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부른 민주당 ‘빈대정치’ 전격해부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1.02 11: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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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공짜 좋아하더니만 줘도 못 먹나?

[일요시사=정치팀] 단일화 성공은 대선 승리요 단일화 실패는 대선 패배’ 공식에 변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안철수 전 무소속 대통령후보가 민주통합당의 ‘+α’였다. 새정치를 외쳤던 안 전 후보는 결국 조직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 후보사퇴를 선언했다. 사실상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끝까지 +α를 포기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는 유세장에서 안 전 후보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단일화’가 이루어졌다고 바득바득 ‘우겼다’. ‘빈대’ 근성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민주당은 결국 패배했다.

민주통합당은 이번에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피곤하고 힘든 선거를 치렀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안철수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막상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앉혀놓으니 그제야 발톱을 드러내듯 안철수 전 후보를 압박하고 중도층 표심을 흔들었다. 지지층은 민주당의 집권을 ‘원해서’ 가 아니라 박근혜의 집권이 ‘싫어서’ 표를 던져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자체 생산능력을 잃은 민주당은 이번에도 역시 반사이익만 노렸다.

한나라당 과욕에
열린우리당 과반 의석

지난 4월11일 19대 총선이 끝나자 한 정치권 인사가 민주당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한 청년이 뒷마당을 쓸다 동전을 주웠다. 논밭을 일구고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할 사람이 그 다음부터 바닥에 떨어진 동전만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동전을 줍지 못하는 날이면 온종일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 그렇다”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열린우리당은 새누리당이 잃은 ‘그것’을 주웠다. 한나라당이 잃은 의석수였다. 열린우리당이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실수로 얻은 과반 의석이었다.

2004년 1월5일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언급했다. 다음날, 4·15 총선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연계설이 청와대 등 여권에서 흘러나왔다.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방식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재신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그대로 유지해 총선이 결국 재신임의 장이 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다. 재신임 국민투표는 언론에 ‘노 대통령의 무리한 떼쓰기’로 비춰졌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정치권의 탄핵논란에도 노 대통령은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보였다. 노 대통령은 오전에 전국의 재래시장 상인과 소상공인 2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보고회를 가졌다.

오후에는 재래시장을 방문해 민생 챙기기 행보에 주력했다. 총선과 정치권을 겨냥한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들도 노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은 중앙선관위나 야권에 각을 세우는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독자적인 자체생산 능력 키워야, '+α' 없으면 필패?
유일한 총선 승리도 ‘노무현 탄핵 열풍’으로 어부지리

3월9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3월12일 새벽.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진입해 여야 의원들의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국회 경위들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와 경호권을 발동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 경위들에게 ‘질질’ 끌려나오는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전국적으로 거대한 탄핵 역풍이 불었다. 당시 <연합뉴스>와 월드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 따르면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에 대한 전 국민적인 질타가 쏟아졌고, 전국 각지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르는 등 전국이 탄핵사태로 들끓었다.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는 4월15일 치러진 국회의원총선에까지 이어져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고, 제1당이던 한나라당은 121석, 제2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은 9석,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얻었다. 열린우리당의 ‘완승’이었다.

DJ는 ‘빨갱이’ 벗고
JP는 자민련 살리고 

이러한 승리는 이후 줄곧 패배를 불렀다는 평가다. ‘달콤한 승리’로 열린우리당은 ‘몹쓸 버릇’이 들었고, ‘씁쓸한 실패’는 한나라당에 ‘귀한 보약’이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빈대정치’ 행태는 비단 총선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한다.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제15대 대선에서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충청권 표를 대거 견인해왔다. 제16대 대선에서는 정몽준 국민연합21 대통령후보가 힘을 보태면서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제15대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야권후보단일화 협상을 완전 타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양당 단일후보로 최종확정했다.

김종필 총재가 초대 국무총리를 맡는 협상안이었다. 또한 내각제 개헌안을 발의해 1999년 말까지 개헌작업을 마치도록 했다. 두 당의 협상 관계자들은 내각제개헌 추진을 둘러싼 ‘신뢰문제’ 시비를 없애기 위해 내각제 개헌을 단일후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단일화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충청권의 표를 흡수해 2위와 격차를 벌리고 ‘김대중 대세론’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분석이다. 보수계층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지역주의와 색깔론을 극복하려는 김 전 대통령의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막판 역전 노무현
완주는 승산 없어

내각제는 자민련의 정당 존립을 위한 최적의 시스템으로 평가받았다. 김종필 총재가 단일화에 합의한 이유였다. 하지만 내각제는 국민적 반대에 부딪혔고, 내부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김 전 대통령과 김 총재는 결국 서로 등을 돌렸다.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단일화를 비판할 때 쓰는 ‘야합’은 바로 이때를 배경으로 한다.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던 2002년 대선 화두도 단연 ‘단일화’였다. 김 전 대통령의 단일화가 혹시 모를 변수를 방지하기 위한 ‘방패’ 역할을 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단일화는 대선 승리를 위한 ‘발판’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정 후보에 한참 뒤진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통근 배포를 보이면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냈고, 결국 대선 승리로까지 이어졌다. 정 후보의 막판 지지철회도 영향은 미미했다.

그렇다 해도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 혼자서 완주했다면 승리하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17대 대선은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팽배하고 ‘이명박 대세론’이 확고히 자리 잡아 단일화 논의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실제로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48.7%,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26.2%,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5.8%의 득표율을 보여 정 후보와 문 후보가 단일화를 성사시킨다 하더라도 이 대통령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15·16대 대선 ‘야권 단일화’ 거쳐, 완주 승산 없어
안철수 끌어들이고 여당 되려다 결국 정권교체 실패

일부 야권 지지자들이 ‘문국현 후보 중심의 단일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은 “문 후보의 사퇴는 정치야합으로 비칠 뿐,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지만 양 후보의 단일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17대에 이어 18대에서도 단일화는 실패했고 민주당은 패배했다. 그럼에도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는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대선판을 가장 크게 뒤흔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안 전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일찌감치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여야 간 1:1 대결구도를 이끌어낸 데에는 안 전 후보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안 전 후보의 영향력은 대선 이후 야권의 정계개편에도 미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안풍’의 위력은 가히 놀라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위력이 정권교체로 이어지지 않았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길 선거를 졌다”고 푸념하는 목소리가 팽배했다.

민주당에서는 대선 경선 시작도 전에 ‘안철수 토사구팽설’이 나돌았다. 어떻게든 안 전 후보를 단일화 테이블에 끌어들여 안 전 후보 지지층을 흡수해 민주당에서 반드시 대통령을 내야 한다는 몇몇 원로급 의원들의 뒷말이었다. 게다가 문 전 후보 측은 단일화 과정에서 조직력을 동원하고, 팽팽한 ‘룰전쟁’을 벌이는 등 협상 자체가 파행으로 치닫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문 전 후보의 단독 완주였다면 승산이 없는 게임이었다. 민주당은 안 전 후보의 합류와 지원, 그리고 지지층 흡수를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으며, 이것은 안 전 후보 지지층에게 ‘구태’로 비쳐졌다.

구원투수 제3인물보다
‘자강론’ 지지 얻어야

야권에서는 이제 민주당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정권심판론’과 ‘제3의 인물’에 기대 한자리 하려는 습관을 버리고 ‘자강론’으로 내부결속력을 다져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 패배를 계기로 진심어린 자성을 통해 더 나은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시 빈대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차려놓은 밥상을 엎을 것인지 향후 당 재건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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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