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발목 잡을 '시한폭탄 인사' 3인방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22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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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윤창중 비스무리' 수두룩하다

[일요시사=정치팀] 방미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금의환국(錦衣還國)을 꿈꿨던 박근혜 대통령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윤창중 폭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윤창중 전 대변인이 언젠간 사고를 칠 '폭탄인사'라며 임명 자체를 만류했었다. 박 대통령 본인만 몰랐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박근혜정부 요소요소에 폭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앞으로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시한폭탄 인사들은 누굴까? <일요시사>가 작심하고 살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4박6일간의 방미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했다. 방미 기간 박 대통령은 그야말로 ‘악’ 소리 나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강행군을 펼쳤다.

방미 기간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연일 상승세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미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며 금의환국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터졌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현지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성공적인 방미
윤창중 악재에 도루묵

성공적인 방미 일정을 보내며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던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윤창중 사건 이후 순식간에 15%나 급락했다. (지난 14일 기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 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p)

물론 사안의 심각성도 심각성이지만 윤창중 전 대변인이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였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졌다. 만약 박 대통령이 모르고 쓴 인사였다면 '한 개인의 문제 때문에 박 대통령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며 오히려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이 작용할 여지도 있었지만 윤 전 대변인만큼은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던 인사였기 때문에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끊임없이 지적받아온 불통인사가 드디어 부작용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 박근혜정부에 박 대통령이 스스로 심어놓은 '폭탄인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는 지적이다.

시작된 불통인사 부작용, 책임은 모두 대통령 몫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는데 대통령 본인만 몰랐다

가장 우려스러운 인사는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요직 중의 요직이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게 돼 권력의 실세로 불린다. 특히 비서실장은 중앙인사위원장을 맡아 장차관급 고위직 인사도 주무르는 자리다. 허 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허 실장은 지난 2000년 총선 때 부산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쏟아내 구설수에 오르는가 하면, 지난 2009년엔 이념적으로 심각하게 편향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허 실장은 부산에서 열린 한나라당 부산시당 국정보고대회에서 "민주당은 빨갱이의 꼭두각시다. 요즘은 좌파라고 하지만 좌파는 곧 빨갱이"라고 주장했었다. 대선기간 국민대통합을 외쳤던 박 대통령의 행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사였던 것이다.

예견된 사고
터질게 터진 것

뿐만 아니라 허 실장은 부적절한 정책을 추진하다 비판을 받기도 했다. 허 실장은 지난 2010년 "'섹스 프리'하고 '카지노 프리'한 금기 없는 특수지역을 만들어 중국과 일본 등 15억 인구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민주당이 "'기생 관광' 을 부활시키자는 소리냐"며 강력히 반발하자 결국 뜻을 접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란 자리는 국정전반을 살피며 동시에 전체 직원들의 공직기강을 단속해야 하는 자리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 진중하고 모범적인 인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허 실장은 그동안의 행보가 너무나 튄다는 평가다.

일례로 허 실장은 지난 3월 군 장성 골프파문이 벌어졌을 때 청와대 전 직원에 대한 골프 자제령을 내렸었는데, 정작 허 실장 자신은 지난 2008년 광복절에 일본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곤욕을 치른 전력이 있다.


허 실장은 또 동생 허모씨가 지난해 3월 새누리당 공천 대가로 5억원을 받은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해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허 실장은 "동생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나를 이용해 저지른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며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친인척이 공천비리에 휘말린 인사를 장차관급 고위직 인사를 주도하는 비서실장 자리에 임명한 것은 박 대통령 스스로 폭탄을 떠안은 꼴이라는 지적이 많다.

두 번째로 거론되는 폭탄인사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윤 장관은 사실 그다지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윤 장관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을 지내다 해수부 장관으로 깜짝 발탁됐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전혀 없었지만 국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해양수산부의 존치가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 그의 모습을 눈여겨본 박 대통령이 그를 기억해뒀다가 이번에 발탁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미혼으로 치매를 앓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윤 장관은 가진 재산도 장관 후보자 치곤 많지 않아 당초 별 문제없이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던 인물이었다.

남은 폭탄인사 누구?
이제라도 관리해야

박 대통령도 윤 장관에 대해 "모래 속에서 찾은 진주"라며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의외의 복병이었다. 장관 인사청문회 이후 윤 장관은 박 대통령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청문회에서 윤 장관은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했고, 진지한 청문회 자리에서 내내 장난스런 웃음을 보여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윤 장관의 임명을 놓고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론은 윤 장관에 대해 '몰라요장관' '인턴장관' 등의 신조어를 생산해 내며 연신 조롱했고, 야권도 "해녀만도 못한 해양지식을 가진 인물을 해수부장관에 앉히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여론악화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윤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현재 해양자원, 영토를 둘러싼 주변국들과의 심각한 갈등과 어민들의 열악한 경제상황 등을 감안하면 해수부 장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과연 윤 장관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 장관이 임기 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화살은 당연히 박 대통령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청문회 이후 윤 장관은 기자들 사이에서 폭탄으로 불린다.

현재는 청와대의 권유로 이미지메이킹 기법까지 교육 받은 덕에 윤 장관이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지만 언행이나 행동이 짧은 시간 안에 바뀔 수 없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다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트러블메이커'다.

실제로 윤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한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이례적으로 취재기자들이 대거 몰렸다. 장관급 인사의 현장방문은 별다른 뉴스거리가 생산될 것이 없기 때문에 이토록 기자들이 몰리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윤 장관이 또 폭탄을 터뜨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기자들을 몰리게 한 것이다.


윤창중은 시작일 뿐 정부 곳곳 폭탄인사 '수두룩'
스스로 심은 폭탄인사, 잘 피해갈 수 있을까?

윤 장관은 일단 이날 현장방문을 무난하게 마쳤지만 당분간 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지대한 언론의 관심 속에서 윤 장관이 폭탄인사로 돌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박 대통령 스스로 심어놓은 '시한폭탄'이다. 이 위원장은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다. 이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주류로 칩거하던 2009~2011년에는 친박계 중진으로 무게중심 역할을 했고, 개헌론, 세종시 수정론 등을 놓고 당내 친이계와 친박계가 충돌할 당시에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당초 박 대통령은 방송통신융합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우리나라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정작 방통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엔 정치인 출신 비전문가를 임명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방통위원장에 측근인 최시중 전 위원장을 임명하면서 임기 내내 언론중립성 논란에 시달려왔다.

박 대통령이 실제로 이 위원장을 통해 방송장악을 할 의도가 아니라면 스스로 야권에 빌미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 위원장은 현재 자신은 박 대통령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 있으며, 독립적인 위치에서 공정한 방송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이 위원장은 비전문가라는 한계 때문에 박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장담했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제대로 키워 낼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불통인사 양면성
'잘하면 산다'


이외에도 박 대통령은 이른바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안만을 강조하는 '불통인사'로 수많은 논란을 겪었다. 박근혜정부에서 야권과 국민여론의 반대에도 임명을 강행한 인사는 이들 말고도 여기저기 수두룩하다.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이번 윤창중 사건처럼 곳곳에 내재된 폭탄인사들이 발목을 잡는다면 박 대통령이 거둔 성과는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연히 책임론이 불거지겠지만 반대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박 대통령이 뚝심 있게 인선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양면성이 있다"며 "하지만 언론의 특성상 잘한 일보다는 못한 일이 쉽게 부각되기 때문에 박 대통령으로서는 그동안 강행했던 불통인사들이 국정운영과정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불통인사의 부작용"이라고 평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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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