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적 의료비’ 역대 최대, 왜?

퍼주고 퍼주다 탈모까지 지원?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재난적 의료비 지원금이 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재난 수준’으로 재정 지출이 치솟은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지원 범위가 확대된 영향으로 보이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재난적 의료비 제도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의료비 지출로 가계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돕기 위해 도입됐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도 감당되지 않는 고액 의료비 문제가 반복되면서, 정부가 직접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재난적 의료비 제도가 논의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고액 의료비 부담 문제가 있었다. 당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단계적으로 추진돼왔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비급여 항목과 고액 치료비는 여전히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암이나 희귀질환처럼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질환은 물론,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시술·검사 비용이 수백만 원 단위로 누적되면서 가계가 단기간에 경제적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심지어 의료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장기 입원비로 인해 가족 전체의 생계가 흔들리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건강보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한국의 의료비 구조는 국제 기준으로도 높은 수준이었다. 2017년 기준 경상의료비 중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비율은 33.7%로, OECD 평균(20.5%)보다 크게 높았다. 가계가 의료비를 직접 지출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질병이 발생할 경우 중산층 이하 가구는 곧바로 생활 기반이 흔들릴 위험이 크다는 의미였다.

이유는 2010년대에 들어 비급여·고액약제 사용이 늘면서 의료비 지출은 더욱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국민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이 상승함과 동시에 민간 실손보험 가입이 급증하는 현상도 함께 나타났다.

실손보험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건강보험 보장성만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결국 의료비와 가계 부담 사이의 격차가 커지면서 고액 치료비로 경제적 파탄에 이르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지적됐고, 의료비로 인해 사회적 취약계층이 양산되는 현상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는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적 안전망 도입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암 등 중증질환 환자들이 비급여 비용과 고액 입원비로 인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는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되면서, 제도 도입에 힘이 실렸다.

건강보험으로도 한계가 있는 영역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직접 의료비 부담을 보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이다. 논의는 먼저 시범사업 형태로 나타났다. 2013년 보건복지부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제도를 제한적으로 운영하며 고액 의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를 선별 지원했다.

당시는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제한적 지원이 이뤄졌지만, 시범사업이 실제로 의료비 부담 경감에 기여한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제도화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병원은 지원금 신청 적극 홍보
경증 지원이 중증 지원 넘어서

이후 2017년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서도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가계 위기 문제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고,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제도적으로 확장할 필요성이 함께 언급됐다.

결국 이 같은 논의를 토대로 2018년 ‘재난적의료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 국가 제도로 공식화됐다. 법률 시행을 계기로 지원 근거가 명확히 규정되고, 지원 대상·소득 재산 기준·심사 절차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되며 지금의 사업 구조가 형성됐다.

사업의 기본 골자는 단순하다. 가구 소득과 비교해 의료비 부담이 지나치게 클 경우 정부가 의료비 일부를 대신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실질적인 이용률이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2018년 본격 시행 당시 소득과 재산 기준은 상대적으로 엄격했고, 지원 대상 질환도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희귀질환 등 중증 중심으로 제한됐다.

입원 진료는 질환 구분 없이 신청이 가능했지만 심사 기준이 높아 실제 지원 문턱이 상당히 높다는 평가가 많았다. 더불어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 등 저소득층만을 중심으로 지원하다 보니 대상 폭이 좁았다.

문제는 신청률 자체도 매우 낮았다는 점이다. ‘재난적 의료비’라는 제도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환자가 많았고, 병원에서의 안내도 충분하지 않았다.  “홍보가 부족해 실수요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서류 제출 절차 역시 까다로워 환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자료가 많았고,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을 경우 신청까지 하기는 쉽지 않았다.

기준 완화
지원 폭증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정부는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2021년을 전후해 재산 과세표준 기준이 약 5억원대로 설정됐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지원 비율이 80% 안팎까지 높아졌다. 연간 지원 한도 역시 상향 조정되면서 제도의 안정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편이 진행됐다.

아울러 신청 절차 간소화, 개별 심사 확대 등도 논의되기 시작하며, 초기 엄격한 요건 때문에 제도에서 배제되던 환자군에 대한 접근성 보완이 이뤄졌다.

본격적인 변화는 2023년 개편에서 나타났다. 이 시기부터 의료비 부담률과 재산 기준이 크게 완화돼 지원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소득 기준은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를 기본으로 유지하면서도, 연소득 대비 의료비 부담률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기준중위소득 200% 수준까지도 개별 심사로 지원이 가능하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재산 기준도 과세표준 7억원 이하로 완화됐고, 의료비 부담률 요건은 기존의 ‘연소득 대비 15% 초과’에서 ‘10% 초과’로 낮아졌다. 입원 진료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모든 질환에 대해 신청할 수 있었지만, 완화된 심사 기준이 적용되면서 실제 승인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외래 진료도 중증 중심 구조는 유지됐지만, 개별 심사 적용 폭이 넓어지면서 경증·만성질환이라도 의료비 부담이 커지면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재난적 의료비 신청은 제도 개선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2023년 재난적 의료비 신청 건수는 3만3585건이며, 지난해에는 전체 지원 건수가 5만735건 규모로 대폭 상승했다. 건당 평균 지원금도 상승했다. 2023년 평균 지원 금액은 약 301만원이었고, 2024년에는 약 312만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지원액은 ▲2020년 340억원 ▲2021년 446억원 ▲2022년 601억원으로 완만한 증가를 보였지만, 2023년에는 1010억원으로 처음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2024년에는 지원액이 1582억원으로 집계돼 불과 1년 만에 약 56% 증가했다.

사업 집행액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예산 부족
지급 지연

2025년에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액이 2000억원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있다. 실제로 지난 8월 말까지 집행된 금액만 이미 1368억원에 달해 역대 최대치 경신이 확실시 되고 있다.

신청자가 폭증하면서 예산이 조기 고갈돼 지난 10월에 일시적으로 지급이 중단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예산이 없어 지급 대기” 통보를 받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건보공단은 매년 하반기에 신청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예측한다. 이미 지난 7∼8월 보건복지부에 예산 부족 가능성을 알리고 추가 재원 확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9월부터 추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액이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신청자가 많아졌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제도 기준 완화로 인해 신청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지원액 폭증의 직접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중증질환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난적 의료비가, 최근에는 오히려 경증·만성질환 환자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건보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 8월까지 재난적 의료비가 지원된 환자 중 중증이 아닌 질환자가 차지한 비중은 52.5%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중증질환 지원액(47.5%)을 이미 넘어섰다. 전체 지원 건수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17만6000여건의 지원 중 11만2000여건(63.6%)이 중증 이외 질환이었다.

재난적 의료비가 초기에는 암·희귀질환·심장질환 등 고액 중증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경증 환자가 전체 지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특히 재난적 의료비가 실제로 지급된 상위 질환을 보면 척추병증, 추간판 장애, 무릎 관절증 등 근골격계 질환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지원액 기준 상위 10개 질환 중 6개가 척추·관절계 질환이었다.

추간판 장애만 65억원, 무릎 관절증은 64억원이 지급되는 등 중증질환보다 경증·만성질환이 더 많은 재정 지출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탈모, 성병 감염, 치아 임플란트 등 비교적 경미한 치료에도 재난적 의료비가 지급된 사례도 확인됐다. 제도 취지와는 달리 경증 환자 지원이 급격히 늘어난 셈이다.

올해 2000억원 돌파 전망
신청만 하면? 승인율 93%

경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가장 직접적 요인은 병원의 홍보다. 정형외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 등 외래 중심 병·의원을 중심으로 ‘재난적 의료비 지원 안내’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한 병원은 홈페이지에 “재난적 의료비로 의료비 지원 가능”이라는 문구를 넣어 치료비 부담이 큰 환자에게 제도를 안내하고 있다.

그동안 재난적 의료비는 환자가 스스로 제도를 알고 신청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병원이 먼저 지원금 신청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정부 지원 안내가 환자 유입에 도움이 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난적 의료비를 신청한 의료기관에서는 전체 의료비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자료를 보면 재난적 의료비 신청 기관의 의료비는 비신청 기관 대비 평균 61%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경증 환자 증가의 또 다른 핵심 요인은 인구구조의 변화다. 고령층 비중이 확대되면서 재난적 의료비 부담률 기준을 충족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은퇴 이후 소득이 크게 줄어드는 고령층은 동일한 의료비가 발생하더라도 소득 대비 의료비 비율이 빠르게 높아진다.

실제 중증 외 질환 지원액의 84.1%가 60세 이상에게 돌아갔다. 척추·관절·근골격계 질환은 고령층에서 발병률이 높고 비급여 항목 비중도 크기 때문에, 반복 치료와 검사만으로도 부담률 기준을 쉽게 넘게 되는 것이다. 고령층의 인구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원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예정돼있었던 셈이다.

심사 기준도 문제로 지적됐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재난적 의료비 신청 건수는 5만4734건으로, 이 가운데 5만735건이 승인돼 승인율이 92.7%에 달했다. “사실상 신청하면 거의 다 통과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높다. 이는 신청자의 상당수가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심사 과정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원액 폭증에는 의료비 자체의 상승도 영향을 미쳤다. 척추·관절 질환 중심의 비급여 진료비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상승해 왔다. MRI·주사치료·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항목의 단가가 높아지면서, 경증이라도 반복 치료가 쌓일 경우 본인부담 의료비가 빠르게 커진다.

이는 부담률 기준 충족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한번 지원되는 금액 자체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만든다. 중증환자 중심이던 시기보다 경증·만성 환자가 대거 유입된 현재의 구조에서 비급여 상승은 재정 부담을 더욱 크게 만드는 요소다.

아무나
퍼주기

이 같은 흐름은 제도가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유발한다. 재난적 의료비는 도입 당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액 치료비 때문에 경제적 위기에 놓인 중증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완 장치였다. 하지만 경증·만성질환 환자가 제도에 대거 유입되면서 고액 중증 중심으로 설계된 재정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 사실상 아무나 퍼주는 제도가 됐다”며 “현재 지원금 신청 폭증으로 지급이 지연되는 상황인데 나중에는 정작 필요한 사람이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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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