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 뜯어고친 대한민국 ‘끔찍한 개헌역사’ 해부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1.11 10: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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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하면 된다” 어떻게? 이렇게!

[일요시사=정치팀] 돌이켜 보면 참으로 숨 가쁜 역사였다. 헌법은 권력자의 독재수단으로 악용됐으며, 개헌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권력집단은 언론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끔찍한 역사는 수없이 반복됐다. 9번의 개헌에서 7번이나 위헌적인 개헌이 자행되는 동안 국민은 무엇을 했던 걸까? 혹 국민적 무관심으로 인한 비극은 아닌지, <일요시사>가 60년 대한민국 개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봤다.

역대 대통령 중 몇몇은 폭력과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거나,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여 투표장으로 끌어냈다. 국민들은 정작 무엇이 바뀌는지는 모르고, ‘꼭 바꿔야 한다니까’ ‘뭔가 더 좋아질 것 같으니까’라는 막연함으로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이젠 다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꼼꼼히 ‘묻고 따지는’ 시대 아닌가? 하물며 나라의 근본을 바꾸는 일이다. 몇 번을 묻고 따져도 부족하지 않을까?

안 되면 밟아서라도

1948년 제헌국회는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해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로 하고, 국회의 구성은 양원제로 한다'는 내용의 헌법초안을 작성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미군정당국은 이에 격렬히 반대했다. 이들은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로 하고, 국회의 구성은 단원제로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주장대로 임기 4년의 간선제 선출방식의 대통령제와 단원제가 채택, 의원내각제 중에서는 국무위원제와 국무총리제가 채택됐다.

1950년 5월30일 국회의원 총선에서 대패한 이 전 대통령은 간선으로는 재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 양원제와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1952년 1월18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에 대한 표결은 찬성 14표, 반대 143표, 기권 1표로 결과는 부결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미약한 국회 지지세력이 드러났다.

이 전 대통령은 부결된 개헌안을 다시 제출해 폭력과 온갖 불법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자유당과 국회 외부세력 동원, 개헌안 부결반대 민중대회 등의 관제데모를 전개해 국회에 압력을 가했다.

정부는 야당계 거물인 장면 국무총리를 해임하고, 내각책임제 추진파인 서민호 무소속 국회의원을 구속했다. 50여 명의 국회의원이 탄 통근버스가 헌병대에 강제 연행되는가 하면, 국제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혐의로 10명의 국회의원이 붙잡히는 등 정국은 그야말로 난리 통이었다.

그해 7월4일 국회는 찬성 163표, 기권3 표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발췌개헌' 사건이다. 이 전 대통령은 같은 해 실시된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 전 대통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54년 두 번째 개헌을 시도한다. 이 전 대통령과 자유당은 3선을 하고자 했으나, 당시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었다. 이에 이 전 대통령과 자유당은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마련했다.

결과는 재적의원 203명, 참석의원 202명 중 찬성 135, 반대 60, 기권 7표. 개헌이 가능한 의결정족수는 3분의 2 이상이므로 개헌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헌법 조문상 136명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했다. 국회부의장은 부결을 선포했다.

이에 물러날 자유당이 아니었다. 자유당은 4사5입을 적용하여 135.33명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0.33이란 자연인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반도 안 되는 소수점 이하는 삭제하는 것이 좋다는 이치에 맞지 않은 이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른바 두 번째 개헌인 ‘사사오입’ 사건이다.


개헌안은 결국 통과됐으며 이 전 대통령은 3선의 뜻을 이뤘다. 이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위헌적인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직을 연명했다.

대통령 임기 연장 도구로 헌법사용, 위헌적 방법도 불사
국회의결·국민투표 모두 거친 것 6차 개헌과 현행헌법 뿐

1960년 4·19혁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하야하고, 허정 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의원내각제 형태의 제3차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합헌적 절차에 의한 개정이었다.

같은 해  3·15부정선거의 주모자들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군중을 살상한 자들을 처벌하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제4차 개헌이 이뤄진다. 당시 이에 대해 법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위헌이라는 논란이 많았다.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와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의 활동을 정지시켰다.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이름을 바꿨으며,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회의 의결 없이 위헌적인 방법으로 헌법안을 확정했다.

이때 처음으로 국민투표제가 헌법 개정절차의 필수 요건으로 등장했다.

1967년 6월8일 국회의원선거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개헌선인 3분의 2를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박 전 대통령은 3선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고 새벽 2시 국회 제3별관에서 기습적으로 통과시켜 국민투표로 확정했다. 여섯 번째의 일명 ‘날치기’ 개헌이었다.

집권 11년째인 1972년 10월17일 박 전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초헌법적인 초치인 ‘10·17비상조치’를 단행했다. 국회의 권한을 비상국무회의가 대행하며, 헌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비상국무회의가 헌법개정안을 의결하고, 개헌안은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일곱 번째로 개정된 헌법이 바로 ‘유신헌법’이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쥐어줬다. 하지만 1979년 10·26사태로 19년 박정희 독재정권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종식으로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1979년 12·12사태로 시작된 군사정권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를 단행해 전국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의 본보기로 5월18일 광주에서는 끔찍한 대학살의 피바람이 불었다.

전 전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마련한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로 확정시켰다. 대통령의 임기는 7년으로 연장했다. 전 전 대통령은 ‘행복추구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헌법 조문에 집어넣었다.

개헌도 ‘날치기’


1987년 전 전 대통령의 군사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6월 민주항쟁’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났다. 이 결과 대통령직선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헌정사상 최초 여야 간 합의로 제9차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때 처음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헌법 전문에 등장했으며, 대통령 임기 5년의 직선제가 도입돼 모든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게 됐다. (사진=국가기록원)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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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