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특사 한달 만에 사라진 천신일 "어디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3.18 11: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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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이미 퇴원 "아프다고 빼내주더니 벌써 다 나았나?"

[일요시사=정치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삼성서울병원에서 이미 퇴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풀려난 지 불과 한 달여 만이다. 천 회장은 수감생활 중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고 출소 당시에도 구급차에 실려 이송됐다. 올해 칠순을 맞이한 천 회장은 과연 출소 한 달 만에 건강을 되찾은 것일까? <일요시사>가 천 회장의 근황을 단독으로 추적했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삼성서울병원에서 이미 퇴원했다. 이 사실은 <일요시사>가 지난 5일 단독으로 확인했다. 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지난 1월31일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하면서 곧바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천 회장은 당시 구급차를 타고 출소할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출소 한 달여 만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전격 퇴원한 것이다. 

구급차 출소?
구급차 탈옥?

천 회장이 정확히 언제 퇴원했는지는 개인정보보호 관련규정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입원자 명단에서 천 회장의 이름은 분명히 사라져있었다.

가능성은 세 가지다. 서울구치소 출소 후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던 천 회장이 처음부터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거나, 최근 퇴원해 자택으로 돌아갔거나, 다른 병원으로 이송돼 새로 입원했을 경우다. 따라서 <일요시사>는 세 번째 경우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천 회장 측에 충분한 소명기회를 주기로 했다.

취재기자는 우선 전화통화를 통해 비서실에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비서실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며 두 번씩이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취재진은 세중나모여행 본사에 직접 찾아가 답변을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이마저도 거부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천신일 통해 본 '병보석' 살아있는 권력 봐주기 실태
초특급 병원서 화려한 휴가 보내다 사면직전 복귀

천 회장은 지난 2010년 12월23일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워크아웃 조기종료 등 각종 청탁과 함께 46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됐었다. 그러나 천 회장은 구속 9개월여 만인 지난 2011년 9월8일 척추질환과 고혈압을 이유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았고, 2012년 11월30일 재수감 될 때까지 무려 1년 넘게 삼성서울병원 VIP병동에서 생활해 왔다.

당시 천 회장이 재수감 된 것도 '현재 수감 중인자만 사면을 받을 수 있다'는 사면 규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천 회장은 구치소로 돌아온 후 두 달 만에 특사로 풀려난다. 

이처럼 수감기간 중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낸 천 회장이 특사 한 달 만에 퇴원한 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일이다.

천 회장이 형집행정지 요청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척추질환과 고혈압. 이 질환들은 짧은 시간 안에 완쾌가 될 수 없는 병들이라는 점에서 천 회장이 형집행정지를 받기 위해 지금까지 '꾀병'을 부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다.

천 회장이 구급차를 타고 출소한 것도 비판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일종의 ;‘쇼’가 된다. 게다가 한 달 만에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지병이었다면 천 회장은 어떻게 1년 넘게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외부 병원에서 지낼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안에선 중환자
밖에선 꾀병환자?


설령 실제로 병세가 심해 치료가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구치소 내에서도 통원치료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따라서 천 회장의 형집행정지처분 심사과정에서 오류나 봐주기는 없었는지 철저히 되짚어 봐야만 한다. 수감 중엔 꼭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며 무려 1년 넘게 형집행정지를 받았던 사람이 사면을 받자마자 갑자기 퇴원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일반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요시사>는 좀 더 정확한 사실확인을 위해 지난 11일 천 회장이 입원해 있었던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1주일 전만 해도 천 회장이 입원 환자 명단에 없음을 확인해줬던 삼성서울병원 측은 이번에는 천 회장에 대한 자료가 비공개로 설정돼 있어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



천 회장이 약 1년3개월가량의 형집행정지기간 입원해 있었던 VIP병실 관계자는 심지어 천 회장과 관련한 질문을 하자마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취재진을 쫓아내기도 했다. 병원 측은 천 회장의 형집행정지 심사와 관련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천 회장이 형집행정지기간 생활했던 삼성서울병원 VIP병동은 인터폰을 통해 신원을 확인해야만 병동 복도로 들어설 수 있는 등 보안이 철저했다. 외부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곳은 하루 병실비만 수십만원에 달하며 병실 안에는 응접실과 샤워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천 회장은 형집행정지기간 중 주거지가 병원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몇 차례 부적절하게 외출한 사실이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범죄를 저질러 재판 중에 있었음에도 남부럽지 않은 호화생활을 즐긴 것이다.
사실 정치인과 경제인, 고위관료 출신 비리 사범 수감자들의 '습관성' 형집행정지 신청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에선 건강하게 활동했던 유력인사들도 검찰에만 오면 너나할 것 없이 중환자가 됐던 것이다.

VIP 호화생활
범죄자 맞아?

형집행이 정지되면 나중에 교도소로 복귀한 뒤 그만큼 형량이 연장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총 수감기간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천 회장의 경우처럼 특별사면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 유력인사들은 수감생활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다 사면을 받아도 남은 형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일단 형집행정지를 신청하고 본다는 것이다.

구속수감 이후에 형집행정지로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다 특별사면을 받는 것은 범법을 저지른 유력인사들에겐 일종의 코스가 된지 오래다. 때문에 대검찰청은 지난 2005년 형집행정지 허용기준을 대폭 강화했으며, 지난 2009년엔 '형집행정지 심사위원회'까지 도입 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최고의 실세로 군림하다 범법행위로 구속수감됐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 위원장과 천 회장 등은 한때 삼성서울병원 VIP 병실에 나란히 입원하는 웃지 못 할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형집행정지 심사의 형평성을 의심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최 위원장과 천 회장은 실제로 지난 1월31일 특별사면을 받았다.

병보석 나왔다 사면석방 "범털들의 정해진 코스?"
검찰만 오면 중환자, 출소하면 20대 부럽지 않은 체력

황당한 이유를 앞세워 형집행정지를 신청하는 이들도 많다. 일례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5월 “치매가 의심된다”며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감 생활에 별 무리가 없는 것 같다”며 불허했다. 공 전 교육감은 과거에도 당뇨병, 전립선 비대증을 호소하며 형집행정지를 요구한 바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형집행정지를 위해 진단서를 첨부해오지만 실제로 정밀검진을 해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른바 '휠체어재판'의 역사는 지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휠체어재판의 원조 격인 정 전 회장은 형집행정지의 혜택을 누구보다 톡톡히 봤다. 정 전 회장은 수서비리, 한보사태 등에 굵직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형이 확정됐지만 5년5개월 가량을 복역하다가 고혈압 및 협심증의 병세로 석방됐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강릉영동대 교비 7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또다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2심 재판 도중인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현재까지 해외 도피 중이다.

공정성 어디에?
못 믿을 사법부

한편 당시 정 전 회장에게 진단서를 발급해준 이모 전 서울대병원장이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는 등 한차례 소동이 일기도 했다. 법원은 정 전 회장과 이모 병원장 간 오간 돈이 병원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정치권의 한 전문가는 "검찰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형집행정지를 시행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일반인들보다 유력인사들의 형집행정지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형집행정지 시행의 공정성을 높일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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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