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지난 13일 치러진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 비행기는 조용히 우회했고, 직장인은 출근 시간을 늦췄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염원했다. 한편 똑같은 바람을 뒤로 하고, 교육 현장과 사교육계는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달 28일 ‘학원 교습 밤 12시 조례안’의 입법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서울시의회 별관 회의장. ‘오전 0시(자정)까지 학원 문을 열 수 있도록’ 요구하는 사교육계 관계자들의 외침에 현장은 한때 어수선해졌다. 발언대를 둘러싸고 고성과 갈채가 오갔다. 한 학원장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형평성을 운운하나”는 주장에 한숨 섞인 원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탁상공론
국민의힘 정지웅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0일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같은 달 28일 입법 예고했다. 2008년에 도입됐던 초·중·고 학생의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교습 시간제한을 고교생에 한해 24시로 늘리자는 게 골자다.
서울시의회 홈페이지 입법 예고 창 하단에는 퇴보하는 교육 제안이라는 등 비난 섞인 댓글이 쇄도했다. 잇따라 교육·시민단체들이 조례 개정안 규탄에 나섰다.
199개 기관과 단체가 참여한 ‘국민의힘의 학원 심야 교습 시간 연장 규탄 범시민행동’은 지난 10일 오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참석한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조례 개정안을 두고 “대한민국 아동·청소년이 겪는 경쟁 교육의 실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조례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40여명의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개정안 철폐 팻말을 들고 “교육 형평성 때문에 심야 교습 시간을 밤 12시로 연장한다는 발언은 궤변”이라며 오히려 형평성을 따진다면 현행인 오후 10시보다 이르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순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장은 “서울시의회가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을 보장한다면서 학생 인권 조례를 폐지했다”며 “이번 교육 시간 연장 조례 또한 학생들의 삶을 뒤로 하고 학원의 이익만을 챙기려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녹색당 이상현 공동대표는 “청소년들께 여쭤 보고, 동의를 구했냐”면서 “학습 시간은 학업 성취도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행 학원법은 시·도가 조례로 정하도록 돼있어 지역별로 각기 다르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강원·충남·경북 등 8곳은 오전 0시, 전남은 오후 11시50분, 부산·인천·전북 3곳은 오후 11시까지 교습이 가능하다. 반면 서울과 경기를 포함한 5곳은 오후 10시까지로 가장 이르다.
고집하는 서울시의회
허울뿐인 합의론, 왜?
서울 지역의 학원 교습 시간 연장은 2008년과 2016년 두 차례 추진됐으나 교육계의 의견이 엇갈려 무산됐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2016년, 지역별로 제각각인 학원 교습 시간을 오후 10시로 통일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난 11일엔 서울시의회가 주관하는 ‘서울교육의 형평성과 자율성, 함께 여는 교육의 미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서울시의회 별관 2동에 들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이 격앙된 표정을 하고 모여있었다. 개회사 이후 진행된 사진 촬영에서는 토론자가 마주하는 방면에 다수의 교육시민단체 측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토론회 발제를 김희수 전국보습교육협의회 회장이 진행한다고 전해지면서 시작도 전에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그대로 김 회장이 맡았다. 토론회는 ‘교육을 가로막는 밤 10시의 벽’이라는 제목을 가진 발표 자료와 함께 시작됐다.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이영택 원장은 ‘학원 심야 교습 시간 제한 조례가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 시간 및 수면 시간에 미친 영향’ 연구를 들어, 오후 10시로 교습 시간을 제한한 지역에서 오히려 학생 수면 시간이 줄어 당시 개정 취지와는 상반되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학원 측은 10시 제한 조례가 이미 한 차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받았고, 조례가 있다고 해서 수면 시간 감소 등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거듭 제시했다.
박명희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학원에 종사하는 대학원생들과 논의를 거치고, 논문과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지난 15년간의 10시 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교생의 사교육비와 사교육 참여 시간이 증가한 사실에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김오영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과장은 청소년 보호에 관련한 법안을 토대로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PC방과 찜질방, 노래방 등의 시설에서는 청소년 이용 시간을 10시까지로 국한하고 있는데, 학원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이 10시까지로 규제를 통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현실에서 현행 조례가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청소년 건강권 외면?
과로 경쟁 부추기기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극단적 선택 사망자 수는 지난 2015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기준 3배가량 늘었다. 통계청의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서울 고등학생(일반고 기준)의 사교육 참여율은 80.1%로, 전국 평균(70.7%)보다 9.4%p 높다. 또 교육부에 따르면 서울 지역 고교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98만8000원에 이른다(지난해 기준).
학원 관계자 B씨는 토론에서 “요즘 아이들 가운데 12시에 자는 아이는 없다. 학원이 아니라 스마트폰 때문”이라면서 교습 시간을 조정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제재하는 방안에 무게를 실었다. 이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제력과 형평성을 운운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규제가 결국 온라인 교육 배불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느냐”고 주장했다.
가지각색의 날 선 의견이 이어지며 본래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2시까지로 예정됐던 토론회는 30분을 넘겨 종료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정근식 교육감이 직접 학원 교습 12시 조례 개정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론은?
서울시의회와 학원업계는 “더 많은 학생이 학습하고, 학원이 운영되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교육시민단체와 청소년단체는 “사교육 시장을 키우고 경쟁을 심화시켜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는 조치”라며 교습 시간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의회는 내달 17일 학원 조례안을 상정 보류하거나 미상정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11대 서울시의회 내에서 해당 조례안을 처리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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