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테러’ 총정리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2.07 17: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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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 풀려…”

[일요시사=정치팀] 지난달 23일 전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얼굴에 물세례를 맞는 ‘봉변’을 당한 것. 박 지사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내리며 생수통을 들고 있는 안주용 의원을 노려봤다. 이 같은 ‘정치테러’는 그동안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물세례뿐만 아니라 계란 투척, 심지어 오물 투척도 있었다. 이에 <일요시사>가 대한민국의 굵직한 정치테러 역사를 정리해 보았다.


안주용 전남도의원은 매체를 통해 “박 지사가 지난 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발언한 호남 민심 폄하 발언과 관련해 사과할 줄 알았는데 모니터를 확인해보니 연설내용이 빠져 있었다”면서 “지역민을 무시하는 오만함과 독선의 극치를 보이는 행동에 대해 항의하는 차원에서 박 지사에게 물을 끼얹었다”라고 말했다. 안 의원의 ‘이유 있는’ 테러였다. 하지만 전남도의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남도의회는 지난달 28일 안 의원에 대해 제명을 의결했다.

계파 갈등의 상징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박지원 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물세례로 망신을 당해 입방아에 올랐다. 당시 민주당은 대선후보경선과 관련한 불공정 시비로 내홍을 겪고 있었다. 박 전 원내대표는 김한길 전 최고위원 상가에서 김태랑 의원으로부터 실랑이 끝에 물세례를 당했다. 물세례 광경보다 이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더 눈길을 끌었다.

김 전 의원은 박 전 원내대표에게 “대체 당 꼬라지가 이게 뭐냐”라고 쏘아붙였고, 박 전 원내대표는 “꼬라지라니, 말을 가려서 하라”고 응수했다. 김 전 의원은 지지 않고 “지금 내게 훈계하는 것이냐. 민주당이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데”라며 말다툼을 벌였고 김 전 의원이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 잔을 박 전 원내대표에게 끼얹었다.

민주당은 당시 이해찬-박지원 ‘투톱 체제’에 대한 퇴진론이 거론되는 등 지도부를 향한 압박이 상당했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해프닝’은 대선후보경선과정에서 불거진 ‘친노(친노무현)’ 그룹에 대한 ‘비노(비노무현)’ 그룹의 불만이 박 전 원내대표에게 극대화돼 표출된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박 전 원내대표의 물에 흠뻑 젖은 상의는 계파 갈등의 얼룩이나 다름없었다.

테러를 당한 박 지사와 박 전 원내대표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예상치 못한 망신살이 뻗쳤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모든이의 반응이 같은 것은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유 있는’ 응수가 매우 유명하다. 노 전 대통령은 무려 세 번이나 계란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은 매체에 출연해 “내가 계란을 세 번이나 맞았다"라고 말하는 여유를 부렸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습니까?”라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테러의 피해자였지만, 어찌 보면 가해자이기도 했다. 물론 성격이 다르지만 대통령 신분이 되기 전에 그도 한때 대통령이었던 자를 향해 ‘던졌다’.

1988년 최초로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제5공화국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명패를 집어 던졌다. 국민은 이 장면을 보고 ‘통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은 일약 ‘청문회스타’로 전국에 이름을 날렸다.

‘주류’ 박지원에 이어 ‘비주류’ 박준영도 물세례 망신살  

삼성 밀수에 뿔난 김두한, 장관에 오물 투척 후 고문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자서전에서 5공 청문회에서 ‘명패투척사건’의 진실을 고백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사건으로 나는 당시 언론에 의해 ‘국회의원의 자질이 문제’라며 매우 무식하고 경우 없는 깡패(?)로 비난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그 반대로 ‘기왕이면 머리통을 정통으로 맞출 일이지 그게 뭐요?’ 하면서 통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이라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닌 자신이 속한 통일민주당의 지도부를 향해 명패를 던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고뇌의 전말’을 공개했다.


이처럼 정치인들 사이에 번번이 일어나는 정치테러는 주로 ‘지도부’를 향한 ‘소신파’ 의원들의 불만 표출이었다. 당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해묵을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이들은 끼얹고 던지며 항의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정치테러’로 꼽히는 사건이 바로 고 김두한 전 국회의원의 ‘오물투척사건’이다. 1966년 대재벌 삼성계의 직계인 한국비료회사에서 자행한 사카린 밀수사건이 정치적 파문을 일으켰다. 국회는 한국비료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을 위해 관계장관을 출석시켜 대정부질문을 벌였다.

이때 김두한 한독당 의원이 마분지 포장지로 싼 고물 양철통을 들고 단상에 올라 10여 분 동안 장광설을 늘어놓고는 “한국비료 밀수사건을 합리화시켜준 장관들을 심판하겠다”며 바로 옆 장관들에게 오물을 쏟아 부었다. 김두한 전 의원은 바로 의원직을 사퇴했으며, 이후 서대문감옥에 수감돼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두한 전 의원의 오물투척과 함께 거론되는 사건은 바로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의 ‘최루탄사건’이다. 김선동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기습상정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당시 김선동 의원에 대한 징계와 형사처분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설왕설래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서울남부지검은 김선동 의원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선동 의원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국회회의장소동,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죄 등을 적용했다.

돌멩이 던진 다윗

박준영 지사에게 물세례를 한 안주용 의원도 도의회 차원의 징계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호남 민중을 모욕한 박준영 전남도지사와 동조하는 전남도의회를 심판하고, 농민의원 안주용 도의원을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 의원을 둘러싼 정치권의 비판이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 안 의원의 이 같은 행위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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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