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사태 3개월' 윤석금 회장 재기 로드맵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1.28 15: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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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팔고 저거 팔고…처음부터 다시 시작

[일요시사=경제1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700억을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태기업인 '웅진씽크빅' 사수를 위해서다. 한때 재계 30위에 들며 업계를 호령하던 웅진그룹이 쪼개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법정관리 절차 개시 이후 우량 계열사를 잇달아 매각하는 등 회생에 몸부림치고 있다. 코웨이는 날아갔고 식품·케미칼·폴리실리콘·패스원이 새 주인을 찾고 있다. '회생'보다는 '해체'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웅진홀딩스는 지난 21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일가가 법정관리 중인 웅진홀딩스 회생을 위해 사재를 출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웅진씽크빅과 북센을 매각하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웅진홀딩스가 그룹의 '모태기업'을 살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이같이 제안한 것이다.

그룹 회생 위해
회장 사재 출연

윤 회장 일가가 내놓을 수 있는 사재는 400억원대로 추정된다. 윤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코웨이 매각 대금 970여억원 중 서울저축은행 관련 채무 630여억원을 뺀 금액과 웅진케미칼·웅진식품 주식 등을 더한 것이다.

웅진홀딩스 지분 73.9%를 보유하고 있는 윤 회장 자신은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 상태여서 사재 출연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에 따라 윤 회장이 두 아들에게 매각한 웅진케미칼·웅진식품 등의 지분을 사재 출연할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웅진케미칼·웅진식품 주식 전량을 두 아들에게 매각한 바 있다.

이로써 웅진씽크빅과 북센은 채권단의 매각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윤 회장이 웅진그룹을 만드는 데 발판이 됐던 계열사만큼은 건진 셈이다. 하지만 주력계열사인 웅진코웨이는 이미 웅진그룹 손을 떠났고 웅진케미칼과 웅진식품, 웅진폴리실리콘 등 전 계열사를 M&A 시장에 매물로 내놓고 있어 결국 웅진은 빈껍데기만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윤 회장 품을 떠난 계열사는 웅진코웨이다. 웅진코웨이는 2013년을 MBK파트너스에서 시작했다.

지난 2일 웅진그룹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코웨이 인수대금 1조1915억원 가운데 65%인 7800억원 가량을 입금 완료했다. 웅진홀딩스는 코웨이가 보유한 1782억원 가량의 웅진케미칼 지분 46.3%(2억1464만4092주)도 넘겨 받았다. 이로써 지난해 8월 웅진홀딩스와 MBK파트너스가 매각 본계약을 체결한 지 5개월 만에 코웨이는 완전히 웅진을 떠났다.

윤 회장 사재 출연 약속 "모태기업은 살려라"
공중분해 막았지만 계열사 대부분 '산산조각' 

지난해 11월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해 사명을 '코웨이'로 변경하고 김병주 회장과 윤종하 대표이사 등 MBK파트너스 측 인사를 이사로 선임했다.

웅진케미칼 매각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웅진홀딩스의 회생계획 일환으로 추진하는 웅진케미칼 매각과 관련, 매각자문사 선정을 지난 11일 허가했다. 웅진케미칼이 법원에 허가를 요청한 지 하루 만이다. 매각주관사 선정 및 매각 진행 일정 등 구체적인 사항은 채권자협의회와의 협의 후 법원의 승인을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이달 중으로 매각자문사를 선정해 2월부터는 본격적인 매각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매각자문사로는 우리투자증권이나 한영회계법인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웅진케미칼은 지난 1972년 삼성그룹의 '제일합섬'으로 출발했다. 1995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후 새한그룹으로의 편입과 함께 1997년 2월 간판을 '새한'으로 바꿨다. IMF 타격을 받아 1999년 이후 구조조정을 추진, 화섬경기 악화 등의 이유로 2000년 6월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선정, 2008년 1월 웅진그룹에 인수돼 '웅진케미칼'로 상호를 변경했다. 4번째 주인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웅진케미칼의 사업부문별 매각도 효율적인 M&A 전략 중 하나라는 얘기가 나온다. 웅진케미칼이 영위하는 섬유, 필터, 전자소재부문 등이 각각의 특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웅진케미칼은 기능성 화학섬유, 수처리용 필터, 전자화학 소재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웅진케미칼의 섬유사업은 국내 생산능력 3위 규모의 원사·원면·직물을 비롯 소방복 등에 사용되는 슈퍼섬유(메타계 아라미드)도 생산한다. 또한 LCD 백라이트유닛용 확산판 등 디스플레이 소재도 만들고 있으며 필터사업은 해수담수화, 초순수제조, 폐수재활용 등에 사용되는 역삼투필터와 마이크로필터 기술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엎친 데 덮친격
염산 누출 사고

인수 후보로는 웅진케미칼과 사업영역이 겹치는 코오롱·효성·휴비스·제일모직 등의 업체가 물망에 오른다.

웅진케미칼 매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반면 웅진폴리실리콘과 웅진에너지 매각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태양광 업황부진으로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염산 누출 사고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번 염산 누출 사고는 지난 12일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웅진폴리실리콘 상주공장에서 염화수소를 폐기물 처리 장소로 흘려보내는 방류벽에 금이 가면서 발생했다. 약 200톤의 염화수소가 누출된 것이다. 염화수소는 염소와 수소의 화합물로 물과 섞이면 강산 중 한 종류인 염산이 된다. 염산이 기화돼 발생하는 염화수소가스는 부식성으로 폐 등 호흡기로 들이마실 경우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킨다. 향후 조사 규모에 따라 2차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특히 웅진폴리실리콘이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기업 이미지에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웅진폴리실리콘 상주공장은 지난해 7월부터 가동을 멈춘 상태다. 제고물량 소화도 어려운 상태다. 웅진홀딩스는 지난해 우리투자증권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서 매각 작업을 진행해 왔으나 매수 의사를 밝힌 곳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염산 사태로 웅진폴리실리콘은 올해 안에 매각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태양광 업황 악화로 좀처럼 매물이 제값을 받기 힘든 상황에 사고마저 터졌으니 제값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매출 2200억원, 영업이익 90억원을 기록한 국내 음료업계 3위 업체인 웅진식품도 매각될 것으로 보인다. 웅진홀딩스 채권단은 최근 웅진식품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관련업체에 비공식적으로 인수의향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후보로는 롯데칠성음료, 동아오츠카, 동부그룹 계열의 동부팜가야, LG생활건강, 하이트진로 등 음료전문기업과 CJ제일제당, 농심 등 종합식품기업, SPC그룹, 카페베네와 사모펀드까지 거론되고 있다.

특히 농심이 적극적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제주 삼다수의 판매권을 잃은 농심이 올해 경영지침을 '도전'으로 정하고 식음료 사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M&A를 진행한 사례가 없고 농심 측도 "자체사업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두겠다"는 입장이어서 인수 가능성은 미지수다.

웅진식품 매각
누가 마실까?


국내 음료업계 1위인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자금동원력은 막강하지만 웅진식품의 주력인 주스사업과 영역이 겹쳐 시너지 효과가 낮다는 지적이다. 

관련업계에서 끝없이 경쟁을 펼쳐온 동아오츠카는 주스사업이 약하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는 기대되지만 상대적으로 웅진식품이 몸집이 커 인수는 부담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웅진식품 매각여부는 28일 채권단과 웅진홀딩스가 협의를 거쳐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하면서 최종 결정된다. 이후 주간사 선정 등 본격적인 매각절차에 돌입하게 되며 웅진홀딩스가 보유한 47.79%의 지분이 매물이 될 전망이다.

출판 계열사 웅진패스원은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사모펀드에 매각될 예정이다. 스카이레이크는 교육업체 대교와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했지만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고 현재 웅진패스원에 함께 투자할 전략적 투자자를 찾고 있다.

웅진플레이도시의 경우 몇 년간에 걸쳐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져 기업회생 절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웅진플레이도시에는 윤 회장의 개인 돈 709억원과 계열사 자금이 상당수 투입됐다. 웅진홀딩스 채권단은 웅진플레이도시 매각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플레이도시는 웅진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당시 부천타이거월드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 2008년 영업손실만 179억원을 기록했고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금 1300억원을 상환하지 못했고 2009년 1월 만기가 도래한 700억원의 PF 대출 만기 연장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2009년 한국자산신탁이 실시한 경매에서 해당 부지와 건물을 낙찰받은 웅진그룹은 원미구에 타이거월드가 신고한 체육시설업 등에 대한 권리, 의무 승계를 신고했고 원미구는 운영 허가를 내줬다.

염산 누출사고…폴리실리콘 매각 지지부진 
무너진 샐러리맨 신화 '씽크빅'으로 재기?

하지만 타이거월드 측은 "부지와 시설만 매각됐을 뿐 영업권은 매각하지 않았으므로 웅진은 엽엉을 할 수 없다"며 반발했고 2010년 4월 소송을 냈다.

1심은 시설을 인수한 업체는 따로 운영권을 사들이거나 허가받지 않고도 운영할 권리를 얻는다며 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11월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당사자 권리를 제한하는 처분인데도 사전통지, 의견통지 기회를 주지 않아 위법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도 원고 승고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웅진플레이도시는 정상영업을 하고 있다. 원미구가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바로 다음 날 다시 웅진그룹에 운영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다. 타이거월드 측은 조만간 집행정지 신청을 낼 예정이다.

웅진홀딩스의 최근 움직임은 1999년 해체된 대우그룹을 회상케 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전 세계를 누볐던 재계서열 3∼4위의 대우그룹은 IMF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공중분해됐다. 김우중 회장은 해외에서 장기간 떠돌았고 대우자동차는 GM으로, ㈜대우는 포스코로, 대우전자(현 대우일렉)은 동부그룹으로 넘어갔고 대우건설, 대우조선 등은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웅진씽크빅과 북센을 건진 웅진홀딩스는 완전한 공중분해는 면했다. 하지만 30년 전 교육출판 사업으로 시작해 정수기 '코웨이'와 비데 '룰루' 등 히트를 거듭하던 윤 회장의 웅진그룹이 잘못된 경영판단으로 산산이 쪼개진 것은 사실이다.

윤 회장은 1980년 웅진씽크빅 전신인 웅진출판을 설립하면서 경영자의 길로 뛰어들었다. 10년 만에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윤 회장은 1989년 한국 코웨이(현 코웨이)를 설립하며 정수기·비데 시장을 호령했고 이후 교육·출판·건설·레저·금융·태양광 소재 부문에서 14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중견그룹으로 키웠다.

잘못된 경영판단
웅진 몰락 불렀다

하지만 2007년 차입금을 포함해 7000억원을 주고 인수한 극동건설이 부실 덩어리로 전락하고 태양광 사업은 부담만 늘었다. 여기에 저축은행 인수를 통해 금융업에 뛰어드는 등 사업을 다각화한 것이 모두 자금압박요인으로 돌아왔고 결국 지난해 9월26일 웅진홀딩스는 계열사인 극동건설과 동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2주 만에 받아들였다. 웅진그룹은 34년 만에 초기 상태로 되돌아갔다. 다음달 20일 열리는 관계인 집회에서 회생 계획안이 법원의 인가를 받으면 웅진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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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