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장진호 ‘4000억 돈전쟁’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4.08 1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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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 떨어졌나…“꼬불친 비자금 내놔!”

[일요시사=경제1팀] ‘계열사 24개, 연매출 1조6000억원, 재계순위 19위….’ 80년 진로 신화를 무너뜨린 장본인인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옛 부하 직원에게 4000억원대 재산을 맡겼다가 빼앗겼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도대체 4000억원이란 거액은 어디로 흘러들어간 것일까. 한 편의 막장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장 전 회장의 ‘돈 전쟁’을 짚어봤다.



‘재벌 2세의 문어발 경영과 외환위기. 부도와 재집권 시나리오. 자금관리를 담당했던 2인자의 배신. 해외 도피중인 구사주의 형사고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다.

고소로 드러난
배신의 드라마

2003년까지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 전 회장이 4000억원대에 이르는 자금을 횡령했다며 자신과 함께 일하던 옛 진로그룹 임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 1일 검찰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2000년대 초 회사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차명으로 사들인 진로의 부실채권 4000억원어치를 몰래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로 전직 진로그룹 재무 담당 이사인 오모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장 전 회장은 고소장에서 진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던 2002년 오씨를 통해 진로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고 밝혔다.

장 전 회장은 “고려양주 주식을 담보로 조달한 자금 150억원 등 총 897억원을 들여 진로 부실채권을 사들였다”며 “총 5800억원어치를 액면가의 10∼20%대 가격에 사들인 뒤 오씨에게 채권 관리를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H사, C사, K사 등 차명회사 4∼5개가 동원됐고, 장 전 회장이 2003년 대검찰철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자 오씨는 이 중 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빼돌렸다는 게 장 전 회장의 주장이다.

장 전 회장은 당시 골드만삭스가 채권을 매입하며 경영권을 뺏으려는 시도를 해 기업회생 및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조사부(부장검사 이헌상)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장 전회장의 고소 대리인 H씨를 불러 고소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장 전 회장은 이번 수사를 위해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다.

‘남 떡’탐내다
‘내 떡’도 잃어

진로그룹 고소사건의 시작은 장 전 회장이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회장 타계 후 88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 전 회장은 ‘탈주류’를 선언, 본업인 ‘소주’에서 벗어나 건설 유통 등에 뛰어들었다.

장 전 회장의 사업 다각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취임 첫해 진로유통센터를 개장한 것을 시작으로 89년 종합광고업 진출(새그린), 연합전선인수, 조선신약 인수, 건설업 진출(진로건설), 91년 통조림 제조업체 펭귄인수(진로종합식품), 92년 진로쿠어스맥주 설립, 94년 진로 베스토아 설립과 위스키 사업 진출 등 88년 15개였던 계열사는 97년 24개까지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및 지급보증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들 계열사의 경영성과가 부진해지면서 2조원이 넘는 자금 중 대부분은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97년 외환위기 등이 맞물리며 부도 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그해 부도유예협약을 적용시켜 ‘진로 살리기’에 나서면서 금융권으로부터 800여억원을 지급받았지만 같은 해 9월 진로그룹은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지급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후 일부 계열사는 법정관리로, 일부는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 결정을 받았다.

당시 주력계열사 진로의 화의조건은 채무원금 상환을 5년 동안 유예 받는 것이었다. 자본잠식 상태가 심각했던 진로종합유통 등 7개 계열사는 제3자 매각을, 진로건설 등 7곳은 파산선고 혹은 폐업됐다. 1999년 말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넘어갔고, 진로 발렌타인은 해외기업에 인수됐다.

4000억대 자금 횡령 혐의로 옛 가신 고소
비리로 구속되자 차명채권 빼돌렸다 주장

고소장대로라면 당시 그룹 주력사인 진로를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장 전 회장은 화의 중이던 진로의 부실채권들을 사모아 최대 채권자가 됐다. 법정관리 후 이를 출자전환형식으로 주식으로 바꾼 뒤 진로를 ‘재집권’하려는 시나리오였다. 

장 전 회장 계획은 58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입에 성공하면서 일면 구체화되는 듯했지만 이는 이듬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장 전 회장이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된 것이다.

장 전 회장은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5개월여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5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난 그는 4개월 뒤 가족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이중 국적취득 후
화려한 도피생활

당시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이미 2002년 ‘찬삼락’(Chan Samrach)이라는 현지 이름을 취득한 상태로,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다.

캄보디아 사람이 된 장 전 회장은 현지에서 ‘ABA은행’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지난 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 현지에서는 ‘진로은행’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2003년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 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장 전 회장은 또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함께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도 소주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의 아파트 건설과 소주 회사 설립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무작정 문어발 사업으로 그룹 공중분해
수배 받고도 해외서 술집·카지노 운영

장 전 회장은 현재 세금 미납액과 각종 금융 기관의 체납액, 벌금 등 수백억 원이 넘는 빚이 있다. 그럼에도 장 전 회장이 아무 제약 없이 현지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Hun Mana)의 비호 덕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로비 대상 1순위’로 통한다. 장 전 회장은 훈마나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 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먹튀’ 전략을 쓰는 바람에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고, 지난해 2월에는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장 전 회장은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법인을 둔 게임 업체 ‘이다양광’에 투자, 운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이 투자한 ‘이다양광’ 게임사에서 게임 개발에 착수했던 개발자들이 몇 개월 동안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국내로 복귀한 상태다.

장 전 회장은 현재까지도 중국 게임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으며 현지인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 역사의 진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장본인은 아무 걱정 없이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로 도산 이면에
비스토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 전회장이 제기한 이번 고소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재산반환이나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도 사실규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로 회생자금?…파산배경 밝혀질지 주목


특히 장 전 회장은 이 돈이 기업회생을 위해 마련했던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고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씨가 과연 4000억원대 거액 자금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지 ‘돈의 행방’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진로그룹 파산 비망록이 서서히 드러날 전망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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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