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탈북 간첩 진실게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5.16 20: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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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에 '빨갱이' 자백?…'북풍' 노렸나

[일요시사=사회팀] '댓글 조작'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북풍'을 겨냥,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최근 법정 공방에 돌입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2013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국정원발 대형 공안사건이 터졌다. 서울시 공무원 중 간첩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너희 오빠가
간첩이라 말해"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주무관 유모(33)씨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 지령에 따라 탈북자 리스트를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지난 1월13일 긴급 체포됐다. 자신이 관리 중이던 탈북자 명단과 한국정착상황, 탈북자 생활환경 등의 정보를 북으로 넘긴 혐의다.

지난 2004년 북에서 탈출한 유씨는 서울시에서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중국을 통해 독재정권의 폐쇄성을 알게 된 후 탈북을 결심했다"던 유씨는 자신이 택한 나라에서 간첩으로 몰리는 비극에 처했다.

유씨는 북한에서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로 알려졌다. 함경북도에서 1년간 외과의사로 활동했던 유씨는 탈북 후 서울 Y대에서 중문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자랑했다.


지난 2011년 6월에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서울시 특별공채에서 2년 계약직에 합격, 체포 전까지 1만여명의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탈북자 출신으로는 보기 드문 성공 가도를 달린 셈. 그래서 유씨는 탈북자의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불리며 국내 언론에도 자주 소개됐다.

그러나 유씨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가 있었다. 바로 출생의 비밀. 유씨는 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으로 부모가 모두 한족인 '화교'였다. 이와 관련 유씨의 지인은 "탈북자 중 화교가 여럿 있는데 유씨도 그 중 1명"이라며 "이 때문에 유씨는 평소 다른 탈북자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유씨의 지인은 "유씨가 화교 출신임에도 탈북자로 국내에 정착해 성공을 거듭하자 자연스레 주변의 시기를 많이 받았다"며 "워낙 탈북자 사회에서 유명했던 터라 그를 둘러싼 루머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북한에서 화교는 성공한 집단에 속한다. 대다수의 화교가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큰돈을 만지기 때문. 유씨 가족 역시 중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탓에 일반 주민보다는 부유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유씨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한다.

서울시 공무원 긴급 체포…국정원 6년전부터 내사
'화교 출신 엘리트' 탈북자 정보 북에 넘긴 혐의

한국 국적을 취득한 유씨는 대학 졸업 후 무역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이른바 '환치기' 사건에 연루돼 2008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단순 가담이 인정된 유씨는 무혐의 처분으로 풀려났다. 당시 검찰은 유씨가 '화교' 출신인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유씨는 어머니의 장례 소식을 듣고 북으로 입국했다가 국정원의 조사를 받았다. 유씨의 입국 사실을 신고한 건 유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또 다른 탈북자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씨는 중국 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북한에는 화교로 등록돼 있어 남북을 오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유씨의 간첩 행위를 의심했다. 특히 유씨가 북한 국경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 직원에게 소위 '댓가'를 제공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추궁했다.


하지만 유씨는 소위 '프로돈'이라 불리는 관례적인 선물을 보위부에 제공했을 뿐 간첩사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정원은 유씨의 이적행위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 뒤에도 유씨는 사업을 목적으로 북한에 서너 차례 입국했다. 그리고 국정원은 유씨의 월북 사실을 전해 들으며 그가 간첩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확신했다.

현재 국정원은 유씨가 북으로 보낸 소포에 기밀 정보가 담긴 노트북을 동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씨는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유씨를 2007년부터 감시했던 국정원은 2011년에도 경찰을 동원, 유씨를 내사했다. 유씨와 적대관계에 있던 탈북단체가 유씨를 간첩으로 신고한 데 따른 대응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씨는 여동생인 Y(26)씨를 북한에서 빼내 한국으로 입국시켰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남한에 온 탈북자가 북에 있는 가족을 빼내는 일은 매우 흔하며, 국내 탈북자 중 상당수는 아직 이북에 가족을 두고 있어 이들과 상시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즉 유씨 역시 다른 탈북자들처럼 자신의 여동생과 접촉해 그(Y씨)를 빼냈다는 설명. 그러나 유씨 입장에서는 국정원이 쳐놓은 덫에 걸린 셈이었다.

체포된 공무원
구금된 여동생

유씨의 여동생 Y씨는 한국인 이름을 가진 여권을 들고 중국을 경유, 한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이를 파악하고 있던 국정원은 지난해 10월30일 Y씨를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로 이송했다. 그리고 3개월여 동안 Y씨에 대한 강제 수사에 들어갔다. 여동생 Y씨를 통해 오빠 유씨의 간첩 행위를 입증하겠다는 국정원의 노림수였다.

국정원은 조사 과정에서 Y씨의 자백을 받았다. Y씨의 육성을 담은 녹음 파일이 그 증거였다.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12년 11월, 국정원은 Y씨를 통해 유씨가 간첩일 수 밖에 없는 마지막 퍼즐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2013년 1월, 유씨를 체포하기 위한 영장이 발부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유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등 혐의로 같은달 1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유씨의 신병을 국정원으로부터 넘겨 받아 구속수감했다. 그리고 2월26일 유씨에게 여권법 위반 혐의 등을 추가로 적용,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이 밝힌 주요 혐의는 유씨가 탈북자 200여명의 신원을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을 통해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유씨가 구속기소된 다음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탈북 화교 남매 간첩사건에 대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검찰과 국정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유씨 여동생인 Y씨의 허위진술에 따른 조작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앞서 Y씨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의 지령에 따라 오빠 유씨의 간첩행위를 돕기 위해 국내로 잠입, 탈북자 신상정보를 넘겨 받아 북한에 전달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이 자백이 국정원의 회유와 압박에 의해 꾸며진 '거짓 자백'이란 폭로였다.

당시 구명 요청을 받고 사건을 접수한 민변은 중국에 거주하는 유씨 남매의 아버지와 접촉, "딸이 자백을 했다면 정신이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거짓 증언"이란 회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씨의 방북 일시와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하면 Y씨의 자백이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란 설명이었다.

이에 유씨의 변호인단은 경기도 시흥 소재의 중앙합동신문센터로 향했다. 불법 구금돼있는 Y씨를 접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정원은 Y씨와의 접견을 불허했고, 서신 교환도 가로막았다. 이 상황에서 유씨는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며 Y씨와의 대질신문을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증거인멸을 이유로 유씨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Y씨의 불법 구금은 6개월 넘게 이어졌다.


국정원 "간첩"
민변 "조작"

3월4일, 독방에 갇혀 있던 Y씨가 빛을 봤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인신구제청구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날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열린 증거보전절차에서 Y씨와 민변은 6개월여만에 처음 대면하며 탈북자 간첩 사건의 반전을 알렸다.

같은달 12일 민변이 한 언론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 사건은 탈북자와 우리 국민의 인식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며, 유씨의 여동생은 국정원 직원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오빠에게 큰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허위 진술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Y씨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자백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Y씨는 최초 오빠 유씨의 간첩 행위를 부인했다. Y씨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듣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2012년 11월, Y씨를 구속 수사 과정을 기록한 녹화영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의 녹화분은 증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수 관계자는 이 무렵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Y씨가 혐의를 부인하자 그를 신문하던 수사관은 그간 유씨를 내사했던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집을 Y씨 앞에 내밀며 Y씨의 중국 본명을 크게 불렀다. "유00." Y씨는 자신이 화교란 사실이 들통나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더불어 그의 눈 앞에 쌓인 방대한 서류철에 Y씨는 완전히 무너졌다. 누가봐도 유씨는 명백한 간첩이었다.

Y씨가 심리적으로 몰리자 국정원은 이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Y씨의 등에 Y씨의 중국 본명을 프린트한 게시물을 붙인 뒤 국정원 요원들을 앞에 세웠다. 그리고 번갈아가며 Y씨의 중국 이름을 소리내 불렀다. "유00." 매일 계속되는 가혹행위에 Y씨는 자해를 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시도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어떤 날은 말로 구슬리고, 어떤 날은 물건을 집어던지는 회유와 폭력의 나날이 반복됐다. 결국 Y씨는 투항했다. 국정원이 쓴 시나리오에 동의하기로 한 것. 민변 등에 따르면 Y씨는 국정원이 미리 짜준 얼개에 자신의 진술을 맞췄다. 국정원은 Y씨에게 "간첩 행위를 인정하면 유씨의 형량을 낮춰주고, 나중에 한국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Y씨는 1월3일 최초로 혐의를 시인했다.

민변 "거짓증언 강요"조작 의혹 제기
유씨 여동생 구금·폭행 주장…진실은?

그러나 Y씨의 진술을 기초로 한 공소장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 국정원은 Y씨가 2012년 여름, 유씨로부터 받은 USB를 들고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북으로 갔다고 설명했지만 최근 Y씨는 "나는 화교이기 때문에 차를 통해서도 북한에 갈 수 있으며, 심장이 약해 수영을 못할 뿐 아니라 여름에는 두만강에 물이 불어 수영으로 국경을 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또 유씨가 북에서 간첩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시점(1월22∼24일)에 중국에서 지인을 만나 사진을 찍은 장면, 검찰 조사에서 ‘유씨가 간첩이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 Y씨가 답을 하지 못했던 점, 유씨가 노트북과 함께 보위부로 보냈다는 소포의 무게가 기준 이하인 점 등이 의혹으로 제기됐다.

특히 검찰은 유씨가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신변을 위협받아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것으로 주장했지만 이에 대해 Y씨는 "우리 가족은 이미 2011년 7월 북에서 중국으로 완전히 이사를 했기 때문에 검찰의 주장대로 '2012년 2월과 7월에 북한에 정보를 넘겼다'라는 기소 사실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 역시 "이외에도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을 반박할만한 증거가 더 있다"며 "재판에서 유씨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정원 민변 고소
진실공방 2라운드

지난달 27일 민변은 유씨 사건에 대한 공판을 앞두고,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는 유씨의 여동생 Y씨가 자리한 가운데 "북한 화교 출신 공무원 유씨 사건이 국정원에 의해 조작됐다"는 Y씨의 증언이 이어졌다.

이어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재판에 모습을 드러낸 Y씨는 피고석에 앉은 오빠 유씨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민변 측은 "Y씨가 국정원의 강압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유씨를 방어했다. 하지만 검찰은 "과거 '왕재산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신병을 확보한 변호인이 핵심 증인인 여동생을 회유해 진술을 번복하게 만들었다"고 공격했다.

공판 후 국정원은 "민변이 회유·협박 등 허위 사실을 말해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씨 변호인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유씨 변호인단 장경욱 변호사는 "모든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증거를 통해 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김용민 변호사는 "유씨의 억울함이 곧 밝혀질 것"이라며 "유씨와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재판에 임할 것"이란 각오를 전했다.

유씨의 공무원 임용을 전후로 시작된 '간첩 사건'의 진실공방이 국정원과 민변의 소송전으로까지 확대된 가운데 현재 Y씨는 오는 23일 강제 출국을 앞두고 서울 모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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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부인은 통신상 기밀을 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대통령의 아내’다. 비화폰이 필요하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 김건희씨는 그 어떤 영부인과는 달랐다. 윤석열정부 초부터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화폰은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고 내용도 암호화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경호처·안보 담당 고위 관계자, 군·정보기관에 근무 중인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민간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건희씨는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지켜졌던 관행을 파괴하고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수사기관·정치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 개입 정황 확인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씨가 사용했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에 나섰다. 정민영 특검보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관계자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당사자 21명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및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제출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외압이 의심되는 기간 비화폰 통신 기록을 분석하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특검보는 김씨도 비화폰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본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8월 소위 ‘VIP 격노’ 이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된 배경에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점으로 한 수사 외압과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인물의 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이 당시 보안성이 높은 비화폰을 사용해 연락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통신 기록 확보에 추가로 나선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일반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들은 어느 정도 확인됐는데 중간중간 비화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누구와 어떤 시기에 수발신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 윤·김 통신 기록 확보 조태용·김태용 등 “VIP 격노 사실” 앞서 특검팀은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통신 기록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고, 경호처 측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특검에 제출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비화폰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이 됐던 2023년 7월31일 VIP 격노 회의 전후 기간 이들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내가 VIP(윤 전 대통령)한테 얘기하겠다”고 지인에게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아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비화폰 기록을 토대로 김씨가 이 전 대표와 어떤 통화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씨의 비화폰 사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 이전엔 대통령 부인이 비화폰을 상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호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부인이 비화폰을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관행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경호처는 “비화폰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 등을 근거로 한 대통령경호처의 내부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김씨에 대해서는 관련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에게 지급된 비화폰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송수신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송만 가능하다. 그의 비화폰 기록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의 비화폰 기록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도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지난해 7월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으로 검찰 출장 조사를 받기 전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30분 넘게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부 맞다” 줄줄이 실토 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김 전 수석이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2차례 통화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김씨의 비화폰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특검팀은 최근 조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가량 조사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을 당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 7명 중 한 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육군 중장·현 국방대학교 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 대통령실 내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조 전 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보실 회의 참석자로만 보면 4번째다. 정 특검보는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기록의 회수와 관련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확인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순직 사건 기록을 이첩한 당일 임 전 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수사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 전 비서관 등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북경찰청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이첩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박모 총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며 이 전 비서관이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총경은 대통령실과 국수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3년 8월2일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경북청이 연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2023년 8월2일 오후 1시21분 이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뒤이어 오후 1시42분 유 전 관리관에게 전화했다. 누구와 통화했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 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청에서 전화를 걸어올 것이란 말을 들었고, 경북청 관계자와 통화하며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관리관은 노모 당시 경북청 수사부장과의 통화에 대해 “경북청에서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해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판단하기론 ‘항명에 따른 무단 이첩이라 회수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유 전 관리관과 경북청의 통화 이후 해병대수사단에서 이첩한 수사 기록은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검찰단에서 회수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으로 혐의자가 적시된 해병대 수사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를 거쳐 2명으로 축소돼 경북청에 다시 보내졌다. 특검팀은 수사의 초점을 점차 국방부검찰단의 수사 기록 회수와 국방부조사본부의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 확인으로 옮기고 있다. 정 특검보는 “기록 회수와 재검토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수사 초반에 비해 기록 회수나 (조사본부) 재조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김진락 전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장(육군 대령)의 2023년 8월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수첩을 확보해 국방부의 외압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아닌 2023년 초부터 사용 “문제 생기거나 위기 때마다 애용” 국방부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해병대수사단 수사 기록 재검토에 들어갔고 닷새 후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혐의자로 판단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방부조사본부는 총 6차례에 걸친 보고서 수정을 거쳐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한 재검토 결과를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김씨와 비화폰으로 통화한 인물들은 모두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에 김씨가 윤 전 대통령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화폰으로 김 전 수석과 조 전 원장 등과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한 인물은 윤석열정부 초대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했다고 한다. 김씨가 비화폰을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2023년 초부터다. 특검팀도 2023년 3월부터 김씨가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9월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사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과 김씨가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직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연남 역할은? 한 정보사 관계자는 “김씨의 어머니인 최은순씨의 내연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노상원을 후원하던 사람이라는 풍문은 많이 알려진 얘기”라며 “노상원과 내연남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내연남이 노상원에게 돈을 퍼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연남이 노상원과 비화폰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무속과 고민 상담 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