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3인 현미경 검증 (21)공약해부-①대북정책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1.02 19: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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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 끌려가지 않고 통일 초석 놓을 이는 누구?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경선 이전부터 대선예비주자들을 검증해 온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후보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후보의 면면을 세세히 검증 중이다. 이번 호에서는 스물한 번째 순서로 그들의 '대북정책'을 살펴봤다.

우리나라는 지구촌 유일무이 분단국가다. 이러한 분단상황은 우리나라의 정치·외교·안보는 물론 경제·복지·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최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경영하고자 하는 대선주자라면 반드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해야만 하는 이유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각 후보자들의 대북정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박근혜 <신뢰외교>
"평화정착, 경제, 정치의 3단계 통일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대북정책 핵심 키워드는 바로 '신뢰'다. 박 후보는 남북 간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개선은 사실상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박 후보는 이러한 남북 간의 신뢰구축을 위해 북한의 핵 포기, 국제사회의 규범을 무시하는 북의 태도 변화, 북한에 대한 남한의 일방적 신뢰가 아닌 쌍방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신 북한이 남한과 합의한 약속을 지키면 그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게 지불하겠다는 입장이다.

북 도발 강력대응

박 후보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하거나 안위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시대를 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북한의 도발 등에는 강력히 대응하겠지만, 남북 신뢰 구축 노력도 병행하겠다는 박 후보의 대북정책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박 후보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우리 측의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가 없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아 아직 대북정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신뢰는 대북정책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수단일 뿐 근본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따라서 박 후보 진영에서는 이 같은 지적들을 종합해 최종적인 대북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북 간 신뢰 구축을 위해 대북공약에서 '인도적 지원'을 명문화하거나 과감한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묻지마 지원' 만큼은 철저히 피한다는 전략이다.

북한과의 대화채널도 언제든지 열어놓겠다는 입장이다. 박 후보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서도 "지금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계속 가고 있는데 어쨌든 대화 국면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박 후보는 원칙적으로 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보수층을 대변하는 입장인 만큼 비교적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박 후보 측에서는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는 북한의 사과 없이는 결코 재개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북한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수적 접근법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이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상태에선 불안해서 교류·협력을 할 수 없다"며 안보에 방점을 찍은 보수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북한인권법과 관련해서도 통일한반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통일의 대상인 북한 주민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북한인권문제를 공론화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의외로 최근 대선정국의 주요화두로 떠오른 NLL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킨다"면서도 "공동어로수역 지정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해 유화적인 입장을 내놨다.

마지막으로 박 후보가 생각하고 있는 통일 시나리오는 이른바 '3단계 평화통일'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남북 평화정착' 단계에서 '경제통일'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치통일'에 이른다는 게 골자다. 과연 박 후보의 통일 시나리오는 실현될 수 있을까?



문재인 <남북경제연합>
"대북평화협력 통해 통일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른바 NLL의혹으로 큰 곤혹을 치루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대북정책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문 후보는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해 "우리 목표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보다 나은 정책이 아니고 참여정부 시절로의 복귀도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를 계승 표방하면서도 단점 등은 보완해 보다 완벽한 대북평화협력정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노무현 극복하기

우선 최근 논란이 된 NLL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수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란 진정시키기에 나섰다. 하지만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NLL남북공동어로구역 조성 등 NLL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동시에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들도 꾸준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문 후보는 특히 "취임하면 바로 서해평화협력지구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극한으로 대립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키워드로 '경제'를 꼽았다. 남북 사이에 연합체를 구성하고 자본, 물자, 인력 등의 교류를 통해 양측의 경제를 모두 활성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문 후보는 "대립의 이념으로 일관했던 지난 5년 동안의 대북 정책의 결과는 참혹했다"며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하루 속히 끌어들여 통일로 가는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대북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과거 도발 및 미래 도발 위협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는 문 후보 측의 입장은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을 가져올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설 경우 남북 간 포괄적인 경제협약체결이 추진되고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도 추진되는 만큼 활발한 남북교류가 기대되지만 한편으론 과거 진보정권에서 되풀이 됐던 '퍼주기 논란'이 재현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문 후보는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도 일단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약 없는 북한의 사과를 기다리며 남북대치를 이어가기보단 우선 금강산 관광을 재개 한 후 적극적인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입장이다.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서도 연평도 사태는 우선적인 사과를 요구하되, 천안함 폭침에 대해선 각종 의문점을 먼저 풀어본 뒤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퍼주기 논란

하지만 문 후보 측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다. 문 후보 측은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를 축소하고 확산을 경계하는 분위기에서 북한이 핵개발에 나서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며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문 후보의 통일비전은 남북경제연합에 있다. 문 후보는 "우선 북한과 확고한 평화협정를 맺고 남북경제연합을 구성해 남북 간 교류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정치연합도 가능할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구상을 내놨다.


안철수 <북방경제>
"포용·상생의 단계적 통일론"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대북정책에 대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면 평화·안보·경제가 선순환되는 게 당연하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구한 포용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이명박 정부의 상생 공영정책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또 "안보가 불안하고 평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복지국가는 요원하다"며 대북정책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안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업그레이드된 대북포용정책'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외교·안보 정책을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게 연결시키는 최상위 전략 개념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중간적 성향

안 후보는 과거 정부들의 대북정책에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안 후보는 "채찍만 써서 남북갈등이 심화됐다"며 현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또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교류협력으로 긴장완화의 성과를 거둔 반면 '퍼주기 논란' 등 남남 갈등을 유발했다.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후보와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점이다.

안 후보는 타 후보들의 대북정책들과도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중도·무당파에 기반을 둔 안 후보는 상당수 대북정책에서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중간적 성향을 띠고 있다.

한편 안 후보는 남북 간 평화통일을 위해 북방경제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했다. 대륙철도 연결을 중심으로 도로와 해운이 결합하는 복합 물류망을 구축해 북방자원·에너지 실크로드를 건설하고 북의 농업을 살리는 북방 농업협력 등을 추진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남북경협이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남북경협의 제도화를 실현하고 이를 논의하고 이행하기 위한 상시 조직을 개성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 통과의 안정성을 확보함으로써 남·북·러 PNG(Pipeline Natural Gas) 사업과 남북 광물자원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이를 확장해 중국 동북지역 및 러시아 극동지역과의 자원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방향제시 미흡

이외에도 안 후보는 대북 포용정책과 안보태세 강화, 균형 외교를 대북정책의 3대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NLL문제는 확고히 지키면서 서해평화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하고 금강산 관광문제는 우선 대화하되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즉시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북핵은 결코 용납할 수 없고 북 인권도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묻어두지만은 않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해 한 전문가는 "튼튼한 안보를 내세우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 달성할 것인지 방향제시가 미흡하다"며 "복잡한 대북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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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