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끈적’ 국힘-신천지 20년 인연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8.04 13:20:31
  • 호수 1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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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 비열한 커넥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신천지·통일교의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개입 의혹을 폭로했다. 그동안 국민의힘과 신천지에 대해선 “20년 넘게 유착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일본 정계를 뒤흔들었던 통일교도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유착 의혹이 있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신천지의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장으로 재임 중이었던 지난 2022년 8월 신천지 교주 이만희씨를 그의 별장서 만났다”며 “대선후보 경선 당시 신천지 신도 10만여명을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가입시켜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도왔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당원 투표
압승 비결?

이어 “검찰총장 재임 당시 코로나 사태 관련 신천지 압수수색을 2번이나 막아준 은혜를 갚기 위해 윤 전 대통령을 도왔다고 들었다”며 “지금도 신천지 신도 상당수는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달 28일엔 “그 땐 일시적으로 1개월 당비 납부자에게도 투표권을 줬다”며 “신천지 교인들은 지난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집중적으로 입당했다”고 덧붙였다.

홍 전 시장은 통일교도 언급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후보의 대선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당원 투표서 압승한다고 큰소리친 배경이 신천지·통일교 등서 가입한 수십만 집단 책임당원 가입이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며 “윤석열 정권은 태어나선 안 될 정권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홍 전 시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송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 입당 원서엔 자신의 종교를 적는 항목이 없다”며 “당원 명부서 특정 종교 여부를 판단할 방법이 없고, 홍 시장이 제기한 의혹엔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신천지의 관계는 약 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의혹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국민의힘의 전신 중 하나인 새누리당의 당명에 담긴 의미는 신천지와 똑같다. 이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의혹이 제기된 지 오래다.

‘산 옮기기’ 이골 난 신천지
대선후보 경선 개입 의혹 폭로

시작은 신천지 전국청년회장을 맡았던 차한선씨가 지난 2002년 한나라당 내 ‘이회창 대선후보 중앙선대위’ 소속 청년위원회 직능단장과 2030 위원회·대학생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은 사실이 알려진 시점이었다.

기독교 전문 매체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신천지 전 교육장이었던 신현욱씨는 “이만희씨가 이 후보의 당선을 꿈으로 계시받았다고 여러 번 말했다”며 “신천지 신도들은 이 후보 유세에 박수 부대로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차씨의 한나라당 내 활동은 계속 이어졌다. 신천지 내부에선 지난 2003년 4월7일 ‘서청원 대표 최고위원 경선 시 지원사항 및 향후 계획’이란 문건이 작성됐다. 이에 따르면, 신천지는 신도 2500여명을 동원해 50만 유권자에게 전화 선거운동을 하고, 인터넷 카페 ‘청원사랑’을 개설해 2주 안에 회원 1만명을 가입시킬 계획이었다. 또한, 한나라당의 지구당 227개에 각각 30명씩 당원으로 가입해 관련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차씨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신천지 안드레 지파 신도 400명을 동원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들은 한나라당 서청원 전 의원을 당 대표에 이어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당 대표 경선에선 고 최병렬 전 대표가 당선됐다.


서 전 의원과 차씨는 계속 끈끈한 관계를 이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9월24일엔 ‘신천지 20주년 수장절 기념 예배’가 경기 과천시 관문체육관서 진행됐고, 그 직후엔 차씨의 결혼식이 진행됐다.

주례는 서 전 의원이 맡았고, 최 전 대표와 당시 한나라당 인천시지부 이경재 위원장 등의 화환이 식장 앞에 장식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씨는 훗날 한나라당 안상수 전 대표의 비서관을 지냈고, 지난 2010년엔 한나라당 비상근 부대변인으로 재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천지는 지방선거서도 한나라당을 도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신천지는 지난 2006년 1월24일 한나라당 맹형규 당시 의원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요셉·시몬·성북 야고보 지파서 각각 200명 이상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인터넷 여론조사서 맹 의원에게 투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지난 2006년 12월부터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본격 등장한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 전 대통령은 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가 개최한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관련 행사에 참석해, 황 전 비서·이씨와 같이 앉아 대화했다. 이어 다음 해에 진행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엔 신천지도 본격 참여해서 12개 지파서 총 1만여명의 신도를 동원해 박 전 대통령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 의미
따졌다 낙천

당시 신천지에선 신도들을 한나라당에 대거 입당시켰고, 경선에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천지가 박 전 대통령을 도왔던 이유는 “신천지가 이방 바벨론의 교단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고, 복음 전파·전도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2012년엔 당명을 한나라당서 새누리당으로 바꾼다. 이 당명은 곧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의미상 신천지와 똑같기 때문이다. 신천지서 12년 동안 활동하면서 섭외부장을 지냈다가 탈퇴한 김종철씨는 지난 2017년 2월17일 CBS 팟캐스트 방송 ‘싸이판’에 출연해 “이씨가 설교 중 ‘그 당명은 내가 지어준 것’이라고 말했다”며 “모든 교인이 흥분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씨는 경북 청도 출신이라서 한나라당의 골수 지지자”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신천지를 합법적인 종교 단체로 만들려고 했다”며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과천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과천시장을 신천지 교인으로 선출하려고 했다가 과천 땅값이 비싸서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이란 당명에 대해선 당 내부서도 반발이 있었다. 새누리당 정미경 전 의원은 지난 2016년 11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서 “새누리는 신천지가 아니냐고 우회적으로 따졌다가 국회의원 공천서 떨어졌다”며 “당 내부서 유승민 전 의원만 내 의견에 동조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유 전 의원은 “당명서 종교적 냄새가 난다”고 반대했고, “누가 무슨 뜻으로 지은 당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소문마저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신천지서도 “우리와 새누리당 당명은 무관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신천지는 “신천지는 성경의 ‘새 하늘 새 땅’이란 의미”라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새누리당과 연계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반박이 무색하게 새누리당 기독교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이경재 전 의원이 지난 2004년 9월18일 ‘제4회 신천지 전국체전’서 축사를 한 동영상이 공개됐다. 지난 2008년엔 박 전 대통령이 이만희씨에게 연하장을 보낸 것이 공개돼 큰 파문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불거진 국민의힘과 신천지 관련 의혹은 주로 ‘인력 동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용식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대표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서 “반사회적 종교집단은 정치권과 결탁해 표심과 인력을 동원해주고, 정치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천지는 ‘산 옮기기 작전’ 혹은 ‘가나안 정복 작전’을 통해 기성 교회를 잠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천지는 기성 교회에 ‘추수꾼’으로 알려진 전도자들을 잠입시킨다. 추수꾼들은 기성 교회에 신도로 가장해 들어가 정탐한 후 목사와 신도들을 이간시켜 신도들을 포섭한다.

이 과정을 거쳐 목사를 축출하고 교회를 장악하면, 이들은 “수확한다”고 한다. 이들은 심지어 천주교·불교를 상대로도 신도들을 포섭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같은 신천지의 포교 방식은 각종 선거·경선서 조직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정치인이 목말라 하는 표심·인력 및 조직 동원 모두 ‘전문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다.

아울러 홍 시장이 통일교 개입 의혹을 제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통일교는 이미 일본서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과거에 정치 문제에 깊숙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전력이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미국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재미 교포 사업가 박동선씨 등 로비스트들을 내세워 미국 의회에 불법 로비를 한 일명 ‘코리아 게이트’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했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불쾌하게 여겼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비스트들을 앞세웠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976년 10월 “박 대통령이 박씨와 중앙정보부 등을 앞세워 미국 공직자들에게 불법 로비를 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서 로비 의혹 연루 여부를 의심했던 미국의 상·하원 의원은 100명이 넘었다. 미국 내 수사 기관들이 총동원돼 수사에 착수했고, 하원에선 프레이저 위원회가 구성돼 청문회가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과 결별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도 이 청문회에 출석했다.

미국 의회가 정리한 청문 보고서에 따르면, 로비에 동원된 실무진 중 상당수는 통일교 신자들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가 통일교를 일컬어 “중앙정보부가 가진 또 하나의 팔”이라고 판단했을 정도였다.


보고서엔 ▲통일교 소유 기업들을 통한 한국 정부의 비자금 조성 의혹 ▲통일교와 일본 우익단체의 유착 의혹 ▲5·16 쿠데타 일부 주역과 통일교의 각별한 관계 ▲통일교와 박 전 대통령의 유착 의혹 ▲통일교를 통한 미국 정치 영향력 행사 시도 등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중 ‘통일교와 일본 우익단체 유착 의혹’은 훗날 아베 전 총리 암살 사건으로까지 연결된다. 암살범 야마가미 데쓰야는 통일교에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가정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야마가미의 모친은 자녀들을 버리고, 통일교에 헌금하기 위해 외조부가 물려준 재산과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모두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야마가미는 수사기관서 “우리 집안을 망친 단체를 일본에 불러들인 사람이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란 사실을 알았다”면서 “그 손자인 아베 전 총리를 노린 것”이라고 진술했다.

코리아 게이트
미국 뒤흔들어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21년 통일교 행사서 축사했다. 그러자 통일교 피해자 단체 관계자들은 여러 차례 아베 전 총리에게 “통일교를 지원하는 듯한 행동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지만, 아베 전 총리는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도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의 유착설은 간간이 제기됐지만,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아베 전 총리 사후 아베 전 총리와 문선명 전 통일교 총재의 손녀사위 오츠카 히로타카가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당사서 찍은 사진이 공개돼, 큰 파문으로 연결됐다.

아베 전 총리 일가와 통일교의 관계는 외조부 기시 전 총리 때부터 시작됐다. 리처드 새뮤얼스 MIT 국제학연구소장이 지난 2001년 일본정책연구소를 통해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기시 전 총리는 지난 1968년 문 전 총재를 소개받았고, 문 전 총재가 설립한 국제승공연합을 높이 평가했다. 통일교 일본 본부는 기시 전 총리가 보유한 도쿄 소재 토지에 설립됐다.

이후 통일교는 자민당이 치르는 각종 선거에 동원됐고, 그 대가로 일본 내 포교를 용인받았다. 통일교의 평화 사절단 리틀엔젤스의 1971년 도쿄 공연 당시엔 기시 전 총리가 미치코 당시 황태자비를 초청해 단원들을 소개해줬다. 아울러 문 전 총재가 지난 1984년 탈세 혐의로 미국서 수감됐을 당시엔 기시 전 총리가 미국에 직접 탄원서를 제출했다.

문 전 총재도 자신이 지닌 일본 정계서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지난 1993년 발간된 ‘문선명 어록’에 따르면, 문 전 총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와 가깝게 지냈고, 정치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 자민당 의원 약 180명이 우리와 관계가 있다”며 “이들은 모두 공산당과 싸우고 있고, 그 많은 패거리를 내가 만들어놨다”고 강조했다.

끝나지 않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
일본 정계 뒤흔든 통일교 국내서도?

실제로 일본 내 통일교 조직 국제승공연합은 1970년대 후반 자민당의 스파이방지법 제정 등과 관련해 재정 지원과 여론 형성을 도왔다. 이어 지난 1986년 진행된 중·참의원 선거서 통일교의 지원을 받은 130명이 당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카케 마사시의 논문 <일본국제승공연합운동의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통일교의 교리를 학습하고 통일교를 지지하는 조건을 수용했다고 한다.

이어 지난 1991년엔 통일교 신자 70명이 국회의원들의 비서로 파견돼 선거를 도왔단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자민당이 지난 2012년 마련한 개헌안 초안은 국제승공연합이 마련한 초안 내용과 일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통일교 신자들이 특정 후보 지원을 위해 신분을 속인 채 자민당 후보 당선을 위해 부정 투표를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심지어 지난 2021년 10월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제2차 내각 각료 등 약 30명이 통일교 관련 단체에 회비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교는 국내에선 직접 정치활동에 뛰어들어 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해 제18대 총선에 후보자 258명을 출마시켰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선자는 1명도 배출하지 못해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이후에 정치활동에 직접 참여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있었던 홍 전 시장의 주장 이후 신천지와 똑같이 통일교가 국민의힘을 매개로 배후서 정치활동에 참여했단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홍 전 시장의 주장에 따르면, 신천지의 활동은 통일교가 일본서 자민당을 매개로 전개했던 정치활동과 비슷하다.

국민의힘에선 이미 이단 시비가 불거지고 있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의 개입 의혹이 크게 드러났다. 전 목사는 이미 대선후보서 교체될 뻔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도운 적이 있다. 손 목사와 깊이 연결된 전한길씨는 이미 국민의힘에 입당해 오는 22일 진행될 전당대회에 개입할 의사를 밝혔다.

이단 시비
유착 의심

지금까지 국민의힘엔 이단 시비가 불거진 종교와 유착했단 의혹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홍 전 시장의 폭로가 이 의혹의 전모를 밝히는 단계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두 목사와 전씨의 활동으로 인해 극우 성향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서 신천지·통일교의 개입 의혹까지 불거진 것은 국민의힘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느덧 ‘정치 개입 프로’ 단계에 진입한 두 종교가 정말로 국민의힘을 좌지우지했는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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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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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