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지율 가파른 '급상승세' 비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09 09: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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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오른다고요? "거 참 희한하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무섭게 상승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진 잇따른 인사실패로 내각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던 박 대통령이었다. 몇 달째 이어진 대북 안보위기로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국면에 돌입했고, 대선기간 약속했던 공약들은 줄줄이 후퇴 논란을 겪고 있다. 심지어 커져가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정권의 정당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지지도 상승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60%를 돌파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4월30일~5월1일에 걸쳐 전국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RDD 유선전화로 진행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p)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직무평가 지지도는 전월 대비 18%p나 상승한 61.4%p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35.3%p로 전월 대비 16.6%p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무려 5주간이나 연속으로 상승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초반 지지율이 평균 70%대를 상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지지율이지만 분명 무서운 상승세임에 틀림없다.

무서운 상승세
정가 이목 집중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만 하더라도 국정지지도가 40%대를 맴돌며 취임 1년차 1분기 역대 대통령 최저 지지율 기록을 잇달아 갱신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함께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크게 상승했다.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48.5%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뒤를 이은 민주당은 17.5%로 지지율이 10% 대로 떨어졌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는 30%를 넘어섰다. 뒤를 이어 통합진보당 2.1%, 진보정의당이 1.3%였고, 무당층은 30.5%였다.

특별한 호재 없는데 당선 후 최고 지지율
"박근혜 지지율 왜 올랐을까?" 관심집중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처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과 관련, 정치권에선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박 대통령은 불과 지난달 민주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일련의 인사 논란에 대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직접 사과까지 했었다. 잇따른 인사실패로 정부 출범 이후 두 달이 다 되어 가도록 내각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두 손 두 발을 든 것이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이어진 안보위기는 벌써 3달째다. 국민들의 안보 피로감은 극에 달했고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 국면이다.

대선기간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각종 공약들은 줄줄이 후퇴논란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일파만파 커져 가면서 정권의 정당성마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큰 폭으로 상승한 이유는 무엇일까?  

재보선 효과
선거의 여왕

첫 번째 이유는 4·24재보선 효과라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가장 대표적인 별명은 '선거의 여왕'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한 뒤 자신이나 당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선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냈었다. 물론 이번 4·24재보선은 비록 박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한 선거는 아니었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선거의 여왕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집권 초반 연이은 인사 실패로 몸살을 앓았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전국단위의 선거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대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선거 후보자에 대한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는 과감한 정치실험을 시도했다.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지난 대선에서 여야의 공통된 공약이었지만 민주당이 공천강행을 결정한 상황에서 새누리당만 일방적으로 무공천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무척 큰 모험이었다. 자칫 선거결과가 좋지 못했다면 비록 명분은 지킬 수 있었겠지만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고집을 피우다 선거를 망쳤다"며 책임론에 휩싸여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새누리당이 이같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엔 박 대통령의 뚝심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실리와 명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반면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라는 대선공약까지 어겨가며 총력전을 펼쳤던 민주당은 스스로 자멸하는 꼴이 됐고, 원내 제1야당으로서 박 대통령을 견제할 명분과 동력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가 박 대통령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안보위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군 통수권자다. 대선기간부터 과연 여성이 군 통수권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려의 시각들이 많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취임도 하기 전에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란 악재를 만나면서 취임과 동시에 대북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박 대통령 취임 후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 미사일 발사 위협 등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도발 위협을 이어갔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 속에서 박 대통령은 첫 여성 군 통수권자에 대한 우려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차분하고 단호한 대응 기조를 유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안보는 보수세력을 집결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이슈다. 평소 진보진영의 대북정책을 '대화만 중요시하다 북한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다'며 비판해왔던 보수진영은 박 대통령의 단호한 대북기조를 환영했고, 보수 대결집을 불러 일으켰다.

또 역대 정권에서도 안보위기가 닥치게 되면 대통령이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지지도가 오르는 현상이 발생했었는데 이는 위기가 닥치게 되면 온 국민이 똘똘 뭉치는 결집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도 이 같은 결집 효과의 수혜자가 된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인사 실패 논란과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등으로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됐는데, 대북 이슈가 크게 부각되면서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이슈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게 됐다.

모 보수 일간지는 "안보위기에 국정원이 압수수색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는데 안보위기가 국내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정치권에서 "박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또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의 안보위기 대응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비교적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조차 박 대통령이 대북 위기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실제로 안보위기가 닥친다고 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무조건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응이 미숙하면 오히려 지지율이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태 때 대응이 미숙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G20개최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던 시기였다. 그 중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잔류 인원 전격 철수 조치에 대해서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비판도 많지만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의 허를 찌르는 결정이었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화위복 안보위기
여성 군 통수권자의 힘

세 번째 이유는 민주당의 자중지란 때문이란 분석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해 지금까지도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지리멸렬의 격랑 속에 빠져있다. 민주당이 자중지란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대선 패배의 책임이 친노에게 있다는 책임론 때문이다. 대선 패배 이후 친노 진영에서는 제대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비노 진영에서는 대선 패배를 이용해 친노 진영을 밀어내려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를 힘을 모아 극복하기는커녕 서로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겠다며 이전투구를 벌인 것이다. 새누리당이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해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훨훨 나는' 새누리 '박박 기는' 민주
'안철수 신당' 창당하면 둘 다 찬밥

민주당 지도부의 미숙한 당 운영도 자중지란을 부추겼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대선평가보고서를 제작했는데, 이 보고서는 당내 설문조사를 통해 지난해 4·11 총선부터 18대 대선까지 민주당을 이끌었던 지도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점수화해 논란을 부추겼다. 보고서에 의하면 4·11총선 당시의 한명숙 대표가 76.3점으로 가장 큰 책임이 있고, 대선 당시의 이해찬 대표가 72.3점,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67.2점, 문재인 전 후보가 66.9점, 문성근 전 대표대행이 64.6점 등으로 책임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보고서는 대선 패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보다는 당내 갈등만 더 부추겼다. 게다가 이러한 당내 혼란을 수습하고 민주당을 이끌어가야 할 당 대표를 선출하는 5ㆍ4 전당대회는 낯 뜨거운 비방전으로 변질돼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한길, 이용섭 후보가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과 불만을 쏟아내는 모습을 연출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세에는 민주당의 이런 모습들을 보며 실망한 국민들의 반발심리도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의 3분의 1 수준이다.

민주당 자중지란
반사이익 '톡톡'

한 정치전문가는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크게 상승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지만 지지도 상승의 동력이 대체로 외부요인에 있는 만큼 마냥 기뻐하기엔 이르다"며 "실제로 안철수 신당이 창당될 경우 민주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보다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기존 정치권이 뼈저리게 반성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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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