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자연 ‘진실게임’…의문점 <넷>

판도라 상자 열리면 곳곳에서 곡소리?


고 장자연의 친필문서를 둘러싼 사건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전 매니저 유장호 대표가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장자연 전 소속사 대표 K씨가 아직 일본에 체류 중인 상태이고 ‘성상납 리스트’에 올라 있는 유력인사들을 소환하기에는 조심스런 부분이 있다.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필적이 고인의 것으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그 문건을 둘러싸고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장자연 문건’이 장자연이 직접 쓴 자필문서로 드러나면서 경찰이 이 문서의 작성경위 등의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강압에 의한 것이 드러날 경우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가 문서의 내용보다는 문서작성 행위 자체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자연이 직접 쓰기는 썼는데 스스로 굴욕감 등을 참지 못해 작성한 것인지 누군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장자연에게 문건 작성을 강요했는지 밝히는 게 관건인 것이다.
장자연이 작성한 문건이 기획사 등 제3자가 보관하고 있었다면 장자연의 그간 행적과 치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어서 장자연에게는 일종의 ‘노비문서’ 역할을 충분히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장자연이 문건 작성후 급격히 수척해지기 시작했다는 가족들의 증언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장자연의 지인 A씨는 “장자연이 4장의 문서를 작성한 지난 2월28일 곧바로 집으로 찾아왔고 이후 건강상태가 급격이 악화됐으며 줄곧 문건 작성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장자연의 문건은 폭행과 성강요에서부터 술자리 관련 내용까지 고발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자신을 옭아맬 수 있는 내용이다. 문건 보유자는 문건의 공개를 빌미로 한 협박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말이다.
문건 공개의 발단이 된 장자연의 전 매니저 유장호 대표와 전 소속사 대표 K씨 모두 문서작성이 강요냐, 자의냐를 놓고 서로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K씨는 줄곧 전화통화에서 “문건을 공개한 유씨는 우리 소속사에서 일하던 직원으로 이미 민사와 형사 소송 4건이 진행중인데 내가 소송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런 일을 꾸민 것 같다”며 자작극임을 강조하고 있고, 유 대표는 “문건은 장자연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이 과정에 본인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연예계와 유족 모두는 장자연이 누군가의 강압에 문건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장자연이 연예계 비리에 대한 ‘폭로문건’을 만든 이유도 여전히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유 대표가 지난 3월18일 기자들과의 비공식 만남을 통해 장자연이 문건을 만들게 된 경위를 털어놓은 것을 근거로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다소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유 대표가 소개한 문건작성 경위에 따르면 장자연이 지난 2월 중순께 유 대표에게 “오빠, 나 오빠 회사로 가고 싶어. 나 너무 힘들어”라며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유 대표는 “장자연은 통화 과정에서 그동안 어떤 일을 당했고 왜 힘들어하는지 등을 이야기했다”며 “처음에는 그냥 하소연 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장자연이 연예계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전 소속사 대표 K씨 말도 가장 잘 듣는 사람이 장자연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단순한 푸념 정도로만 여겼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그러나 같은 달 28일 장자연이 로드매니저 등에게 협박당한 녹음음성(17분 분량)을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동안 연예계에서 생활하며 여러 매니저, 신인 배우들이 당하는 것을 자주 봤고 특히 매니저가 폭행 당해 심하게 다치는 것을 수시로 봤기 때문에 장자연을 적극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
이에 유 대표는 “‘그래, 네가 그렇게 힘들다면 연예인 안 해도 괜찮다면 그렇게 해라’라고 말했고 나도 도와줄 각오가 돼 있었다”며 장자연을 다독였다고 했다.
결국 장자연은 유 대표 사무실에서 당일 오후 6시부터 피해사실 등을 담은 문건을 작성하기 시작해 자정 무렵 끝냈으며 “3월9일께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는 유 대표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유 대표는 밝혔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장자연 전 소속사 대표 K씨에 대한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만나러 가기 이틀 전이자 장자연이 자살한 당일인 지난 7일이었다고 유 대표는 덧붙였다.
유 대표는 이와 관련 “그날 분당에 가서 커피나 한 잔 할까 했는데 장자연이 그냥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고, 나도 지인의 결혼식으로 바빴다”며 “(문자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으로 장자연으로부터 답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장자연이 남긴 마지막 문자메시지는 ‘그래^^하트’라는 내용이었다고 소개했으나 자신의 휴대전화 문자 저장용량이 200개밖에 되지 않아 자동으로 삭제돼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고 전했다.

유장호 대표 “로드매니저 등에게 협박당한 녹음음성 듣고 생각 달라졌다”
KBS 측“쓰레기통에 버린 문건 주워왔다”… 원본 문건 누구 손에
관계자들“유 대표와 장자연 한 달간 일했을 뿐 그다지 친분 없었다”
전 매니저 유장호 대표 “직접 작성” vs  전 소속사 대표 K씨 “유 대표 자작극”

KBS가 문건 입수 경위를 공개했지만 의혹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지난 3월18일 방송된 KBS 1TV <뉴스9>은 “지난 13일 오후 5시30분 유장호씨 기획사 사무실 앞에 있었던 100리터의 쓰레기봉투 맨 위에서 불에 타다 남은 문건을 발견했다”고 문건 입수 경위를 공개했다.
또 “오후 9시경 현장을 다시 찾은 취재진은 쓰레기봉투 아랫부분에서 찢어진 사본을 발견했고 6시간에 걸쳐 이를 복구했다”며 “복원된 문건은 유씨가 가지고 있던 사본 4장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유 대표가 문건 사본을 찢어버린 후 아무렇게나 남들이 다 보는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것을 그곳에 간 KBS 취재진이 발견해, 주워온 것이 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 대표가 그 중요한 문건을 아무렇게나 버렸다는 점이나 KBS가 쓰레기가 처리되기 전 정말로 운 좋게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봉투에 있는 찢어진 문건을 운 좋게 찾아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유 대표는 “KBS를 비롯한 언론사에 고인이 남긴 문건을 전달한 적 없다”며 “문건은 경찰 조사대로 유가족과 장자연의 지인, 제가 모두 보는 앞에서 다 태웠다”고 주장했다.
KBS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문건 입수 과정을 공개키로 결정했다”며 유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응했다.
하지만 문건 입수 경위와 문건이 몇 장인지 몇 가지 종류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유 대표의 발언이 혼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 대표는 8일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장자연의 문건에 대해 처음 공개할 때는 문건이 총 6장이라고 밝혔고, 13일 KBS 보도 후에는 “내가 갖고 있는 문건과 다른 문건 같다”는 말을 했다.
이어 17일에는 “장자연이 작성한 문건은 7장이다. 4장은 형사고발을 위한 진술서고 3장은 나에게 쓴 편지였다”면서 “진술서 4장은 복사해서 사본을 장자연에게 줬고 원본 7장은 잘 가지고 있다가 장자연 사망 후에 한 부씩 복사해서 총 14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바꿔 말했다.
즉 문건은 두 종류이고 원본 7장에 사본까지 18장이라는 말이다. 문건의 장수에 대해서도 헷갈려했고, ‘다른 문건’의 존재 가능성마저 제기한 것이다.
게다가 유족은 “강남 봉은사 뒷마당에서 문건을 다 태워 재가 되는 것을 봤는데 다음날 KBS 뉴스에 나왔다. 유 대표가 보여준 문건은 7장이었는데 2장은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내용이었고 (장)자연이에 관한 내용은 5장이었다. KBS에 보도된 내용과 비슷했다”고 다른 말을 했다. KBS가 경찰에 제출한 문건은 4장이다. 이는 사본이다.
장자연의 문서는 KBS를 비롯해 이미 3개 매체에서 공개됐다. 문건의 정확한 장수와 사본 여부, 다른 문건의 존재, 문건의 소유자와 언론사 제보자 등 다양한 궁금증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으나 유 대표의 기자회견은 이러한 궁금증들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유 대표는 지난해 장자연의 소속사에서 일하다가 사직한 뒤 이 회사 소속 연기자 S와 L을 영입해 기획사를 차렸다. 그러나 장자연의 소속사 측은 “S가 전속 계약을 위반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벌이고 있고, “L도 계약이 2009년 12월까지로 돼 있다”며 소송을 준비중이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 대표와 장자연은 한 달간 일을 같이 했을 뿐 그다지 친분은 없었다고 한다.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장자연 전 소속사 대표 K씨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언론사를 통해 “장자연의 친필문건은 조작된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유씨가 법정 공방중인 나를 코너로 몰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다”라며 “성상납, 술자리를 강요한 적이 없는 만큼 경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응분의 댓가는 모두 유씨가 치러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속 시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의혹을 남기고 있다.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K씨에게 경찰은 그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접촉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를 위해 결국 ‘범죄인인도 청구’를 통해 강제구인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故 장자연 리스트 공개될까
“도대체 누가 있기에”…연예계 지금 떨고 있니?


고 장자연 문건에 기재된 사회 유력인사들의 실명 공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연예계와 방송가 일각에서는 거물 PD 등을 비롯한 구체적인 이름들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와 진위가 확실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장자연 리스트’도 떠돈 지 오래다. 여기에는 거대 드라마 제작사 대표와 PD들뿐 아니라 재계와 언론의 깜짝 놀랄 만한 인물들 이름까지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포탈사이트 등에서는 이들에 대한 마녀사냥식 실명 찾기가 벌어질 조짐이다. 자칫 엉뚱한 인사가 이런 식으로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잘못 알려질 경우, 엉뚱한 희생자가 벌어질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 나온 ‘찌라시’에 따르면 ‘장자연 리스트’에는 대기업 임직원과 방송사 PD, 언론사 고위간부 등 10여 명의 실명과 직책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소속사 대표인 K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력인사들이 대부분인데 드라마 제작사의 A대표를 비롯해 유명 드라마 PD인 B와 C가 포함돼 있으며 일간지 D사의 고위 관계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E, F, G사의 고위관계자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문건에 등장하는 몇몇 인사들은 “접대 받은 게 아니라 행사자리에 불려나가 합석했을 뿐이다”라며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자연의 유족이 고인이 남긴 문건에 언급된 인물 중 4명을 고소하면서 이들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더 증폭되고 있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장자연의 친오빠가 총 7명을 고소했다. 유장호 대표 등 3명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문건에 언급된 인물 가운데 4명은 문건과 관련된 내용을 바탕으로 고소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찰이나 유족 모두 문건과 관련한 4명이 누구인지, 정확히 어떤 혐의로 고소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장자연이 작성한 문건에는 고인이 동반 골프, 술시중 심지어 성상납 등을 강요 받았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때문에 피고소인들이 문건에 언급된 사안과 관련해 범죄 행위에 직접 관여했는지 여부를 놓고 경찰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술시중의 경우, 시킨 사람은 강요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고, 받은 사람은 배임수재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족들이 고인이 남긴 문건을 본 후 실명이 언급된 인물 가운데 4명을 선택했다는 것은 분명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의혹이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죄 추정의 원칙이 있어 실명을 확인해 줄 수 없다. 다만 유족은 문건을 본 기억에 의존해 문서 내용과 관련된 이들을 고소했다”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이 거침없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단언한 이재명 대통령이기에 국민의힘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이 아닌 ‘내란 종식’이라고 받아쳤다. 사분오열로 흩어진 국민의힘이지만,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정부를 공격하는 때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인 이른바 ‘3대 특검’이 가결됐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함으로써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가결-거부권 무한 굴레가 이 대통령 취임 후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허니문 없이 본게임 돌입 3대 특검은 모두 윤석열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본회의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내란 특검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 외환 행위, 군사 반란, 내란 목적 선동을 수사한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및 금품수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등 국정 농단 의혹 등의 수사를 골자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상병 특검법은 2023년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해병대원 채모 상병 사건 수사를 방해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내용이다. 당시 수사 외압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임 전 사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 공범 이모씨와 골프 모임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건의 마지막 퍼즐이 김건희씨로 지목됐다. 특히 채상병 특검은 전 정권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여러 차례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켰지만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번번이 무너졌다. 1년9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에서 단번에 통과되자 본회의를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 회원들이 일제히 자리서 일어나 거수경례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3대 특검은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은 이를 심의·의결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이라며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3개 특검법안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 서류에 결재했다”며 이 대통령에게 요청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요청서를 받은 이 대통령이 특검 후보 추천을 공식 의뢰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서 특검 후보자를 각 1명씩 추천하게 된다. 속전속결 속 민주당 3특검법 모두 통과 반성 없는 국힘 ‘이 대통령 때리기’ 올인 내란 특검에 60명, 김건희 특검에 40명, 채상병 특검에 20명의 파견 검사가 투입되는 등 대규모 특검이 예고된 가운데, 민주당과 혁신당은 법조계 인사들 중 후보자를 물색해 빠른 시일 내 추천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쟁에 함몰되는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본원칙적 교훈과 경고를 드린다”며 곧바로 날을 세웠다. 앞서 민주당 단독으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되고, ‘대통령 재판 중지법’까지 잇따라 추진되자 국민의힘은 “대선 다음 날 민생도, 외교·안보도 아닌 첫 입법 행위가 ‘사법부 장악법’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며 “괴물 독재 국가의 출발점”이라고 비판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또다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곧바로 싸움이 번진 것은 여당이 의석 다수를 차지한 여대야소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선과 총선이 ‘심판론’처럼 작용하면서 여소야대와 여대야소 현상이 번갈아 나타났다. 대표적인 여대야소 예로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이 있다. 1990년 노태우정부 시기 당시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뭉치는 이른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넘는 초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지역주의 고착화와 계파 갈등의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초반부터 어깃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치면서 여대야소 정국이 펼쳐졌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기세를 몰아 153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을 이어갔다. 이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친박(친 박근혜)계가 당권을 장악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대야소의 틀을 갖췄지만 여권 내 계파 갈등, 쟁점 법안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박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면서 새누리당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와 부동산, 집값 상승 등으로 5년 만에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줬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심판론 성격으로 치러진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고 결국 3년 만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여당이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정권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의회 독주’를 넘어 ‘의회 독재’ 프레임을 씌우며 견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유세 현장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주의 선진 대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전체주의 1인 독재국가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있다”며 ‘이재명 포비아’ 여론을 띄웠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새미래민주당은 “이재명 독재 정권 탄생 저지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과 국민통합공동정부 운영 및 제7공화국 개헌추진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대선 하루 전날이던 지난 2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 독재를 이재명과 민주당이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지옥문을 반쯤 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한때 남미의 모범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반미 포퓰리즘과 경제 파탄, 사법 장악과 독재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자유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잊지 말자” 윤 심판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예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도 독재한다고 말을 들었지만, 유신정우회를 만들어서 입법부를 장악하려고 했던 정도였다”며 “사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것은 이재명 후보가 아마 가장 심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과 대장동 재판이 사실상 중지된 것을 두고는 “정치 권력에 사법부가 무릎 꿇고 정치적 면죄부를 주면서 법 앞에 권력이 있다는 걸 선언한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재명 괴물 독재 국가의 공범이 된다는 걸 기억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유권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세상. 가히 ‘이재명 독재’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재 프레임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에 국민 40%가 힘을 실어준 데에는 지난 3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협치 없는 정치’ 때문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은 당 대표 때의 정치 스타일도 그렇고 업무 방식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민주당에서 누가 감히 이 대표를 견제하겠나.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제어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당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집안싸움이 한창인 와중에도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의회 독재라고 비판하니, 국민의 피로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우려되나’라는 질문에 여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선택을 독재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행태를 알리기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에 힘을 ‘몰빵’해준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며,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고 여당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회 독재? 윤 심판은 국민의 뜻” 여대야소 처음 아닌데…야 맹공 민주당 양부남 의원 역시 대선 전 토론 프로그램 <국민맞수>를 통해 “의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의회 민주주의로 당을 지도했을 뿐이고 앞으로 하려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낙연 전 총리나 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 몇몇 사람이 의회 독재라는 주장을 하고 김문수 후보도 ‘방탄 괴물 독재 국가’를 운운한다”며 “이재명 (당시) 후보를 괴물 독재로 지칭하는 자체가 국민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정치 엘리트 기득권의 기만이자 오만이며 교만”이라고 직격했다. 이날 토론에 함께 출연한 국민의힘 홍석준 전 의원이 민주당의 예산 폭주, 행정부 장악 등을 예로 들자 “독재와 개혁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하려는 사법제도 개혁이라든지 기재부 개혁 등은 나름 합리성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개혁을 독재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국민 생각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국민 성숙도를 봤을 때 의회를 장악했다고 독재 정치를 하다가는 그 정권도 혼이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KBS <전격시사>에 출연해 ‘내란 극복’을 축소할 것을 주장하며 “내란 극복이라는 것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하다가는 결국 보복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국민과 대화, 특히 자기와 반대되는 측 사람과 대화를 활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여당이 고삐를 꽉 쥐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순탄치 않았다. 지금처럼 의회 독재든, 계파 갈등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야당이 호시탐탐 무너뜨릴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 여당이지만 계속해서 발목 잡힌다면 문재인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효능감 문제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다르다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여대야소와 지금의 여대야소는 다르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노태우정부 당시 3당 합당을 예로 들며 “과거에는 여대야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당 계열에 표가 몰렸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며 “윤석열이란 선장이 자격이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제론이 나왔고, 그 결과 총선과 대선 모두 윤석열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방향타를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 대통령 재판, 올스톱 일단 푼 사법 족쇄? 법원이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사건에 대해 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같이 밝히며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진행 중인 재판에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리스크였던 대장동 배임 사건 역시 재판부가 재판을 연기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다른 재판 역시 추후 지정될 가능성이 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임기 중 재판이 정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원은 대장동 배임 사건 재판부는 이 대통령과 함께 기소됐던 더불어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