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장진호 ‘4000억 돈전쟁’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4.08 1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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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 떨어졌나…“꼬불친 비자금 내놔!”

[일요시사=경제1팀] ‘계열사 24개, 연매출 1조6000억원, 재계순위 19위….’ 80년 진로 신화를 무너뜨린 장본인인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옛 부하 직원에게 4000억원대 재산을 맡겼다가 빼앗겼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도대체 4000억원이란 거액은 어디로 흘러들어간 것일까. 한 편의 막장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장 전 회장의 ‘돈 전쟁’을 짚어봤다.



‘재벌 2세의 문어발 경영과 외환위기. 부도와 재집권 시나리오. 자금관리를 담당했던 2인자의 배신. 해외 도피중인 구사주의 형사고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다.

고소로 드러난
배신의 드라마

2003년까지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 전 회장이 4000억원대에 이르는 자금을 횡령했다며 자신과 함께 일하던 옛 진로그룹 임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 1일 검찰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2000년대 초 회사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차명으로 사들인 진로의 부실채권 4000억원어치를 몰래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로 전직 진로그룹 재무 담당 이사인 오모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장 전 회장은 고소장에서 진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던 2002년 오씨를 통해 진로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고 밝혔다.

장 전 회장은 “고려양주 주식을 담보로 조달한 자금 150억원 등 총 897억원을 들여 진로 부실채권을 사들였다”며 “총 5800억원어치를 액면가의 10∼20%대 가격에 사들인 뒤 오씨에게 채권 관리를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H사, C사, K사 등 차명회사 4∼5개가 동원됐고, 장 전 회장이 2003년 대검찰철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자 오씨는 이 중 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빼돌렸다는 게 장 전 회장의 주장이다.

장 전 회장은 당시 골드만삭스가 채권을 매입하며 경영권을 뺏으려는 시도를 해 기업회생 및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조사부(부장검사 이헌상)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장 전회장의 고소 대리인 H씨를 불러 고소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장 전 회장은 이번 수사를 위해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다.

‘남 떡’탐내다
‘내 떡’도 잃어

진로그룹 고소사건의 시작은 장 전 회장이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회장 타계 후 88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 전 회장은 ‘탈주류’를 선언, 본업인 ‘소주’에서 벗어나 건설 유통 등에 뛰어들었다.

장 전 회장의 사업 다각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취임 첫해 진로유통센터를 개장한 것을 시작으로 89년 종합광고업 진출(새그린), 연합전선인수, 조선신약 인수, 건설업 진출(진로건설), 91년 통조림 제조업체 펭귄인수(진로종합식품), 92년 진로쿠어스맥주 설립, 94년 진로 베스토아 설립과 위스키 사업 진출 등 88년 15개였던 계열사는 97년 24개까지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및 지급보증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들 계열사의 경영성과가 부진해지면서 2조원이 넘는 자금 중 대부분은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97년 외환위기 등이 맞물리며 부도 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그해 부도유예협약을 적용시켜 ‘진로 살리기’에 나서면서 금융권으로부터 800여억원을 지급받았지만 같은 해 9월 진로그룹은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지급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후 일부 계열사는 법정관리로, 일부는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 결정을 받았다.

당시 주력계열사 진로의 화의조건은 채무원금 상환을 5년 동안 유예 받는 것이었다. 자본잠식 상태가 심각했던 진로종합유통 등 7개 계열사는 제3자 매각을, 진로건설 등 7곳은 파산선고 혹은 폐업됐다. 1999년 말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넘어갔고, 진로 발렌타인은 해외기업에 인수됐다.

4000억대 자금 횡령 혐의로 옛 가신 고소
비리로 구속되자 차명채권 빼돌렸다 주장

고소장대로라면 당시 그룹 주력사인 진로를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장 전 회장은 화의 중이던 진로의 부실채권들을 사모아 최대 채권자가 됐다. 법정관리 후 이를 출자전환형식으로 주식으로 바꾼 뒤 진로를 ‘재집권’하려는 시나리오였다. 

장 전 회장 계획은 58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입에 성공하면서 일면 구체화되는 듯했지만 이는 이듬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장 전 회장이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된 것이다.

장 전 회장은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5개월여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5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난 그는 4개월 뒤 가족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이중 국적취득 후
화려한 도피생활

당시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이미 2002년 ‘찬삼락’(Chan Samrach)이라는 현지 이름을 취득한 상태로,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다.

캄보디아 사람이 된 장 전 회장은 현지에서 ‘ABA은행’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지난 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 현지에서는 ‘진로은행’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2003년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 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장 전 회장은 또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함께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도 소주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의 아파트 건설과 소주 회사 설립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무작정 문어발 사업으로 그룹 공중분해
수배 받고도 해외서 술집·카지노 운영

장 전 회장은 현재 세금 미납액과 각종 금융 기관의 체납액, 벌금 등 수백억 원이 넘는 빚이 있다. 그럼에도 장 전 회장이 아무 제약 없이 현지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Hun Mana)의 비호 덕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로비 대상 1순위’로 통한다. 장 전 회장은 훈마나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 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먹튀’ 전략을 쓰는 바람에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고, 지난해 2월에는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장 전 회장은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법인을 둔 게임 업체 ‘이다양광’에 투자, 운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이 투자한 ‘이다양광’ 게임사에서 게임 개발에 착수했던 개발자들이 몇 개월 동안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국내로 복귀한 상태다.

장 전 회장은 현재까지도 중국 게임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으며 현지인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 역사의 진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장본인은 아무 걱정 없이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로 도산 이면에
비스토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 전회장이 제기한 이번 고소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재산반환이나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도 사실규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로 회생자금?…파산배경 밝혀질지 주목


특히 장 전 회장은 이 돈이 기업회생을 위해 마련했던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고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씨가 과연 4000억원대 거액 자금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지 ‘돈의 행방’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진로그룹 파산 비망록이 서서히 드러날 전망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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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