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특사 '박근혜 공범론' 전모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2.04 15: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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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아웅 "짜고 치는 '밀당'에 속지 마세요"

[일요시사=정치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측근 구하기가 결국 강행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연이은 경고에도 이 대통령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심지어 거침이 없었다. 비난 여론은 이 대통령에게로 집중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사면권 남용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선 긋기에 나섰던 박 당선인이 사실상 특사 결행을 묵인, 또는 협조한 정황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논란에서 과연 박 당선인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그 이면을 추적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전격적으로 특별사면을 강행했다. 지난해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항소를 포기하며 제기되기 시작한 '측근 사면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복절 60주년 경축사에서 자신의 임기 내 일어나는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사면설이 불거지자 여야를 막론하고 거센 비판여론이 형성됐지만 이 대통령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심지어 떠오르는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고(?)'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힘쓰는 이명박
기죽은 박근혜

이 대통령 측은 이날 단행한 특별사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본질은 측근들을 구하기 위해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도 스스로 무너뜨려버린 몰염치한 사면이라는 평가다.

이 대통령 측은 이번 특사에서 대통령 친인척 배제, 임기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 제외, 사회 갈등 해소 등을 원칙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사 대상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번 특사에 포함된 조현준 효성 사장의 경우 이 대통령과 사돈지간이다. 법적으로는 인척관계가 아니라지만 사돈을 인척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 사장은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사촌형이다.

조 사장은 작년 9월 회사 자금으로 미국에서 개인용 부동산을 사들인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9억7천여만원을 선고 받았다.


뻔뻔한 측근 구하기 "사면 아닌 집단 탈옥"
"진짜 구할 사람은 안 구하고" 노동계 망연자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의 경우는 각각 파이시티 로비 건으로 2년6월과 세무조사 무마청탁 건으로 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권력형 비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이유로 면죄부를 줬다. 이들이 비리와 연루된 것은 이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들 사례는 그동안 언론에서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 사례로 수차례 거론돼왔다.

또 이해수 한국노총부산지역본부 의장의 경우 직원수를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국제교류 실적을 허위로 만들어 부산시로부터 억대의 보조금을 타낸 혐의(횡령 및 사기)로 지난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됐지만 이번 사면에서 노동계를 대표해 사면대상이 됐다. 정작 노동계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파업 등 투쟁과정에서 구속돼 있지만 이번 특사 대상에는 단 한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특별사면 가장한
초법적 집단탈옥

이처럼 이 대통령의 이번 특사는 측근과 정권의 코드에 맞는 보수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으로 요약된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사면을 '집단탈옥'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형기를 거의 다 채운 용산참사 철거민들과 일부 야권 정치인도 대상에 포함되긴 했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한 끼워 넣기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이번 특별사면 대상자 중 핵심으로 꼽히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천신일 회장의 경우는 형이 확정된 지 겨우 한 달여 만에 시행된 초고속 사면이라는 점에서 더욱 비판이 거세다. 판결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면됐다는 것이다.

또 두 사람은 짧은 수감생활 중 상당기간을 병보석으로 외부 병원에서 보냈다. 그러다 사면설이 불거지기 시작한 후에야 황급히 감옥으로 돌아갔다.

역대 대통령들도 임기 말 특별사면을 관행적으로 실시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유독 이 대통령의 이번 특별사면이 거센 비판에 직면한 것은 스스로 정하고 내뱉은 원칙을 깼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안의 심각성 때문인지 박 당선인 측은 사면 발표 직후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이번 특별사면 조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모든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이 져야 할 것"이라고 선 긋기에 나섰다. 공동책임론이 제기될 경우 박근혜 정권은 자칫 출범도 하기 전에 도덕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박 당선인은 이날 발표가 있기 전까진 "취임식 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라며 특별사면과 관련한 입장표명을 피해왔다.

박 당선인은 대통령후보시절 대통령의 사면권을 분명하게 제한해 무분별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측근 특사설이 불거진 후 약 두 달 가까이 침묵을 유지하다 지난달 26일에서야 이 대통령의 측근 특사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박 당선인은 이후 몇 차례 더 공개적으로 이 대통령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실제로 특사를 막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선 긋기를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특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박 당선인이 충돌하고 있는 것은) 서로 입장을 알고 하는 게임"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크게 증폭됐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발언을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말에 측근들을 사면시키는 실익을 얻으면서 모든 비난을 자신이 감수하는 한편 박 당선인은 이번 특사를 강하게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해 명분을 얻기로 사전에 양자가 양해를 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야권 역시 이미 박 당선인을 이번 특사의 '공범'으로 지목한 상태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국민들 앞에서는 마치 양측이 심각한 충돌이라도 할 것처럼 으르렁 거렸지만, 그 내부를 잘 아는 이동관 전 수석의 이 발언은 이번 사면이 '짜고 치는 밀당'이었다는 국민적 의구심을 확인시켜주는 발언"이라며 박 당선인 측과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했다.

신구 권력 충돌?
신구 사면 담합?

실제로 다수의 정치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이 이번 특사를 사실상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선 박 당선인이 이번 특사 문제를 두고 이 대통령과 극심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지만 박 당선인이 특사 문제와 관련해 취한 행동은 대변인을 통해 간접적인 의사를 몇 차례 피력한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여권의 한 인사까지 "이 대통령이 특사를 강행하겠다고 하면 박 당선인으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감안해도 박 당선인의 대응은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20여 일 뒤면 권력의 최정점에 오를 당선인 신분으로서 내놓을 카드가 논평밖에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것은 사실상 묵인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다"며 "정말 막고자 했다면 최소한 박 당선인이 직접 이 대통령을 만나 적극 설득하는 노력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이번 사면에 대해 2월 임시국회에서 청문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근혜 말로만 특사 반대? "사실상 묵인한 것"
이번 특사로 양쪽 모두 실리 얻어 '남는 장사'

또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가 이번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된 것도 박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서 전 대표는 2008년 총선 때 친박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자 총선을 20일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연대를 만들었고, 예상 밖 돌풍으로 14석을 얻었다.

하지만 2009년 5월 총선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특별당비 3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6월이 확정돼 구속됐었다. 서 전 대표 사면문제는 현 정부 임기 내내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결과적으로 박 당선인은 이번 특사를 통해 정치적 부담을 크게 덜게 된 셈이다.

이 대통령의 특사 발표와 같은 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사퇴도 일종의 여론 무마용 '물타기'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총리후보자 사퇴와 같은 중차대한 일을 박 당선인과 논의도 없이 결정했을 리가 없다. 김 후보자의 사퇴는 박 당선인과 충분한 논의 끝에 결정됐을 것이고 하필 이 대통령의 사면 발표일과 같은 날로 사퇴시기를 정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별사면 발표와 같은날 이뤄진 김 후보자의 사퇴로 여론의 시선은 크게 분산됐다.

총리후보 사퇴
여론분산 성공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인사는 "사면권은 사법체계의 오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마련한 제도지, 대통령 측근을 구해내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아무리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지만 사면권의 남용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것"이라며 "박 당선인은 곧 대권을 거머쥘 인물로 이 같은 부당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을 의무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박 당선인 또한 이번 특사의 공범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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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