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철수 탓’, 안 되면 ‘재인 탓’ 된 사연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2.12.07 1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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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꿀꺽?

[일요시사=정치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의 전격적인 사퇴로 정국이 흔들리고 있다. 파장만 남고 주인공은 자취를 감췄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고심도 깊어졌다. 안 전 후보 없이는 남은 대선기간을 어떤 식으로 버텨나간다 해도 무리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혹여 어렵게 이긴다 해도 영광은 안 전 후보의 몫이고 진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하다. 질 경우 깎아 먹은 지지율은 문 후보의 ‘대권욕심’ 탓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문 후보 혼자 아등바등 찬바람 맞으며 전국을 누벼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문 후보로선 앞도 뒤도 캄캄한 어둠 속 벼랑이다.

현재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접전을 펼치며 박빙의 선두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양측 모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양측 내부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일부는 승리를 확신하며 안도하고 있다. 절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양 진영 모두 다소 찝찝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안 전 후보에 대한 한 가닥 희망과 기대 때문이다.

군복은 벗어놓고
전장에 참가한다

안 전 후보의 사퇴 선언은 굉장히 전략적이었다. 안 전 후보는 ‘이도저도’ 아니면서 가장 안전한 노선을 선택했다.

우선 ‘정권교체’를 서두에 언급했다. 자신이 내세웠던 ‘새정치’를 대의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안 전 후보의 필살기였다. 정권교체가 사퇴이유였지만, 엄밀히 따져 문 후보와의 단일화는 아니었다.

안 전 후보는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고 했다. 여론과 정치권은 백의종군에 내포된 안 전 후보의 속내를 점쳤다. 백의종군이라는 사자성어가 순식간에 포털을 뜨겁게 달궜다.


백의종군은 ‘흰옷을 입고 군대를 따른다’는 의미다.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전장에 간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는 아이러니한 안 전 후보의 처지와, 앞으로 있을 행보를 ‘있는 그대로’ 대변하고 암시한다.

벼슬이 없다는 것은 결재권, 곧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장에 가겠다는 것은, ‘승리’를 목표로 하겠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는 아무런 직책이 없기에, 패배의 결과에 자유로울 수 있다. 군사를 진두지휘할 직책을 완전히 문 후보에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 전 후보의 캠프 합류는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문 후보 진영에서 정해진 훈련을 받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정권교체 위해 새정치 양보하고 ‘백의종군’ 선택
실패해도 '책임’ 없지만, 이기면 ‘영광’ 돌아와

그럼에도 전쟁에서 아군이 승리하면 그에 대한 포상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게 세상 이치다. 

이 같은 백의종군이 가능한 이유는 안 전 후보의 지지자들 때문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문 후보 진영에 합류하고, 일부는 전장에 나서지 않으며, 일부는 적진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 전 후보는 전장에 따라나서면서도, 정작 칼을 휘두르지 않고 관망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안 전 후보의 지지자가 충분히 움직인 다음에, 안 전 후보가 칼을 휘두르는 ‘척’만 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안 전 후보가 선언한 백의종군 사자성어에 빗대어 시나리오를 펼쳐보면 그렇다.

문 후보는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을 1%라도 더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바로 ‘지지층 이탈 방지’를 위한 ‘안철수 끌어안기’ 때문이다.

문 후보로서는 경제적이지 못한 계산이다. 안 전 후보에 대한 예우가 조금이라도 부족할 경우, 문 후보는 흡수보다 더 큰 규모의 지지층 이탈을 경험할 지도 모른다. 야권 지지자로 분류되지만,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동시에 열망하는 유권자가 그들이다.

부동층 투표 포기 막아야
안철수 한마디면 게임 끝  

그들이 박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은 없지만,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은 있다. 그들의 표가 공중분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정권교체만을 바라는 안 전 후보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증발’ 가능성이 농후한 유권자들이다.

반면 문 후보가 안 전 후보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갖출 경우, 문 후보가 흡수할 수 있는 ‘무당파’는 한계가 있다. 이들은 새정치만 열망하는 유권자다. 문 후보로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동층이다.

티끌만한 확장이지만, 정작 이것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11월27일,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3%p) 안 전 후보가 사퇴 선언을 한 후 안 전 후보 지지층의 61%는 문 후보에게 돌아섰다. 나머지 14%는 박 후보에게, 24%는 부동층으로 남았다.

문 후보는 24%를 흡수하기 위해 안 전 후보에게 목을 맬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야권후보 단일화가 실패했다고 평가했으며, 문 후보에 대한 생각은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 후보의 안 전 후보 지지층 흡수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 '실패했다'는 응답은 60%, 단일화한 것이라는 응답은 25%로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일화 실패했다-60%
문재인 나빠졌다-27%


안 전 후보 사퇴 이후 문 후보에 대한 생각의 변화에 대한 물음에, '좋아졌다' 10%, '나빠졌다' 27%, '변화 없다' 56%로 문 후보에 대해 인식이 다소 악화했음을 알 수 있다.

안철수 지지층은 안 전 후보의 사퇴를 '헌신'으로 보지만 문 후보와 박 후보 지지층에선 ‘명쾌한 선택’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이 부분은 문 후보의 몫으로 남는다.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안 전 후보가 사퇴 선언에서 “문 후보께 성원을 보내주십시오”라고 발언하면서, 백의종군 선언과 균형을 맞췄다.

어쨌든 안 전 후보는 박 후보 편에 서지 않았다. 문 후보에게 반기를 들지도 않았다. 더 나아가 안 전 후보 지지자들에게 정권교체를 위해 문 후보에게 성원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이것은 안 전 후보 지지자 중 61%, 즉 정권교체를 열망하며 문 후보에게 돌아설 지지자들이 안 전 후보에게서 완전히 이탈하는 것을 방지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안 전 후보는 “제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리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함으로써, 새정치를 열망하는 24%의 부동층을 안 전 후보 지지자로 확실히 묶었다.


문 후보가 안 전 후보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안 전 후보가 묶어둔 실타래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안 전 후보 지지층이 조금이라도 흡수되면, 안 전 후보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새정치 희망하는 24%, 반만 흡수해도 성공적
안철수, 막판에 깜짝 지원 극적 효과 노릴 듯

안 전 후보가 사퇴 선언 후 닷새 만에 모습을 드러내 “지지자들의 입장에서 지원을 판단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러한 그림이 그려진다.

안 전 후보는 이날 자신의 캠프 근처에서 박선숙·김성식·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 등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이후 선거지원이나 향후 행보 등과 관련해 “23일 사퇴 기자회견문에서 밝힌 것 그대로”라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안 전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문 후보와 함께 선거운동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 전 후보가 선거 중반 이후에야 문 후보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도 공동유세와 같은 직접적인 선거지원이 아닌 간접지원 방식이 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한 전문가는 매체를 통해 “이후 자신의 정치 행보를 고려하면 당장 나서긴 부담”이라면서 “지지층의 서운함을 달래며 일정 기간 지켜보다 문 후보가 좀 더 수세에 몰릴 때 등판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도 안 전 후보의 지원을 무리하게 압박하는 것은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당분간 차분히 기다리겠다는 계획이다.

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안 전 후보는 어떻게 지원할지 구체적인 방안도 서고 지지자들의 흔쾌한 동의가 이뤄지는 시점에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우리가 재촉할 입장은 아니니 기다리겠다”라고 매체를 통해 말했다.

간접적인 지원할 듯
“마누라 빼고 다 바꾼다”

안 전 후보가 선거지원에 가담하더라도 문 후보에게 흡수되는 표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럴 경우 이것은 문 후보의 책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새정치를 열망하는 유권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마누라 빼고 다 바꾼다는 마음으로 당을 혁신하겠다”고 발언해 부동층 흡수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비록 공로가 안 전 후보에게 돌아가더라도 문 후보로선 지고 욕먹는 것만큼 끔찍한 상황은 아마 없을 것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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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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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