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주체인가 쇄신대상인가 ‘친노’ 실체 전격해부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1.22 11:49:20
  • 댓글 0개

박힌 돌’ 빼낸 ‘개천의 용’…“외롭네~”

[일요시사=정치팀] 이쯤 되면 ‘귀에 못이 박힐 만’도 하다. ‘좋은 소리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고 했듯 이젠 지루함을 넘어 거부감마저 들 지경이다. 당 안팎에서 ‘친노(친노무현)’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그럼에도 국민은 친노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이에 <일요시사>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역사 뿌리인 친노의 실체를 해부해 보았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 공방 중심에는 여전히 ‘친노’가 있다. 좀 더 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친노 패권진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보폭을 맞췄던 이들이 권리와 힘을 휘둘러 대선에 패배했다는 당내 목소리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굳히는 DJ
흔드는 YS

1967년 유진오를 당대표로 창당된 신민당은 당내 갈등 없이 가장 오랫동안 건재했던 민주당계 정당이다. 이후 ‘40대 기수론’의 DJ와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YS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신민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들이 1985년 신한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야권 진영에 바야흐로 ‘양김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무리의 수장은 둘이 될 수 없는 법. 신한민주당에서 DJ측 동교동계와 YS측 상도동계 사이에 당권 장악을 위한 물밑전쟁이 치열해졌다. 상도동계 인사들이 DJ의 당권 장악을 저지하면서 야권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민당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양김은 1987년 DJ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13대 총선을 앞두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완전히 갈라섰다.

'3당야합’ 반대하고
세력 없는 혈혈단신

이때 재야활동을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YS와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 출마해 부산동구 지역구에서 당선돼 헌정사에 이름을 올렸다.

1990년 통일민주당 총재인 YS,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 신민주공화당 총재인 김종필의 ‘3당합당’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밀실야합’이라 규정하고 통일민주당 잔류세력들과 함께 소위 ‘꼬마민주당’ 생활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혈혈단신’ 신세가 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5공청문회’에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명판을 집어던지는 등의 언동으로 일약 ‘청문회 스타’자리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석자를 전국민에게 알렸다. 

하지만 14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했으나 여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15대 총선에서는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당시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와 민정당 사무총장 출신의 정계거물로 DJ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이종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얼마 전 “친노의 잔도 불태워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던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었다.


1997년 노 전 대통령은 김정길, 김원기 등의 집행위원들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DJ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동교동계 VS 상도동계 싸움판… YS 노무현 발탁 후 ‘줄튀’ 
‘낙동강 오리알 신세’ 노무현, 민주당 ‘미운 오리 세끼’

여당에 몸담게 된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면서 부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해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터넷에서 ‘노사모’가 조직돼 붐을 일으켰던 것도 이때다. 국회의원에 낙선한 후 그는 DJ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한마디로 노 전 대통령은 ‘박힌 돌’ 빼내는 ‘굴러들어온 돌’이였다. 지연, 학연을 비롯해 아무런 세력이 없는 노 전 대통령이 DJ계 인사들에게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제16대 대선후보경선에서 잔뼈 굵은 인사들과 경쟁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서 단숨에 수장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잇따라 참패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때 ‘친노’와 ‘반노’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심지어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서는 의원까지 등장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당내 분란은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자, 그를 추대하던 친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반면 반노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친노 의원들은 일제히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고 한화갑 대표가 이에 불응하면서 양측 갈등은 더욱 악화됐다.

당시의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진통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쇄신안 처리 과정에서 양측이 몸싸움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대북송금특검’으로 노 전 대통령이 DJ에 법망을 씌웠으니, 이들의 날 선 대립이 골육상잔의 아픔에 비견할 만했다.

2003년 4월28일 친노 중심세력은 본격적인 신당 창당 작업에 돌입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민주당에 잔류했지만, 초선의원은 대부분 신당 창당에 동참했다. 이들은 더욱 자유롭게 당적을 선택할 수 있었단 이야기다. 호남을 기반으로 둔 의원들도 대부분 잔류를 선택했다.

노무현 연이은 ‘등업’에
민주당 인사들 ‘열 받네’

한 전문가는 논문을 통해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신당참여는 지역구 유권자에게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신당 참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작년 민주당 대선 후보경선 과정에서 대표적인 비노로 분류됐던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그런 경우다. 현 강운태 광주광역시장도 당시 민주당에 잔류했으며, 친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호남이 친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는 결국 '친노의 호남홀대론'으로까지 이어졌다.

친노를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이 분출되는 슬로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아있는 자들을 향한 ‘쇄신’이다. 10년 전 친노는 ‘쇄신’을 외치며 뛰쳐나왔지만, 실상은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DJ 인사들에 대한 ‘갈등의 분출’로 볼 수 있다.

11년 전 친노는 비노를 이겼다. 친노는 대선에 승리했음에도 승자의 포용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것은 친노의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오히려 비노에게 ‘재보선 패배 책임’을 물어 야권 분열을 가속화 시켰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 “이번 대선에서 비노에 속하는 의원들은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비노입장에서 11년 전과 같이 친노의 ‘득세’로 험한 꼴을 보느니, 차라리 대선 패배의 책임을 친노에 묻고, 신당 창당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란 계산이 가능하다. 11년 전 친노가 대선 승리로 비노에게 책임을 묻고 신당 창당의 명분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친노 “한화갑 사퇴” 지금 친노 “모두가 책임져”
그때 비노 “노무현 사퇴” 지금 비노 “문재인 책임져”


달리 보면 ‘친노’의 시작은 비노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YS가 아닌 DJ를 통해 동교동계 인물들과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면, 혹은 DJ계가 노 전 대통령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고 대선 승리에 힘을 모았다면 애초에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한 DJ계 인사들의 고집도 ‘패권’이요, 대선 승리에도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새집을 마련한 친노 인사들의 속 좁은 처사도 ‘패권’이란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친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노 전 대통령의 급부상을 목격해야 했던 비노의 ‘쓰린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25년 갈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친노보다 비노가 먼저 생겼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현재 '친노 직계'로 불리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3당합당 당시 노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에 잔류했던 인물이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던 88년에 보좌관을 맡았다. 문재인 전 후보는 알려진 바대로, 노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던 ‘골수 친노인사’다.

노 전 대통령을 따라 열린우리당 창당에 힘을 보탰던 이들은 이후 각각 정동영 전 상임고문,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필두로 세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숙, 이해찬, 문희상, 유시민 의원 등이 소수 무리를 이끌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당’이었다. 현재 당권을 장악한 박영선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계 인사였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대표적 동교동계 인사인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한광옥·김경재 전 의원은 아예 새누리당에 입당해 박근혜 정권 창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가 하면 ‘쇄신’
남이 하면 ‘구태’

이러한 맥락에서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물로 대북송금특검 과정에서 갖은 수모를 겪고도, 이해찬 전 당대표와 함께 문재인 전 후보의 당선을 도왔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구태’로 몰린 것은, 참으로 큰 손실이라는 평가도 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격한 이때. 이들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가진 구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10년 전 그들이 서로에게 요구했던 것을 자신이 먼저 실천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친노는 대선 패배 책임을, 비노는 노 전 대통령을 인정하고 친노에 대한 포용력을 발휘해 얽히고설킨 갈등을 해결하기를 ‘실패한 투표자’ 48%는 바라고 있다.

DJ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라며 울먹였던 것처럼, 친노와 비노는 결국 한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