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지원금 검증 사각지대

협업 내밀고 단독 창업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청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지원금 신청이 한창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청년 실업 문제의 대안으로 정부는 매년 지원금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많은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지원금 선정의 핵심 기준인 ‘사업계획서’의 검증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정작 사업성이 있는 창업자들이 밀려나고 있다.

청년층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청년창업지원금’은 자금과 경험이 부족한 예비 창업자에게 초기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다.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상환 의무가 없는 보조금 형태로 지급되며, 사업 수행을 전제로 일정 금액이 선지급되는 구조를 갖는다.

지원금만
노리고…

청년창업지원금은 대부분 ‘사업계획서’를 중심으로 선발 절차가 이뤄진다. 지원자는 창업 아이템의 사업성, 기술성, 시장성 등을 담은 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류 평가와 발표 평가를 거쳐 선정된다.

이후 주관 기관과 협약을 체결하면 사업비가 지급되며, 창업자는 일정 기간 동안 해당 자금을 활용해 제품 개발이나 서비스 구축, 시제품 제작, 시장 진출 등을 추진하게 된다. 사업비는 인건비, 재료비, 외주 용역비 등 세부 항목별로 사용이 제한되며, 집행 과정에서 관련 증빙 자료 제출이 요구된다.

대표적인 청년창업지원사업으로는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청년창업사관학교 등이 있다. 예비창업패키지는 통상 수천만원에서 최대 1억원 내외의 자금을 지원하며, 초기창업패키지는 평균 5000만~7000만원 수준의 사업화 자금이 투입된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역시 수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 지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사업은 최대 2억원에 이르는 자금이 지원되기도 한다.

이처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청년창업지원사업은 수백개에 달하며, 전체 예산 규모도 수천억원에서 수조원 수준으로 확대돼 왔다. 이에 일부 주관 기관에서는 수십대 1에 이르는 경쟁률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업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지원 과정 자체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창업지원금 제도는 청년 실업 문제를 완화하고, 기술 기반 창업을 촉진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자금 부족으로 창업을 망설이던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는 크다. 실제로 다수의 창업 기업들이 해당 지원사업을 통해 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성장 발판을 확보하고 있다.

대필·명의 대여…다양해진 수법
‘쉽게 최대한’ 불법‧편법 확산

하지만 청년창업지원금 규모가 확대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를 노린 편법과 불법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컨설팅, 사업계획서 대필, 명의 대여, 심지어 지원금 분배를 전제로 한 공모 형태까지 다양한 방식이 등장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협업을 명목으로 접근한 뒤 사업 아이디어를 가져가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창업을 준비 중이던 A씨는 “낯선 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빼앗고 그걸로 창업지원금까지 타 갔다”며 “처음에는 사업계획서 컨설팅을 해주겠다며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창업 준비 과정에서 사업계획서 수정·보완을 돕겠다고 접근한 뒤, 핵심 자료를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단독 창업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A씨는 “이 과정에서 특허 자료나 제품 이미지, 사업 구상 등 모든 자료를 가로채 창업지원금을 받아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사업계획서가 문제없이 통과됐다는 점이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눈뜨고 코 베일 수밖에 없다. 보통 협업 관계가 명확하게 문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료가 공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기는 쉽지가 않다.

외부에서는 이른바 ‘브로커’ 또는 컨설팅 시장이 형성돼있다. 일정 비용을 받고 사업계획서를 대신 작성하거나 평가 대응 전략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에서는 수만원 수준의 간단한 첨삭부터 수백만원대의 고가 컨설팅까지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고 있으며, 일부 업체는 선정 이후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요구하는 ‘성공 보수형’ 구조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사업계획서 작성과 면접 대비를 통해 지원사업 선정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광고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브로커 시장은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문제로 지적돼왔다. 이전에는 동일한 사업계획서를 제목만 바꿔 여러 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수억 원대 창업자금을 반복 수령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다 뺏겨도
속수무책

또 대학생 명의를 빌려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지원금을 나눠 갖는 방식의 편법 구조 역시 확인된 바 있다. 사업 수행 주체와 실제 수익자가 일치하지 않는 이른바 ‘바지사장’ 형태다.

보다 조직적인 방식의 부정 수급 사례도 존재한다. 과거 브로커와 신청자가 공모해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교육 이수, 사업 진행까지 전 과정을 대리로 수행하고, 시제품 제작 역시 외부업체를 통해 허위로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원 예정금 6000만원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3000만원가량이 브로커와 신청자 사이에 나눠진 것으로 조사됐다. 시제품은 사진 제출만으로 확인이 이뤄지고, 교육 과정에서도 대리 출석이 걸러지지 않는 등 관리 체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행태가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프리랜서 플랫폼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창업 지원사업 관련 컨설팅 상품이 다수 유통되고 있으며, 일부 업자들은 “선정 가능성을 높여준다”거나 “평가 기준을 잘 알고 있다”는 식의 홍보 문구로 예비 창업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 지원금을 노리고 사업 아이템을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주는 형태의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일부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예상 매출이나 사업성을 과도하게 부풀려 작성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략이 공유되기도 했다.

또 지원 사업에 선정된 이후에도 실제 사업을 지속하지 않고 자금을 소진한 뒤 폐업하는 사례, 이른바 ‘먹튀’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편법과 불법 사례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전에 걸러내는 체계는 없는 상황이다. 청년창업지원사업이 갖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활개하는
브로커들

특히 사업계획서를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현재의 심사 방식은 창업 아이템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효과적일 수 있지만, 제출 자료의 실제 작성 주체나 권리 관계까지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원사업 대부분은 서류 평가를 통해 1차 선별이 이뤄지고, 이후 발표 평가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업계획서가 실제 창업자에 의해 작성됐는지, 혹은 제3자의 도움이나 개입이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외부 컨설팅이나 멘토링과 불법 대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개입이 있었더라도 이를 위법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협업 관계 역시 검증이 까다로운 영역이다. 창업 초기 단계에서는 구두 합의나 비공식적인 역할 분담을 바탕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별도의 계약서나 권리관계 정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특정 자료가 누구의 기여로 만들어졌는지, 사업 아이디어의 실질적 권리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협업 과정에서 제공된 자료가 제3자에 의해 활용되더라도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지원금 집행 방식 또한 이 같은 한계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청년창업지원금은 사업 수행을 전제로 일정 금액이 선지급되는 구조를 갖는다.

이후 중간 점검과 최종 평가를 통해 사업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환수 조치가 이뤄지지만, 이미 자금이 집행된 이후에야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사전 예방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장 점검 역시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지원 대상 기업 수가 많고 사업 유형이 다양한 상황에서 모든 사업을 일일이 실사로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사업계획서만 통과하면 끝?
창업지원금 검증 체계 구멍

이에 따라 시제품 확인이나 사업 진행 여부 점검이 서류나 사진 등 간접적인 방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이 과정에서 허위 자료 제출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

단속과 처벌 측면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 관련 기관들은 불법 브로커 개입이나 부정 수급이 확인될 경우 지원금 환수와 사업 참여 제한 등의 제재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 적발 사례는 많지 않다.

위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고의성과 공모 관계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하는데, 관련 자료 확보가 쉽지 않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수사와 제재까지 이어지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사업계획서 대리 작성을 통한 부정 수급을 금지하고 있으며, 적발 시 지원금 전액 환수와 사업 참여 제한 등 제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불법 브로커 의심 활동에 대한 점검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신고 채널을 운영하는 등 제도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창업자의 사업 이해도와 실행 역량을 검증하는 절차를 보완하는 등 심사 방식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창업지원금 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재 강화뿐 아니라, 권리관계 검증과 사업 수행 확인을 보다 정교하게 할 수 있는 구조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직하면
불이익?

가장 큰 문제는 사업 운영 과정에서 정작 사업성이 있는 창업자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밀려난다는 점이다. 지난해 창업지원금을 받아 창업을 시작한 B씨는 “정직한 방법으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제도의 취지와 달리 지원금 확보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6·3 후폭풍’ 표심 가른 당락 결정타

‘6·3 후폭풍’ 표심 가른 당락 결정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방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나왔으니 원인을 분석할 시간이다. 여야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은 상황이라 외부보다는 내부가 더 시끌벅적한 모양새다. 여당을 견제하면서 야당을 심판한 민심의 절묘함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지방선거를 뒤흔든 두 이슈, 주식과 부동산의 관점으로 바라봤다. 광역단체장 12 대 4.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시‧도지사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5대 12(당시 17개 시‧도)로 완패했던 4년 전 지방선거 결과를 완벽하게 뒤집었다. 문제는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이번 지방선거를 민주당의 완승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모든 선거에서 가장 핵심 지역인 서울을 빼앗겼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이번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우선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을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 1년 만에 맞는 선거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1년여 동안 60%대를 상회했다. 말 그대로 민주당이 ‘질 수 없는’ 선거였다. 실제 선거 초기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의 ‘싹쓸이’를 예견했다. 국민의힘의 텃밭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민주당이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15 대 1, 16 대 0 등의 결과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달랐다. 민주당이 12곳에서 승리해 표면상으로는 국민의힘을 압도했지만 실속은 챙기지 못했다. 보수 궤멸 얘기까지 나왔던 국민의힘은 텃밭을 지키고 서울도 수성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119 대 95(무소속 13)로 선방했다.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국민의힘이 마냥 졌다고 보기 어려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서울에서의 패배가 뼈아팠다. 국민의힘 후보로 나온 오세훈 서울시장과 민주당 정원오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1.15%p, 표 차로 따지면 6만여표였다. 서울 성동구청장 출신의 정 후보는 이 대통령의 ‘샤라웃’을 받은 이른바 ‘명픽’으로 불렸다.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한다’는 내용으로 정 후보를 언급하면서 인지도와 지지도가 수직 상승했다. 정 후보는 박주민 의원, 전현희 의원 등 민주당 내에서 잔뼈가 굵은 의원을 상대로 한 경선에서 이겼다. 여론조사 결과도 국민의힘 오 시장과 크게 벌어졌다. 20%p 차이가 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시장 당선은 ‘떼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광역단체장 12곳 이기고도 서울 내주면서 ‘반쪽 승리’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 것은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였다. 오 시장과의 격차가 줄기 시작했고 선거가 임박해서는 오차범위 이내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사전투표를 거쳐 본투표 당일 오후 6시 출구조사가 발표됐다. 방송 3사는 정 후보 51.4%, 오 시장 46%로 민주당이 무난하게 서울을 탈환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오 시장의 신승이었다. 서울 송파구 등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부실 선거’ 논란까지 벌어진 끝에 나온 결과였다. 서울에서의 패배로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2곳에서 이기고도 웃지 못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사실상 패배’라는 아쉬운 탄식이 나왔다. 심지어 이 대통령조차 ‘민심의 경고’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두고 부동산이 표심을 갈랐다고 설명했다. 이재명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분노한 민심이 오 시장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부동산 문제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취임 이후 부동산과 관련해 강경 발언을 이어가는 등 정부가 시장에 깊숙이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9일에 종료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다주택자가 누리고 있던 사실상의 세금 감면 혜택을 거둬들이겠다는 취지였다. 이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연일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는 내용의 글도 썼다.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재명정부는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을 주식시장으로 흘러가게 하는 이른바 ‘머니 무브’를 꾀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그 결과 주식시장은 ‘코스피 5000’ 시대를 넘어 1만 시대를 바라볼 정도로 폭등했다. 어떤 악재가 발생해도 하루이틀이면 장을 말아 올리는 역대급 ‘불장’에 개미들은 빚을 내서까지 진입했다. 6만 표로 당락 갈려 반면 부동산 시장은 크게 휘청였다.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늘리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경제의 가장 기본으로 알려진 수요-공급의 원리다. 이정부의 정책도 그 방향으로 설계돼있다. 다주택자를 옥죈 것도 시장에 매물을 공급하려는 의도였고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를 토지거래허가 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수요를 억제하려는 노력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의도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매물은 예상만큼 나오지 않았고 수요는 많아졌다. 앞으로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시장에 반영되면서 너도나도 빨리 집을 사려고 달려든 것이다. 매물이 줄어드는데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많으니 집값은 올랐다. 매매 시장의 움직임은 전‧월세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집을 가진 사람들이 전세 대신 월세로 바꾸기 시작했고 세입자는 ‘날벼락’을 맞았다. 동시에 월세가 폭등했다. 집을 사기엔 호가가 너무 높았고 세입자로 살기에도 팍팍해졌다. 서울에서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구조였다. 20~30대의 상황은 더 암울했다. 근로소득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막겠다며 대출은 막아둔 상태였고, 대출이 된다 해도 서울에 집을 사기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시세가 높아졌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로,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만진 이들은 20~30대가 아니었다. 주식 폭등도 영향 적었다 한 주식 투자자는 “지금과 같은 불장에서는 모두가 돈을 버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도 돈을 벌 것으로 생각해 시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실제 인생을 바꿀 정도로 돈을 버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번 사람들은 대부분 상급지로 이사 간다. 이미 상대적으로 상급지에 사는 사람이 최상급지로 가는 거다. 이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상황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 시장이 정 후보보다 표를 많이 받은 자치구는 25개 중 10곳이다. 정 후보는 15곳에서 이기고도 승리하지 못한 셈이다. 오 시장이 이긴 자치구에는 공통점이 있다. 집값이 크게 상승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오 시장은 송파‧광진‧영등포‧양천‧강동‧동작‧중‧용산‧서초‧강남구에서 정 후보에 앞섰다. 이 중 서초와 강남을 제외한 8개 지역구는 이정부 출범 이후 아파트값 상승률이 가장 많이 올랐다.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10개 지역구 중 성동‧마포구만 빼고 오 시장이 이긴 지역이 일치하는 것이다. 성동구는 정 후보가 3선 구청장을 지낸 곳이다. 서울시장 선거만큼은 ‘부동산 표심’이 당락을 갈랐다고 봐도 될 정도의 결과다. 전문가들은 자산 투표 경향이 결과에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자산투표는 유권자가 자신이 보유한 집이나 주식 등과 관련한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현상을 뜻한다. 부동산 비중이 큰 강남권이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보수 후보를 많이 지지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정부가 출범 이후 내놓은 대출 규제, 토지거래 허가구역 지정, 다주택자 압박, 보유세 개편 시사 등의 정책은 강남권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을 들썩이게 했다. 부동산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구가 과거와 비교해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들의 표심이 오 시장에게 집중되면서 정 후보는 석패했다. 집값에 반응한 선택 많았다 이, 취임 1주년서 “정상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투기 목적의 부동산 보유 부담을 늘리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보유세가 대체로 낮다. 많이 사 모아도 부담이 별로 없다”며 “투기용으로 가진 것을 내놓으면 엄청난 공급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전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종의 사금융인데 지금 사라져가는 추세”라며 “정상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값) 상승 압력을 나름 잘 막아왔다”며 “선거에는 나쁜 영향보다 좋은 영향이 차라리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1월부터 구두 개입을 통해서 눌러 놓지 않았으면 엄청나게 폭등했을 것”이라고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자평했다. 공급 대책에 대해서는 “임대를 싸게, 좋은 곳에, 평범한 중산층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좋은 품질의 것으로 공급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오 시장은 이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관련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오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최근 전세 매물의 급격한 감소와 전‧월세 가격 상승에 대해 ‘정상화 과정’이라고 답변했다”며 “현장의 고통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괴리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정책 그대로 오 “참사다” 그러면서 “지금 전세가 소멸하고 있는 현상은 어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라며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초래한 뼈아픈 결과이자 서민 주고 안정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정책 참사’의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