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충무공 고택터 경매 막전막후

‘문중의 분(憤) vs 종부의 한(恨)’


이순신 장군 지하서 통곡할 후손들의 ‘진흙탕 땅 전쟁’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충남 아산시 현충사 경내에 있는 충무공 고택 터와 인근 임야 등이 법원 경매로 나온 탓이다. 경매가 진행 중인 이 부지는 충무공이 소년시절부터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무예를 연마하던 역사적인 현장이란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비보를 접한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충무공 후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다. 충무공의 얼이 깃든 부지가 어떻게 경매에 부쳐진 것일까. 어이없는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충무공 문중의 재산 싸움부터 되짚어봤다.

‘역사적’ 현충사 집터·임야 등 법원 경매물 전락
15대 종손 며느리 사유지…사업실패로 담보 설정
종회-종부 수년간 ‘땅 소송’ 얼룩
공방 거듭 며느리 소유 최종 결론

최근 법원 경매로 나온 충남 아산시 현충사 경내의 사유토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택 부지 3필지 7만4711㎡와 문화재 보호구역 내 임야와 농지 4필지 등 모두 7건 9만8000여㎡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3월30일 1차 경매를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만약 유찰될 경우 5월4일 2차, 6월8일 3차, 7월13일 4차 경매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법원 측은 “사유재산인 충무공 관련 문화재 시설은 누구나 매입이 가능하지만 용지변경이 어려워 낙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이순신 장군의 영혼이 깃든 역사적인 장소가 경매물로 전락할 수 있냐”는 탄성이 전국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가히 지난해 2월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방화로 전소될 때와 견줄 만한 참담한 상황이다.

채권자 청구액 7억원
감정가 19억6000만원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선 현충사가 건립된 지 40년이 넘도록 국유화하지 않은 채 ‘나몰라라’한 국가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충무공의 고택 부지 등을 경매에 넘긴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에게 집중적인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조상님 얼굴에 먹칠했다’는 까닭이다.

덕수이씨 충무공파종회는 “충무공의 후손으로서 국난극복을 위해 몸을 바치셨던 선조와 국민들께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경매로 나온 부지 등을 종회에서 매입을 적극 검토 중이지만 예산이 부족해 녹록치 않을 것 같다”는 게 종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법원 경매에 부쳐진 매물은 종회 소유가 아니다. 바로 충무공 15대 후손 종부인 최모씨의 사유지다. 남편 이모씨가 사망한 뒤 자식이 없어 재산을 상속받은 최씨가 이 부지 등을 담보로 채무를 얻어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해 지난해 11월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충무공의 ‘영지’를 정부에서 관리해도 모자랄 판에 종회도 아닌 종부가 ‘땅 문서’를 쥔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 발단은 최씨의 남편이자 충무공의 15대 종손인 이씨가 사망한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재산은 당초 종회 소유였으나 1972년 14대 종손 개인 명의로 바뀐 뒤 1993년 사망하면서 이씨가 물려받았다가 2002년 2월 자식 없이 세상을 뜨자 부인인 최씨의 손에 들어갔다. 이씨는 평소 지병을 앓은 탓에 자녀를 낳을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후손 없이 숨지자 종회에선 “적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그해 3월 이씨의 재당질(6촌 형제의 아들) A씨를 16대 종손으로 결정했지만 최씨가 반발하면서 지루한 법적 공방이 예고됐다.

종회 측은 “갑자기 사망한 이씨의 장례식에서 양자 문제가 처음 논의됐고 최씨가 A씨를 입양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종회의 뜻을 받들어 A씨의 생부는 충무공의 정신과 위업을 계승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양자 입적을 승낙했고, 물론 양모인 최씨도 별다른 이견 없이 입양신고서를 작성하는 등 동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종손 자식없이 사망
부인 집안재산 상속

다시 말해 입양신고 등 양자 입적에 대한 모든 절차가 최씨의 동의하에 이뤄진 일이라는 것.
그러나 최씨의 주장은 다르다. 최씨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회의 강요로 반강제적으로 양자를 입적시켰다”며 “이는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충무공 후손 대대로 내려온 땅의 소유권을 놓고 종부와 문중간 갈등이 촉발됐고 급기야 치열한 법적 다툼으로 번졌다. 문제의 땅은 법원 경매에 넘어간 대지 등이 포함된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 주변에 있는 16필지 4만1226㎡(약 1만2500평). 논과 밭, 임야 등으로 돼 있는 이 땅은 당시 시가 20억원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씨는 양자 A씨에게 재산상속권 포기를 요구했지만 종회에서 이를 무시하자 곧바로 입양무효소송을 제기해 파양 판결을 받아냈다. 남편에게 상속받은 땅을 다시 찾은 것.

[종회 “위토마저 부채로 날릴라”]
[종부 “질곡의 세월 보상받아야”]
[국민 “양쪽다 조상 얼굴에 먹칠”]


이에 맞서 종회 측도 2002년 10월 “현충사 주변 16필지의 땅이 원래 70명의 문종 종원 공동명의로 돼 있었는데 최씨의 시아버지인 14대 종손이 불법으로 서류를 조작해 자신의 명의로 돌려놨다”며 최씨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소송을 냈다.
“정당하게 상속받은 땅을 돌려줄 수 없다”는 종부와 “충무공 가문의 공동재산을 며느리가 가로챘다”는 문중간 ‘땅 싸움’은 수년째 치열한 공방을 거듭하다가 결국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졌다.

1심과 2심은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문중 재산 처분에 필요한 문중총회 결의가 없었고 종회에서 주장한 종원 70명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4년 11월 “종원 70명 가운데 1명이라도 실체규명이 가능하면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전지법은 이듬해 6월 “명의 신탁이 인정되는 2만1780㎡(6600평) 가운데 최씨가 처분한 6600㎡(2000평)을 제외한 1만5180㎡(4600평)을 문중에 돌려주라”고 화해를 유도한 판결을 내렸지만 양측 모두 불복,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결과 최종적으로 최씨가 소유권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회 측은 경매에 넘어간 충무공 고택 터 등이 법적으로 최씨의 땅인 관계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종회 관계자는 우선 최씨와의 땅 싸움에 대해 “전 국민들이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돈에 눈이 멀어 재산다툼을 벌인 것으로 오해할까 우려된다”며 “종회가 종갓집 며느리의 개인재산을 탐내 소송을 벌인 게 아니라 위토(충무공의 제사와 묘지관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경작하는 논밭)만은 대대로 지키기 위한 문중의 충심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현충사 땅 소유 놓고
치열한 법정다툼 벌여

그러나 최씨에 대해선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최씨가 수많은 집안재산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시부모와 남편이 사망한 뒤 충무공의 위토마저 부채로 날리게 생겼다”며 “나라를 지킨 뿌리 있는 가문에 여자가 잘못 들어와 집안 망신을 톡톡히 시키고 있다”고 한탄했다.
최씨도 할 말은 있다. 평생 종가와 선조를 봉양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충분히 보상받을 명문이 있다는 것.

최씨 측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엄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최씨는 1986년 충무공의 종갓집으로 출가해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남편 이씨가 자신의 의사조차 표현 못할 정도의 투병생활로 가문의 대를 이을 자녀를 얻지 못했고 2002년 6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군의 간병인으로만 살았다. 이 와중에도 오랜 세월 병마와 싸우다 사망한 시부모와 꼬박꼬박 문중 대소사를 챙기며 묵묵히 지냈다.

홀로 남은 최씨는 수억원의 빚을 내 현충사 매점과 웨딩샵 등을 운영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다른 사업을 모색하다 어음 사기까지 당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당시 빚은 4억원 정도로 현재 배 이상으로 불어나 담보로 잡힌 최씨 소유의 충무공 고택 터 등이 채무자에 의해 경매에 부쳐진 것이다. 채권자는 김모씨로 청구금액은 7억원이며 감정가는 19억6000만원이다.

최씨는 “집안의 대소사 경비는 물론 시부모를 부양하고 남편의 병원비를 대려고 시작한 사업을 하다 빚을 지게 됐는데 문중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산을 뺏으려 했다”며 “재산 한 푼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죽고 살길이 막막했다.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문중은 구경만 했다”고 토로했다.
4월28일은 충무공 탄신 463주년이다. 지금 아산에선 ‘이순신 축제’를 앞두고 “조상님 뵐 면목이 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뒤늦게 여기저기서 경매에 넘겨진 충무공의 고택을 매입해 기부하겠다는 온정이 잇따르고 있어 그나마 안타까운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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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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