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주체인가 쇄신대상인가 ‘친노’ 실체 전격해부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1.22 11: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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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힌 돌’ 빼낸 ‘개천의 용’…“외롭네~”

[일요시사=정치팀] 이쯤 되면 ‘귀에 못이 박힐 만’도 하다. ‘좋은 소리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고 했듯 이젠 지루함을 넘어 거부감마저 들 지경이다. 당 안팎에서 ‘친노(친노무현)’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그럼에도 국민은 친노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이에 <일요시사>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역사 뿌리인 친노의 실체를 해부해 보았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 공방 중심에는 여전히 ‘친노’가 있다. 좀 더 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친노 패권진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보폭을 맞췄던 이들이 권리와 힘을 휘둘러 대선에 패배했다는 당내 목소리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굳히는 DJ
흔드는 YS

1967년 유진오를 당대표로 창당된 신민당은 당내 갈등 없이 가장 오랫동안 건재했던 민주당계 정당이다. 이후 ‘40대 기수론’의 DJ와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YS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신민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들이 1985년 신한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야권 진영에 바야흐로 ‘양김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무리의 수장은 둘이 될 수 없는 법. 신한민주당에서 DJ측 동교동계와 YS측 상도동계 사이에 당권 장악을 위한 물밑전쟁이 치열해졌다. 상도동계 인사들이 DJ의 당권 장악을 저지하면서 야권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민당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양김은 1987년 DJ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13대 총선을 앞두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완전히 갈라섰다.

'3당야합’ 반대하고
세력 없는 혈혈단신

이때 재야활동을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YS와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 출마해 부산동구 지역구에서 당선돼 헌정사에 이름을 올렸다.

1990년 통일민주당 총재인 YS,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 신민주공화당 총재인 김종필의 ‘3당합당’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밀실야합’이라 규정하고 통일민주당 잔류세력들과 함께 소위 ‘꼬마민주당’ 생활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혈혈단신’ 신세가 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5공청문회’에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명판을 집어던지는 등의 언동으로 일약 ‘청문회 스타’자리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석자를 전국민에게 알렸다. 

하지만 14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했으나 여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15대 총선에서는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당시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와 민정당 사무총장 출신의 정계거물로 DJ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이종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얼마 전 “친노의 잔도 불태워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던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었다.


1997년 노 전 대통령은 김정길, 김원기 등의 집행위원들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DJ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동교동계 VS 상도동계 싸움판… YS 노무현 발탁 후 ‘줄튀’ 
‘낙동강 오리알 신세’ 노무현, 민주당 ‘미운 오리 세끼’

여당에 몸담게 된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면서 부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해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터넷에서 ‘노사모’가 조직돼 붐을 일으켰던 것도 이때다. 국회의원에 낙선한 후 그는 DJ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한마디로 노 전 대통령은 ‘박힌 돌’ 빼내는 ‘굴러들어온 돌’이였다. 지연, 학연을 비롯해 아무런 세력이 없는 노 전 대통령이 DJ계 인사들에게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제16대 대선후보경선에서 잔뼈 굵은 인사들과 경쟁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서 단숨에 수장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잇따라 참패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때 ‘친노’와 ‘반노’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심지어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서는 의원까지 등장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당내 분란은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자, 그를 추대하던 친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반면 반노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친노 의원들은 일제히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고 한화갑 대표가 이에 불응하면서 양측 갈등은 더욱 악화됐다.

당시의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진통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쇄신안 처리 과정에서 양측이 몸싸움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대북송금특검’으로 노 전 대통령이 DJ에 법망을 씌웠으니, 이들의 날 선 대립이 골육상잔의 아픔에 비견할 만했다.

2003년 4월28일 친노 중심세력은 본격적인 신당 창당 작업에 돌입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민주당에 잔류했지만, 초선의원은 대부분 신당 창당에 동참했다. 이들은 더욱 자유롭게 당적을 선택할 수 있었단 이야기다. 호남을 기반으로 둔 의원들도 대부분 잔류를 선택했다.

노무현 연이은 ‘등업’에
민주당 인사들 ‘열 받네’

한 전문가는 논문을 통해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신당참여는 지역구 유권자에게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신당 참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작년 민주당 대선 후보경선 과정에서 대표적인 비노로 분류됐던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그런 경우다. 현 강운태 광주광역시장도 당시 민주당에 잔류했으며, 친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호남이 친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는 결국 '친노의 호남홀대론'으로까지 이어졌다.

친노를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이 분출되는 슬로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아있는 자들을 향한 ‘쇄신’이다. 10년 전 친노는 ‘쇄신’을 외치며 뛰쳐나왔지만, 실상은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DJ 인사들에 대한 ‘갈등의 분출’로 볼 수 있다.

11년 전 친노는 비노를 이겼다. 친노는 대선에 승리했음에도 승자의 포용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것은 친노의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오히려 비노에게 ‘재보선 패배 책임’을 물어 야권 분열을 가속화 시켰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 “이번 대선에서 비노에 속하는 의원들은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비노입장에서 11년 전과 같이 친노의 ‘득세’로 험한 꼴을 보느니, 차라리 대선 패배의 책임을 친노에 묻고, 신당 창당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란 계산이 가능하다. 11년 전 친노가 대선 승리로 비노에게 책임을 묻고 신당 창당의 명분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친노 “한화갑 사퇴” 지금 친노 “모두가 책임져”
그때 비노 “노무현 사퇴” 지금 비노 “문재인 책임져”


달리 보면 ‘친노’의 시작은 비노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YS가 아닌 DJ를 통해 동교동계 인물들과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면, 혹은 DJ계가 노 전 대통령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고 대선 승리에 힘을 모았다면 애초에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한 DJ계 인사들의 고집도 ‘패권’이요, 대선 승리에도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새집을 마련한 친노 인사들의 속 좁은 처사도 ‘패권’이란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친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노 전 대통령의 급부상을 목격해야 했던 비노의 ‘쓰린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25년 갈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친노보다 비노가 먼저 생겼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현재 '친노 직계'로 불리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3당합당 당시 노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에 잔류했던 인물이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던 88년에 보좌관을 맡았다. 문재인 전 후보는 알려진 바대로, 노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던 ‘골수 친노인사’다.

노 전 대통령을 따라 열린우리당 창당에 힘을 보탰던 이들은 이후 각각 정동영 전 상임고문,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필두로 세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숙, 이해찬, 문희상, 유시민 의원 등이 소수 무리를 이끌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당’이었다. 현재 당권을 장악한 박영선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계 인사였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대표적 동교동계 인사인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한광옥·김경재 전 의원은 아예 새누리당에 입당해 박근혜 정권 창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가 하면 ‘쇄신’
남이 하면 ‘구태’

이러한 맥락에서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물로 대북송금특검 과정에서 갖은 수모를 겪고도, 이해찬 전 당대표와 함께 문재인 전 후보의 당선을 도왔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구태’로 몰린 것은, 참으로 큰 손실이라는 평가도 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격한 이때. 이들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가진 구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10년 전 그들이 서로에게 요구했던 것을 자신이 먼저 실천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친노는 대선 패배 책임을, 비노는 노 전 대통령을 인정하고 친노에 대한 포용력을 발휘해 얽히고설킨 갈등을 해결하기를 ‘실패한 투표자’ 48%는 바라고 있다.

DJ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라며 울먹였던 것처럼, 친노와 비노는 결국 한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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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