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천만 감독’ 왕사남 장항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6.03.13 09:42:43
  • 호수 1574호
  • 댓글 0개

코미디 감각 살려 사극까지 접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국 영화계에서 ‘이야기 잘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 장항준 감독이 ‘천만 감독’이 됐다. 신작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가 탄생했다. 이번 흥행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닌 정통 사극 드라마가 천만 관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극장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5년 만에
기적 흥행

장 감독은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를 졸업한 뒤 방송 작가와 연출을 거치며 영화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를 한 이후 <불어라 봄바람> <기억의 밤> <리바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독특한 연출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이력은 일반적인 영화감독과 다소 다르다. 학창 시절에는 특별히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이야기와 설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 주변 친구들에게 영화 줄거리를 만들어 들려주곤 했다. 온라인에 게시된 장 감독의 고등학교 시절 일화도 눈길을 끈다.

지난 18일 온라인상에는 ‘장항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을 장 감독의 동창이라 소개한 작성자는 “항준이는 고등학교 때도 범상치 않은 괴짜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혼자 흰 머리띠에 ‘필승’이라는 글자를 비장하게 동여매고 공부하는 척하더니, 알고 보니 머리띠 뒤로 만화책을 숨겨보고 있더라”는 유쾌한 폭로를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다.

해당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역시 장항준, 떡잎부터 시트콤 캐릭터였다” “선생님들도 어이없어서 허허 웃으셨을 듯” “사람이 어쩜 저렇게 한결같냐”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학창시절을 마친 장 감독은 방송국에서 막내 작가로 일하며 방송 제작 현장을 경험했고, 시나리오 작업을 계기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장 감독은 영화뿐 아니라 예능과 방송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적 친밀도를 쌓았다.

<접속! 무비월드> <알쓸범잡>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유머와 이야기 전달 능력을 선보이며 ‘영화감독이면서 동시에 이야기꾼’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 그는 <시그널> <킹덤> 등을 집필한 유명 드라마 작가 김은희와 부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8년 김 작가와 결혼해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20대 시절 사수와 부사수로 만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통한다. 두 사람은 창작 활동과 방송에서 서로를 언급하며 유쾌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1000만 관객 넘은 이야기꾼 감독의 진화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

장 감독은 평소 방송을 통해 아내 김 작가와의 결혼을 인생의 ‘신의 한 수’라 표현하며, 아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외조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 감각으로 ‘신이 내린 꿀팔자’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이번 영화의 흥행으로 감독으로서의 저력까지 입증하며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장 감독을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작품이 바로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다. 이 영화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폐위된 뒤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마지막 시기를 소재로 삼은 사극이다. 작품은 어린 왕 단종과 마을 촌장 엄흥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역사적 비극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재해석했다.

영화는 개봉 이후 놀라운 속도로 관객을 끌어모았다. 개봉 5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고, 12일째 200만, 27일째 900만명을 넘기는 등 빠른 흥행 곡선을 기록했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무해한 영화’라는 입소문이 확산되며 세대를 아우르는 관객층을 확보한 것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흥행의 여파는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단종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선왕조실록’ 관련 서적 판매가 증가하는 등 역사 콘텐츠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왕사남’ 흥행 돌풍은 출판 시장과 관광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극 중 단종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관련 역사서 판매와 유배지 방문객도 함께 늘어나는 모습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영화 왕사남이 개봉한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조선왕조실록’을 키워드로 한 도서 판매량은 개봉 이전 기간보다 2.9배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2.1배 늘어 영화 흥행이 독서 수요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역사적 비극
휴머니즘으로

판매 상위권에는 대중 역사서가 이름을 올렸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왕이 들려주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러 권으로 구성된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가운데서는 세종 문종 단종’편이 특히 주목받았다.

단종을 주인공으로 한 고전소설 <단종애사>도 재조명받고 있다. 이광수가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으로,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상태다.

영화 개봉 이후 출판사 새움이 새 판을 선보였고 열림원과 더스토리도 출간을 앞두고 예약 판매를 진행 중이다. 먼저 나온 새움판 <단종애사>는 지난 3일 기준 교보문고 소설 부문 일간 베스트 22위에 오르며 전날보다 무려 14계단이나 상승했다.

영화 인기는 관광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원 영월군에 따르면 삼일절 연휴였던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사흘 동안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장릉을 찾은 관람객은 총 2만6399명으로 집계됐다.

설 연휴 방문객까지 합치면 올해 들어 두 곳을 찾은 인원은 4만4315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연간 방문객 26만3327명의 약 34% 수준이다. 특히 청령포 방문객 비중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월군은 최근 영화 <왕사남>의 주요 배경으로 청령포가 등장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왕사남>은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가 영월 유배지 청령포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24년 <파묘> <범죄도시4> 이후 약 2년 만에 국내 영화 천만 관객 기록을 갈아 치웠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장 감독 특유의 유쾌한 이미지가 영화 홍보와 맞물려 흥행을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과거 라디오 방송에서 “천만이 되면 개명과 성형을 하겠다”고 농담 섞인 공약을 내걸었는데, 영화가 실제로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자 이 발언이 다시 화제가 되며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장 감독이 영화 <왕사남> 개봉을 앞두고 농담처럼 내걸었던 성형, 개명 등 ‘천만 공약’의 이행 여부가 또 다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영화 흥행을 바라며 우스갯소리로 던진 공약이지만, 왕사남이 실제로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장 감독은 급히 타개책을 찾았다.

허무맹랑한 공약은 없던 일로 하고, 대신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소소한 이벤트를 연다.

유쾌하게
영화 홍보

지난 5일 배급사 쇼박스는 장 감독이 오는 12일 정오에 서울시 중구 서울신문사 광장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커피차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장 감독이 직접 참석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장 감독은 전날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에 출연해 커피차 이벤트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소개하기도 했다. 장 감독은 “우리끼리 얘기지만, 뱉은 말을 어떻게 다 지키고 삽니까”라며 "“웃자고 한 얘기였고, 제가 대안으로 시내에서 시민들을 위해 커피차 이벤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왕사남>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도 “(천만 관객은) 정말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웃자고 한 얘기지, 조금이라도 달성 가능성이 있었다면 맨정신에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수습했다. 장 감독은 영화 개봉 직전인 지난달 1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왕사남> 천만 관객 돌파 시 성형과 개명, 귀화, 요트 선상 파티 등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편, 한국 영화 산업 측면에서도 이번 흥행은 의미가 크다. 최근 몇 년간 극장 관객 감소와 콘텐츠 소비 변화로 인해 한국 영화계는 침체를 겪어 왔다. <왕사남>의 이런 성과는 최근 영화 흥행의 흐름이 된 입소문과 뒷심이 가장 극적으로 작동한 결과라 눈길을 끈다.

지난달 4일 개봉 직전 예매자는 15만4000여명으로 높지 않았고, 첫날 관객 수도 12만명을 밑돌아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SNS에서 호평이 늘면서 개봉 2주차 주말에 관객이 더 많아졌고, 설 연휴에 경쟁작 <휴민트>를 따돌리면서 본격적인 흥행 가도에 올랐다. 개봉 4주차인 삼일절 휴일에는 하루 관객 80만명을 넘기며 개봉 이후 최고 관객 수를 찍었다. 역주행 영화는 많지만 개봉 4주차에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하는 건 유례가 드물다.

무해한 영화 평가 ‘왕사남’ 열풍
‘김은희 남편’ 수식어 “이젠 안녕”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만듦새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극 초반의 작위적인 이야기 전개와 어설픈 컴퓨터그래픽 등이 지적받았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지지가 확산된 데는 조선에서 가장 비운의 왕으로 꼽히는 단종의 실화와 역사의 이면에서 찾아낸 엄흥도라는 인물의 존재가 현재적 의미로 다가왔다는 분석이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역사엔(N)교육연구소장은 “단종의 죽음은 조선 전기에는 금기로 취급되다가 후기에 이르면서 복권되고 엄흥도라는 인물이 부상하는 등 조선시대 이래로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왔다”며 “영화는 왕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엄흥도로 상징되는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슬픔과 용기를 그려내며 내란 사태로 민주공화국의 정당성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나 한국인들의 지친 마음에 더 크게 다가온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처럼 비극의 정치사를 다룬 <서울의 봄>에 대한 대중의 호응에 주목하면서 “두 영화는 역사의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극을 막아보려는 인물을 그리면서 숨겨진 욕망을 건드린다”며 “<왕과 사는 남자>는 과거 자신이 지지하는 통치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대중의 무의식 속 좌절감에 감응한다”고 말했다.

<왕사남>의 손익분기점은 260만명, 순제작비는 100억원가량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사극 장르라는 점을 고려하면 크지 않은 규모의 영화다. 볼거리도 화려하지 않고 이야기도 복잡하지 않다. 제작비 200억~300억원대의 대작 장르물이 실패를 거듭하는 최근 극장가에서 지난해 최고 흥행작 ‘좀비딸’과 함께 중급 영화 제작 활성화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올해 초 순제작비 30억원대의 중저예산 멜로영화 <만약에 우리>에 이어 <왕사남>을 잇따라 성공시킨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조수빈 홍보팀장은 “자극성이 강한 장르물이 주류를 이루는 오티티(OTT) 시리즈와 달리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요구들이 있는 것 같다”며 “<파묘> <좀비딸> 등 최근 흥행작들을 보면 강력한 서사의 힘 못지않게 캐릭터 간의 밀도 있는 관계성이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스코어
어디까지?

이 영화의 최종 스코어가 어디까지 이를지도 관심사다. 영화 산업 침체로 3~4월 한국 영화 경쟁작이 없어 <왕사남>의 독주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 감독은 데뷔 이후 코미디, 스릴러, 스포츠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성과 이야기성’을 동시에 추구해온 감독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름 앞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