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삶을 사는 '제2의 김근태' 고문잔혹사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2.11.29 11: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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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이고 찔리고 매달려도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

[일요시사=정치팀] 영화 <남영동 1985>가 화제다.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 자행된 처참한 역사가 새삼 조명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수많은 고문 피해자들의 삶도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무슨 이유로 이들의 삶은 철저히 외면당했을까. <일요시사>가 '제2의 김근태'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문잔혹사’를 들어봤다.

1978년 2월 새벽. 남자 대여섯 명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똥물'을 투척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여성들의 가슴과 입에 똥물을 마구 쏟아댔다. 회사에 매수된 행동대원인 그들의 만행은 끔찍하다 못해 처참했다. 이른바 '똥물사건'으로 유명한 방직공장 여성노동자 5명은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는 유인물을 뿌리다 경찰에 연행됐다.

빨갱이, 가족도 등 돌려

이른바 불순·용공세력으로 몰린 이들은 배후를 불라며 자백을 강요받았다. 조사과정에서 온갖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아끌리고, 걷어차이고, 짓밟히며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때부터 이들은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 이때 그들의 나이는 불과 17~22세였다.

그중 A양은 가족의 감시 속에 살다가 21세 되던 해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A양이 감옥에 다녀온 것에 대해서도 "아무 문제없다"던 남편은 결혼 후 "빨갱이와 결혼해 재수가 없어 일이 안 풀린다"며 수시로 A양을 폭행했다.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B양은 가족의 무시와 경멸 속에 살았다. 또한 C양은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해 결혼생활을 했다. 


1980년대 대표적 공안사건인 학림사건의 피해자 유모 씨.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반국가단체 조직범으로 몰아 대거 처벌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유씨는 남영동 고문실에서 한 달 넘게 고문을 당했다. 유씨는 고문 과정에서 3차례나 병원에 실려 갔다. 갈비뼈 3대가 금 갔고, 이가 통째로 흔들렸다. 밥 삼킬 힘조차 없었다.

구속에서 풀려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유씨의 인생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난한 노동자인 유씨는 고문으로 망가진 몸을 치료할 돈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극도의 공포와 악몽에 시달렸다. 불면증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방에 있으면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아 수시로 집을 나갔다. 몇 달이고 노숙하며 구걸로 생활했다. 아내와 딸에게 이끌려 집에 돌아오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자살시도도 잦아졌다.

가족은 정신과 치료를 권유했지만 유씨는 "왜 나를 미친놈 취급하느냐"며 화내기 일쑤였다. 유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내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문 후유증이란 생각을 못했다"라고 말했다.

유씨의 부모는 '빨갱이 아들을 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이웃의 배척에 시달렸다. 부모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 고향 발길도 뜸해졌고, 그러다 연락이 끊겼다. 경제적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유씨는 결국 딸의 결혼을 앞두고 아내와 이혼했다.

고문 피해자 자살 시도만 39.53%에 달해
정신병원에 감금되거나 노숙자로 살기도


이 같은 이야기는 똥물사건 여성노동자와 학림사건의 유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부분 고문 피해자들은 정신적·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다.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나아가 사회와 국가로부터도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씨처럼 고문을 당한 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우는 사람은 매우 많다. 때로는 그대로 방치돼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여의치 않은 주머니 사정 탓만은 아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자칫하다 빨갱이로 몰릴지 모르는 상황이 문제였다.

고문이 고문을 낳는 비극이었다. 그러다보니 가족은 치료를 꺼리고, 환자는 방치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들의 정신적 고통도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대인예민성, 우울증, 불안증, 적대감 증상 등의 정신질환이 그것이다. 고문 피해자들은 일반인의 4배에 이르는 우울증 발병률을 가지고 있다. 정신분열증은 20배에 이른다.

자살률도 굉장히 높게 나타난다. 임채도 인권의학연구소 실장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시국사건의 경우 20.85%의 고문피해자가 자살을 시도했고, 조작간첩은 39.53%의 고문 피해자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고도 정신적·신체적 고통 못지않게 이들을 짓누른다. 고문 피해자들은 전과자로 분류돼 취업에 제한을 받는다. 직업을 잃기도 하며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고문으로 장애를 갖게 되면 경제활동도 불가능해 이들의 생활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사회적 지지 부재로 말미암은 고통도 만만치 않다. 주위 사람들이나 이웃이 외면하고 배척하거나, 사건과 관련해 어떠한 도움이나 피해구제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고문 경험을 사람들이 전혀 믿지 않거나, 고문에 대해 털어놓을 수 없는 것도 이들의 숨통을 조인다. 무엇보다 가족이나 친인척의 외면이 가장 큰 고통이다.

피해자 가족의 고통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들도 피해자와 함께 정신적·신체적, 그리고 생활면에서도 동일한 고통을 겪는다. 심지어 피해자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이처럼 고문 피해자와 가족들은 고통을 위로받거나 치유 받지 못한 채 더욱 처참한 삶으로 내던져진다. 이들은 '지옥 같은 삶'이라고 표현했다. 

"지옥 같은 삶" 토로

한 고문 생존자는 "신체적으로 예민해지고, 말초 부분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기관지가 안 좋아졌다. 옷을 다 벗기고 고문당할 때, 그때 버텨야 했는데…. 못 버틴 것에 대한 자책감, 자존심 상한 것이 쉽게 안 잊혀져 정신적으로 괴롭다. 사회적으로는 사람에 대해 안에서부터 선을 긋게 된다. 친척, 친구라 하더라도 그 선을 넘어 친해지기 힘들다. 그 선을 넘어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토로했다.


고문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불법한 조사방법 중 하나다. 한 전문가는 "고문은 무능한 수사능력을 방증한다. 추리와 조사 그리고 과학수사 모든 과정을 '한방'에 해결하려는 공권력의 비극이다. 하물며 아무것도 '털 것' 없는 사람을 수사할 경우, 이러한 한방은 더욱 끔찍하게 한 인간의 인생을 망쳐버린다"라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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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