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해당 개정안에는 검찰청 폐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분리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 담겼다. 1948년 8월 정부 수립과 함께 설치됐던 검찰청은 7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했다. 기존 기재부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하고, 환경부를 기후에너지부로, 여성가족부는 성평등가족부로 각각 개편한다.

정부조직법은 국가 행정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법률이다. 각 부처의 기능과 권한을 나누고, 정책 집행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장치기도 하다. 그런 만큼 부처 이름을 바꾸거나 부처 수를 늘리고 줄이는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름만
바꾼다고…
곧 국가의 운영 철학, 권력의 배분,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정책의 방향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은 표면적으로는 효율성을 내세우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조직법은 본질적으로 장기적인 국가 운영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부조직법 개편은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이벤트’로 변질돼왔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기존 부처의 명칭을 바꾸고, 기능을 이관하며, 심지어 신설 부처를 만드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정권의 철학이나 국정 기조에 따라 자의적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번 개편안 역시 정책의 지속성보다는 현 정부가 내세운 구호와 상징에 맞추어진 흔적이 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컨대 특정 부처의 기능을 통합하거나 분리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나 장기적 관점의 정책 평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행정 효율성보다는 정치적 지지층에 어필하거나, 단기적으로 ‘일 잘하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은 결국 정책 집행의 혼란과 국민 불신을 키울 뿐이다.
정부조직 개편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으면 오히려 행정의 비효율성이 심화된다. 특정 기능을 이관하거나 신설하는 과정에서 기존 부처와의 역할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행정 체계는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문제를 여러 차례 겪어왔다.
검찰청 폐지, 기재부 분리 골자
부실 설계 시행정 비효율성 심화
예컨대 코로나19 정국 당시 감염병 위기 대응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그리고 총리실과 행정안전부 간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초기 대응에 혼선을 낳았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편 역시 같은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부처의 이름을 바꾸고, 기능을 떼어내 다른 부처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행정의 시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권한을 지키려는 관료 집단과 새로운 권한을 확보하려는 부처 간의 다툼이 심화될 수 있다.
이는 곧 정책 실행 속도와 효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은 단순히 법률 몇 조항을 고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부처 명칭 변경, 사무실 재배치, 조직문화 재편, 인사 시스템 조정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이 같은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결여돼있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개편으로 인한 순이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효과가 언제 나타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를 보면, 효율성 제고라는 추상적 목표만 제시될 뿐 구체적 수치나 평가 지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곧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직 유지
권한 확대
게다가 국민 눈높이에서도 ‘정책 성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부처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국민의 삶이 당장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또 행정조직이 비대해지고 복잡해질수록 책임 소재는 더 모호해진다. 정책 실패의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워지고, 부처 간 떠넘기기가 반복된다.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질수록 관료주의가 강화되는 것도 문제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조직 유지와 권한 확대에 집중하는 관료 집단의 속성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결국 국민이 체감하는 행정 서비스의 질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변화 과정에서의 불안정성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선진국의 정부조직 개편은 일반적으로 ‘큰 틀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조정’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부처는 수십 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며, 새로운 정책 과제가 발생하면 독립위원회나 특별기구를 통해 대응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독일 역시 장기적인 행정 안정성을 중시해 조직 개편은 최소한에 그친다.
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대적인 개편을 반복한다. 이는 행정의 연속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 불필요한 혼란과 저항을 낳는다.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더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공무원 혼란과 저항
국민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더
비판은 대안을 동반해야 의미를 갖는다. 정부조직법 개편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면, 다음과 같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는 ‘국민 중심의 효율성’이 기준이 돼야 한다. 정치적 명분이 아니라 국민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정책 집행 속도와 품질이 개선되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는 ‘장기적 비전과 연속성’이 담보되는지의 여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처가 해체되고 신설되는 방식이 아니라, 안정적인 틀 속에서 필요한 조정을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셋째로는 ‘사회적 합의와 투명한 검증’이다. 전문가, 시민단체, 학계, 그리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조직 개편의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책임성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질수록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개편과 동시에 정책 실패에 대한 명확한 책임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조직법 개편은 단순히 행정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이는 곧 국가 운영의 철학을 재정립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개편은 정치적 이해와 단기적 성과에 치우쳐 있으며, 장기적 효율성이나 국민 삶의 질 개선이라는 본질적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막대한 비용
책임성 약화
지금은 부처 간 중복과 갈등, 막대한 비용과 낮은 효과, 책임성 약화라는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조직법 개편은 서두를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와 충분한 검증 속에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행정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개편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조직 개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진정한 행정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