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무형문화재 박찬수 목조각장

"박물관은 우리의 미래다"

[일요시사=사회팀] "침묵이 금인 시대는 갔다." 목아(木芽) 박찬수 선생은 '부처가 입을 열다'라는 작품을 통해 이렇게 선언했다. 늘 닫혀있던 부처의 입을 연 건 그만큼 우리 시대에 해야 할 말이 많아서다. 여기 금보다 더 값진 게 있다. 그건 바로 전통. 이 전통을 말하기 위해 박찬수 선생이 직접 입을 열었다.

 

 

경기도 여주에 자리 잡은 목아불교박물관은 평일임에도 견학 온 중학생들로 북적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인 박찬수 목조각장은 지난 1993년 사비를 털어 이 목아불교박물관을 개관했다. 민족혼 전수가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는 이 장인은 "박물관을 지키는 게 민족혼을 지키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족혼 지킴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박물관만큼 그 나라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주는 곳은 없어요. 예를 들면 불란서의 루브르 박물관이 대표적이죠. 이렇게 다른 나라들은 박물관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들의 전통을 보존-계승하는데 우리나라는 전통에 관심이 없어요. 세계화에 이어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우리 현실에서 이대로 가다간 한민족의 전통과 고유의 주체성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물관은 그래서 중요한 거죠.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후세에 남기는 일이니까."

최근 한민족박물관(가칭)이라는 새로운 박물관 개관을 준비 중인 박찬수 선생은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걸겠다"며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 무장을 통한 독립운동이 있었다면 지금은 문화를 통한 독립운동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보세요. 원래 스타일이라는 표현이 한국에 없잖아요? 그런데 또 싸이의 말춤은 서양에 없는 춤이고…. 어느 정도 외국 흐름은 받아들이면서 우리 고유의 것을 접목할 때 좋은 문화 콘텐츠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싸이 하면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그게 문화가 가진 힘이죠."


전통하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 그래서 전통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종종 '고리타분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선입견과 달리 박찬수 선생은 누구보다 외국 문물에 개방적이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가진 건 물론이고 박물관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유럽 각국을 순회한 전력까지 있다.

"유럽 사람들은 지구가 종말해도 모나리자의 그 미소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말해요. 그만큼 자신들이 이룩한 문화적 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는 증거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재가 없느냐?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일본 국보1호는 우리 선조가 만든 작품이 뿌리잖아요?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모나리자만큼이나 예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많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보호에서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도 못한 게 현실이죠."

독립운동가 자처한 민족 전통 수호자
"박물관은 공공재" 국가 책임 회피 말아야
세대-이념-종교 갈등 넘어서 자유로운 예술 세계 꿈꿔


그는 문화재 보호 정책과 관련, 정부가 기존의 소극적인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민족관이 없습니다. 저는 특별전 형태로라도 민족관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민족관에 전시될 문화재들이야말로 민족혼줄과 연결돼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재들이 유실되면 우리 민족의 혼줄, 즉 뿌리가 끊기는 거거든요. 저는 이 때문에라도 정부가 직접 문화재를 발굴하고 나아가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지금 목아박물관에 보물이 몇 점 있는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리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아요. 그뿐이겠습니까?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사립박물관들은 관리-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하지만 정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거죠."

마음을 바꿔야

그는 인터뷰 내내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가짐을 바꾸면 전통의 안정적인 계승은 물론이고 세대-이념-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예술가 박찬수가 가진 오랜 꿈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으로 개개인의 갈등을 봉합한다면, 모두가 염원하는 화합의 시대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겠냐는 얘기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 신앙 때문에 이곳 불교미술관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전 남은 생애, 이런 종교를 초월한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불교 편향적이라는 말도 요즘엔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다듬은 어린동자승 조각을 보고, 그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어떤 이념을 가졌든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선조들의 전통을 계승한 예술가로서 이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일이고요. 물론 박물관 운동도 계속 할 겁니다(웃음)."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박찬수 목조각장은?]

▲1949년  출생
▲1973년  신상균 선생, 가또오 선생 불교목조각 사사
▲1982년  제1회 단원예술제 종합대상 수상
▲1987년  백만불수출탑 수상 (대통령상)
▲1989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1993년  목아박물관장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기능보유자 인정
▲2000년  한국박물관협회 이사
▲200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수상
▲2002년  대한민국 만해예술상 수상
▲2003년  포천중문의과대학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2010년  주영 한국문화원 초청 특별전시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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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