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박병영의 <손자병법>은 전쟁의 책을 넘어 싸움을 피하면서도 이기는 법, 즉 권력의 흐름과 인간의 시간을 읽는 법에 대한 정치의 책이다. 저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는 이미 구조를 설계한 자”라고 썼다. 정치에 이보다 더 명확한 조언은 없다.
정치학 박사인 박병영은 손자의 전쟁 철학을 현대 정치와 경영에 적용하면서 “형세(形勢)를 만드는 자가 결국 이긴다”고 해석했다. 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이며, 이기는 길은 정면충돌이 아니라 형세의 조율이라는 것이다.
명청대전의 서막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은 이 문장을 잘 새겨야 한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논란, 부산시당위원장 컷오프 파동, 그리고 정청래 대표의 100일 기자간담회 전격 취소까지, 최근 불거진 이 세 가지가 표면적으론 사소한 조율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이재명 대통령 체제와 정청래 대표의 당의 자율성을 둘러싼 긴장이 응축돼있다.
정 대표가 취임 100일 되던 지난 9일 “지금은 대통령의 시간”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지금은’이라는 말 속엔 “곧 구조의 시간이 온다”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즉 명청대전(이재명과 정청래 싸움)이 이미 시작됐다는 얘기다.
지금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문제는 싸움이 아니라, 시간의 분기점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권력의 시간에 서 있고, 정청래는 구조의 시간으로 향하고 있다. 필자는 이 갈등의 본질은 감정이 아니라 체제의 전환이며, 그 해법은 박병영의 <손자병법>이 가리키는 형세의 정치에 있다고 본다.
절반의 권력, 흔들리는 균형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28년 2월 반환점을 향하고 있다. 전반 2년6개월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정책과 개혁, 인사와 외교의 중심이 대통령실에 있다. 그런데 어느 정권이나 임기 반절인 2년6개월이 지나면 권력의 무게추는 자연스레 대통령실에서 여의도로 옮겨가게 돼있다.
임기 후반으로 가면 국정의 시간이 끝나고, 공천과 총선의 시간, 즉 정당의 시간이 도래한다. 이재명정부도 202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이 정 대표에게 집중된다면, 그에게 시간을 내줘야 한다. 이정부의 전반은 이 대통령의 시간이고, 나머지 후반은 정 대표의 시간이 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 국정의 리더라면, 정청래는 권력의 설계자다. 대통령은 명분으로, 당 대표는 시스템으로 정치를 움직인다.
명나라 황제가 자금성 안에서 천명(天命)을 논할 때, 만주의 청나라는 이미 장성을 넘어 권력의 새 질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치는 언제나 내부 균형이 흔들릴 때 변화를 시작한다. 우리가 명청대전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박병영은 <손자병법> 해설에서 “전쟁의 본질은 정면충돌이 아니라 형세의 운용이다. 싸움은 마지막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싸움이 아니라, 형세의 재설계다. 정 대표와 이 대통령의 관계를 대결이 아닌 구조로 읽어야 해법이 열린다.
명청, 문명의 교체가 남긴 법칙
역사는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닌 체제의 전환이다. 흥미롭게도 명나라와 청나라는 각각 276년씩 지속됐다. 혈통도 문화도 달랐지만, 역사의 시계는 두 왕조에 같은 시간을 허락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권력의 구조가 주기적으로 재편된다는 ‘권력의 순환 법칙’을 보여준 것이다.
명은 정의의 제국이었다. 천명을 받은 황제가 유교적 질서와 도덕 통치로 세상을 다스렸다. 과거제와 예법, 충성의 윤리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도덕은 제도를 앞질렀고, 명분은 현실을 가렸다. 부패와 내란, 왜구의 침입이 이어지며 명은 ‘이념의 피로’로 무너졌다.
청은 달랐다. 만주족은 유교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실용 행정을 강화했다. 광대한 영토를 다민족으로 통합하고, 효율적 통치구조를 만들었다. 명은 정의로 나라를 세웠고, 청은 제도로 나라를 유지했다. 결국 ‘이념의 제국’에서 ‘전략의 제국’으로 전환됐다.
박병영은 손자의 사상을 이렇게 해석한다. “승자는 형세를 만들고, 패자는 형세에 끌려간다.” 명은 정의의 이상을 붙잡았지만, 형세를 읽지 못했다. 청은 형세를 설계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념으로 민심을 얻을 수는 있지만, 형세를 만들지 못하면 권력은 유지되지 못한다.
이재명과 정청래, 현대의 명과 청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관계는 흔히 ‘친명 VS 비명’으로 단순화되지만, 실상은 이념과 구조, 정의와 전략의 문법이 충돌하는 전환기적 현상이다.
이 대통령은 ‘명나라형 리더’로 그의 언어는 정의, 원칙, 민심에 기반한다. 그는 “불의한 권력을 이기려면 정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검찰 권력과 맞서 싸우고, 불공정을 개혁하려는 그의 태도는 ‘정의의 정치’다. 그러나 명분은 때로 현실의 속도를 놓칠 수 있다.
정 대표는 ‘청나라형 전략가’다. 그는 감정보다 구조를, 이상보다 실행을 본다. “당이 살아야 개혁이 가능하다”는 그의 표현은 실리와 시스템 그 자체로, 싸움보다 설계를 택한다. 청나라가 유교의 외형을 유지하며 효율의 제국을 만든 것처럼, 정 대표는 개혁의 이상을 제도의 언어로 번역한다.
박병영의 해석에 따르면, 장수는 싸움보다 형세를 다스려야 하는데, 그 이유로 형세를 얻는 자는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긴 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명분의 지도자고, 정 대표는 형세의 설계자다. 이 둘이 충돌하면 체제가 분열하지만, 화합하면 조직은 강화된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하기 위해선 싸움이 아닌 형세의 조율을 잘해야 한다.
권력은 나누는 순간 약해져
정치는 때로 권력을 나눠야 지속된다고 말하지만, 역사는 그 반대를 증명한다. 명나라가 문신과 환관에게 권력을 분산시킨 순간 붕괴가 시작됐고, 청나라가 지방 군벌에게 자율권을 나눠준 뒤 신해혁명이 폭발했다. 결국 권력은 나누는 순간 약해진다.
이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대통령과 당이 ‘균형’을 말하는 순간, 국민은 그 균형 뒤의 긴장을 읽는다. 공존은 이상이지만, 현실의 균형은 늘 불안하다. 이념이 구조를 압도하면 이상이 무너지고, 구조가 이념을 삼키면 영혼이 사라진다. 지금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원팀으로 이상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 국민은 명청대전을 체감하고 있다.
박병영은 손자의 형세론을 인용하며 말한다. “형(形)은 드러내지 말고, 세(勢)는 은폐하지 말라.” 이 대통령의 명분이 형이라면, 정 대표의 구조는 세다. 형과 세가 조화를 이루면 정치의 구도는 안정되지만, 어긋나면 권력의 동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필자는 지금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그 경계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명과 청이 각각 276년씩 지속된 것은 역사의 반복 법칙이다. 권력의 시간은 절반을 지나면 균형을 잃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다. 이정부의 5년도 마찬가지다. 첫 2년6개월은 명(이 대통령)의 시간으로 이념과 정의의 시기가 되지만, 나머지 2년 6개월은 청(정 대표)의 시간으로 조직과 실리의 시기가 된다.
2028년 총선은 그 두 시간이 교차하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이 대통령의 명(明)이 빛을 비출 것이냐, 정 대표의 청(淸)이 빛을 담을 그릇이 될 것이냐, 그 선택이야말로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운명을 가를 것이다.
싸움의 끝은 설계의 시작
박병영은 <손자병법>을 해설하며 “전쟁은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설계로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해석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갈등을 풀 해법은 싸움이 아니라 설계다.
정치는 싸움이 아닌 설계의 예술이다. 명은 싸워서 졌고, 청은 설계해서 이겼다. 이 대통령이 명의 정의로 이상을 세우고, 정 대표가 청의 현실로 틀을 만든다면,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새로운 정치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는 피로 완성되지 않으며, 형세의 재설계로 완성된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지금 읽어야 할 책은 박병영의 <손자병법>이다.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형세의 운용과 시간의 배분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명(明)이 빛을 잃지 않으려면, 정 대표의 청(淸)이 그 빛을 담을 그릇이 돼야 한다. 명청대전은 과거의 왕조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한국 정치의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 앞에서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싸우려 하는가, 아니면 설계할 준비가 됐는가?
필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박병영의 <손자병법>에 답이 있다.
명(1368-1644)과 청(1636-1912)의 재상들이 <손자병법>을 전쟁의 책으로 삼았듯 명청대전 당사자인 대통령실과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인들도 <손자병법>을 다시 읽어야 한다. 싸움을 피하면서도 이기는 법, 그것이야말로 작금의 정치가 배워야 할 지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