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쥐락펴락 ‘국정원 조작사’ 대추적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2.14 13: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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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절대반지’ “대권 잡으려면 이것부터 쥐어라!”

?[일요시사=정치팀] 정권이 위기에 닥치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국 한 가운데 있다. 뜨뜻미지근한 경찰의 수사 태도 때문에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이 대선을 한 달이나 넘기고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실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한반도에서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의 ‘조작’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가 쓰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공작’에 기생해 권력을 휘두르는 ‘정보기관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되짚어 보았다. 

 


조작은 조작인데, 이번엔 다르다. 조작도 진화하는 모양이다. 멀쩡한 사람이 빨갱이로 둔갑해 옥고를 치르고 고문을 당하던 그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정보화시대에 맞게 그래도 ‘인터넷 댓글 조작’이다. 국정원 직원이 십 수개의 아이디를 이용해 야권 대선 후보를 향한 여론을 조작했다. 대선 직전 ‘조작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 수사를 발표해 국민으로부터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경찰이 첫 등장인물이라는 점이 새롭다. 모습은 바꿔도 습관은 바뀌지 않나 보다.

개헌여론 안 좋아
돌파용 ‘북풍조작’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한 ‘북풍조작’은 국정원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탄생하기도 전이다.

195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총선의 판세를 뒤엎기 위해 엄청난 사건을 계획했다.

하필이면 이게 성공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 조작이 이미 반세기 전에 태동한 것이다. 북풍조작의 역사적 뿌리나 다름없는 그 유명한 ‘진보당 사건’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시대의 풍운아’ 조봉암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북풍조작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이 3선을 하기 위해 제출한 개헌안이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에서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되자, 자유당 의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4사5입’ 원칙을 주장하며 부결선포를 취소하고 가결을 선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4사5입 개헌 파동을 계기로 여당인 자유당이 국민의 신망을 잃게 됐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고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 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던 인물이다. 선거과정을 보더라도 조봉암은 이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면서 위협적인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조봉암을 숙청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중앙정보부 태어나기 전 1958년 이승만 ‘북풍조작’으로 총선압승
시대의 풍운아 조봉암, ‘동백림 사건’ 관련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이 전 대통령은 위헌적인 개헌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조봉암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대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봉암은 북한 간첩과 접선하였고, 공산 집단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진보당 사건에 연관된 몇몇 관계자들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석방되었으나, 조봉암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59년 11월 사형이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총선은 이 전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이후 조봉암에 대한 사면복권신청서가 국회에 제출되는 등 각고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봉암이 연루된 진보당 사건이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적 정치탄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판결에 대한 재심 등을 권고했다. 

2011년 1월20일 대법원은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 일치로 무죄를 선고했으며, 조봉암의 신원은 복권됐다. 조봉암이 북풍조작으로 목숨을 잃은 지 52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선거 때만 되면 정보기관에 의해 이 같은 일들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1967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일어난 ‘동백림 조작 사건’이 국가 정보기관에 의해 벌어진 첫 대규모 공안사건이다.

박정희의 공작단
관련자만 203명

당시 6월8일에는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다. 총선의 부정 의혹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확대되자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혐의가 미미한 사람들에게 이를 확대해 뒤집어씌웠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관련자만 무려 203명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이들이 동백림 소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利敵)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입북 또는 노동당에 입당해 국내에 잠입,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간첩행위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들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재판결과는 고문에 의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유학생과 교민들의 강제연행까지 이루어져 외교적 마찰까지 불러왔다. 박정희 정권은 결국 서독 및 프랑스의 의견을 수용해 사건 관계자에 대해 잔여 형기 집행을 면제, 사형수까지 모두 석방했다. 하지만 이미 사형을 당한 이들의 목숨을 다시 살릴 방법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동백림 사건에 의해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냉각됐다. 진보당 사건에 이어 북풍조작이 또다시 성공해 정권에 힘을 실어준 격이었다.

1987년 전두환 군사정권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위와 같은 조작을 기획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수지김 사건’으로 정권 유지를 위해 저질러진 가장 유명한 공안사건이다. 당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치사 사건’ 등 전두환 정권의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다.

홍콩에서 남편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수지김은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에 의해 북한 공작원으로 둔갑했다. 한순간에 빨갱이의 핏줄이 된 수지김의 가족 중 3명이 정신병과 화병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유족들의 진상규명에도 국정원의 압력에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3년 8월14일 42억원의 배상판결이 내려졌다. 국정원은 같은해 8월21일 사건조작을 인정하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평범한 한 여성을 간첩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무려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진실 밝히려면
오랜 세월 기다려야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안기부는 맹활약했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간첩사건과 연루시키려는 ‘중부지역당 사건’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겨냥한 ‘초원복집 사건’이 대선을 앞두고 연이어 일어났다.

10월6일 안기부는 “남로당 이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62명을 적발, 300여 명을 추적 중이라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당시 평민당 후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가 이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시켰다. 이 때문에 안기부는 당시 여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 후 이 사건은 조용히 덮였다.

초원복집 사건은 선거 직전에 일어났다.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다. 이 자리에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이 함께했다.

이날 비밀회동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대화가 오갔다. 이같은 발언은 정주영 국민당 후보 측이 민자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들과 공모하여 도청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한 것이었다.

‘수지김 사건’으로 가정파탄, 역풍 맞은 ‘초원복집’ 안기부직원 연루
“권력자의 정보기관 사유화” 전문가들 경고…인권유린 실태 심각

결과는 ‘역풍’이었다.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다. 주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영남세력은 더욱 결집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권을 잡았다.

그리고 5년 후 북풍은 다시 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안기부는 또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북한에서 월북한 오익제라는 인물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안기부에 의해 공개됐다. 그리고 김정일이 보낸 선거자금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의 ‘공작’이었다. 하지만 북풍은 미미했다. 안기부의 조작이 선거의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국민은 더 이상 ‘레드컴플렉스’에 빠져있지 않았다. 


이번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을 보더라도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조작을 통해 억지로 여론을 형성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권력자의 정보기관 사유화’를 꼽고 있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은 수뇌부뿐 아니라 실·국장급, 과장·계장 등 대부분의 고위 계급들이 대통령의 측근 비선라인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국민도 직원도
조작의 희생양

이 때문에 국정원은 매번 중요한 대북정보는 놓치고,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오히려 특정세력을 위해 정보를 사용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권을 짓밟는다는 우려다. 거기엔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조작의 도구로 쓰인 국정원 직원의 인권도 마찬가지라는 경고의 목소리다.

제18대 대선의 중심에 있는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은 앞으로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진실이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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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