방법 전무


연맹원 딱지가 붙은 수많은 민간인은 1950년 7월 초에 창고, 갱도, 산골, 우물 등에서 총살당하거나 수류탄 등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사상자만 하루에 1500명에 달했다.

이승만정권에서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을 거론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됐다. 박정희정권은 학살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의 유골을 수습한 유가족들을 빨갱이로 몰아 혁명재판에 부쳐 그들을 압박했다.

또한 이후에도 피해유가족들을 요시찰 대상자로 분류해 감시했다. 이들에게 연좌제를 적용하여 정상적인 사회생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정부 기록들은 모두 소각됐으며 진상은 완전히 은폐됐다.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60년이 지난 후,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배상책임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을 배척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에 의해 피해자로 판명된 유가족들은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조사위의 활동이 2010년 6월 이명박정권에 의해 정지돼, 조사위로부터 피해자 결정을 받지 못한 유가족들은 더 이상 국가에 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피해자, 조사위 결정 받아야
보상입법 마련도 어려워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사위에 의해 손해배상사건 위자료 규명 결정이 난 이후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처음부터 소멸시효가 큰 문제가 됐다”라며 “조사위의 결정이 있은 후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끝나 이 사건을 더 이상 다룰 수 없다. 6월 말이 되면 더 이상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정을 받은 피해 유가족들에게 이 같은 사실이 많이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시효가 완성될 경우, 보상입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피해유족들이 보상받기는 어렵지만 그것도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대법원에서 조사위로부터 피해자로 결정하더라도 그 요건을 엄격히 해석하고 있어, 막상 손해배상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피해 규모가 약 800억 정도로 국가 예산에 대한 정책적 고려를 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관련 소송은 현재 50건 정도 진행되고 있다. 피해유족 윤모씨는 “아버지가 보도연맹 연루 및 좌익으로 몰려 억울하게 참살 당했다. 신문에서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 기사를 읽고 아버지의 억울함과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 때 잔인한 사살 현장에서는..

생존자 확인하고 ‘확인사살’

1950년 7월11일 새벽, 경남 창원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가보도연맹원으로 가입한 민간인들이 창고에 감금돼 있었다.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간 군인들은 구금자에게 기관총과 소총으로 총격을 가했다. 그리고 수류탄을 투척했다.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 김모씨는 “군인들은 ‘산 사람은 일어나면 살려준다’라고 했고, 그 말에 총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일어서자 재차 기관총을 쏘았다”라고 과거사조사진상위원회와의 면담을 통해 밝혔다.

또 다른 생존자는 “1차로 총을 쏜 후 군인들이 말하길 ‘산 사람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문 앞으로 걸어 나오면 살려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생존자 몇 사람이 ‘대한민국 만세’를 하며 문 앞으로 걸어 나가자 군인들이 그들을 총으로 사살했다”라고 전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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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