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밍업 끝낸’ 이재명 한가위 플랜

신발끈 묶었는데…손발 안 맞는 3인4각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2·3 내란 사태로 전 정부가 물러선 뒤 지금까지 한국 정치는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재명정부에 있어 이번 추석은 국정 운영 정상화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아직 여야 협치가 까마득한 가운데 정부는 검찰개혁, 부처 개편, 민생·경제를 아우르는 과제를 떠안았다.

검찰개혁이 급물살을 탔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와 기소 기능을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 검찰개혁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숙원이다. 민주당이 띄우고 이재명정부가 이를 받으면서 이번에야말로 개혁이 완수될 지 이목이 쏠린다.

제자리
빙빙∼

지난 22일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 전체회의서 범여권의 주도로 통과했다. 그동안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추석 귀향길 뉴스에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드리겠다”고 거듭 강조한 만큼 ‘개혁은 타이밍’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시절 정치·사법 분야를 정책 순위 2번으로 지정했다. 검찰개혁의 핵심인 수사·기소 분리 및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통제 강화를 비롯해 ▲검사 징계 파면 및 온라인 재판 제도 도입 ▲대법관 정원 확대 등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 실질적 보장 ▲국민참여재판 및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 ▲국민의 사법 서비스 접근성 제고 등 폭 넓은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추석을 앞두고 정부는 본격적으로 검찰개혁 채비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을 정부가 주도하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아주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전문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를 “검찰의 최대 피해자”라고 칭하면서도 “개혁 과정에서 여야·피해자·검찰 의견도 다 들어서 논쟁을 통해 문제를 다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석하고 제도도 만들고 공간을 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며 “그래도 1년 안에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 기소의 분리 중요성도 거듭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검찰이 사고를 엄청나게 쳐서 수사권을 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는데 검찰에서 내부 분리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수사하는 검사와 기소하는 검사의 칸을 치는 것이 최초 논의 아닌가. (그런데) 요즘 검사는 사건 수사에 손도 대지 않게 됐다. 하다 보니 거기까지 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구체적으로 수사가 부실하게 되지 않도록, 엉뚱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도 나쁜 짓이지만 죄 지은 사람이 처벌받지 않고 큰소리 떵떵 치게 방치하는 것도 문제”라며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면 아주 치밀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적절한 시점이 되면 입장을 밝히겠다는 방침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정례 브리핑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논의됐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 또는 법안이 추진 중이기 때문에 보조를 맞추는 차원에서 의견 낼 상황이 있으면 내는 것”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검찰개혁’ 기어 잡고 정부여당 진땀
“추석 연휴에 검찰청 폐지” 가능성은?

다만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검찰개혁 법안은 원칙적으로 지지하나 경찰의 불송치 전횡을 견제할 장치가 없어 피해자 권익 침해가 우려된다며 정기국회에서 숙의를 거쳐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민주당이 추석 전을 검찰개혁 적기로 못을 박은 만큼 빠르게 처리해야 하지만 섣불리 조직을 해체하기에는 정부로서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검찰개혁 입법청문회가 열렸지만 ‘추나(추미애-나경원) 대전’에 묻히는 등 진흙탕 싸움으로 끝났다.

검찰개혁이 더뎌질 기미가 보이자 민주당 지지층도 들끓기 시작했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을 주장하는 당과 신중한 개혁에 무게를 실은 정부가 충돌하면서 ‘엇박자’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추석 전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던 정 대표의 발언은 “검찰개혁을 차질 없이 완수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우선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검찰개혁 시기가 추석 이후에도 차일피일 미뤄진다면 강성 지지층의 원망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청 외에도 곳곳에서 부처 개편안 소식이 들려온다. 이정부의 국정철학이 담긴 정부 개편안 청사진이 하나둘 공개되면서 추석 이후 본격적인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란 해석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전체 회의를 통과하면서 현행 19부 3처 20청의 정부 조직은 19부 6처 19청 6위원회로 변경됐다.

대선 정국 당시 민주당 관계자들은 입 모아 당시 이재명 후보가 당 대표이던 때부터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를 눈여겨봤다고 귀띔했다. 예년도 예산을 짜는 기재부가 돈줄을 쥐고 각 부처를 군림하는 등 권력이 비대하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예고한 대로 이정부는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재경부)로 분리하는 등 대대적인 손질에 들어섰다. 먼저 기재부의 명칭은 2008년 사용했던 재정경제부로 환원되며 가장 중요한 예산 기능은 국무총리실 산하의 ‘기획예산처’로 이관된다.

쪼개고
붙이고

국무위원격인 기획예산처장은 예산 편성을 비롯한 재정 정책과 관리와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 수립 등을 담당할 전망이다.

이밖에도 ▲기후환경에너지부 설치 ▲방송통신위원회 폐지 및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신설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 및 개편 ▲과학기술부총리 부활 등의 내용이 정부 조직 개편안에 포함됐다.

여야의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힘은 “행정조직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이라고 수위 높게 비판한 반면, 민주당은 “빠르고 효율적인 개편”이라고 자신했다. 앞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150일, 약 5개월이 지나서야 정부 개편 방안을 확정한 바 있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정부 효율성을 높이고 권력 집중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합의 없는 졸속 개편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경제 부처 조직 개편안이 공개되던 당시 금감원 직원들은 “금융감독기구를 재경부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고 반발해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다.

운을 띄운 이상 정부는 안정적인 개편을 추진하는 동시에 정부 관계자와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난제에 맞닥뜨렸다.

민심과 가장 맞닿은 경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정치권에서는 추석 이후의 지지율 변동을 주목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취임 100일이 겨우 지났지만 국민의 기대 속 출범한 만큼 해당 지지율을 이정부의 성공 바로미터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추석을 약 일주일 앞둔 지난 22일부터 발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효과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신용·체크카드로 지급된 1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금액 6조177억원의 88.1%(5조2991억원)가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꼬투리
잡아야…

업종별로는 음식점이 40.3%로 가장 높았으며 ▲마트·식료품 15.9% ▲편의점 9.5% ▲병원·약국 9.1% 등으로 나타났다. 1차 소비쿠폰으로 숨통을 튼 소상공인도 2차 소비쿠폰 지급 시기와 연휴가 맞물린 추석 대목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추석을 앞두고 물가 안정도 지시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서울 가락시장과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아 농축산물 공급 상황과 가격 점검에 나섰으며, 행정안전부는 내달 9일까지 추석 물가 안정 관리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석 대목으로 지지율 상승을 노릴 수 있지만 장기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쟁과 민생을 분리하겠다는 합의 하에 꾸려진 여야 민생경제협의체가 몇 주째 공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협의체는 지난 8일,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난 자리서 구성됐다. 이날 여야 대표가 처음으로 악수를 하는 등 모처럼 훈풍이 부나 싶었지만 채 하루도 가지 못하면서 협의체 역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당초 여야는 지난 19일 첫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국민의힘 측이 이를 미루면서 무기한 순연됐다. 민주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자 이에 반발한 국민의힘이 등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추석 이후 국정감사 등 굵직한 이벤트가 예정된 만큼 앞으로도 여야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민생경제협의체 가동 시기가 불투명해지면서 정부의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모든 선택이 정부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모든 정책을 꼬집으며 발목 잡기에 나섰다. 이는 정부여당과 마찬가지로 추석 대목을 앞두고 이슈 선점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정부의 조직 개편안을 놓고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부처의 통폐합을 쉽게 생각할 뿐 더러 세종 이전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 정국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다.

부처 개편으로 전 정부 갈아엎고
소비쿠폰으로 추석 대목 노린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조직의 유기적 기능은 살피지 않고 오로지 정치적 목적으로 쪼개고 붙이는 식의 조직 개편은 결과적으로 행정부 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가 크다”며 “조선시대에도 당파가 있었고 군사정권 시절에도 야당이 있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야당을 말살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유를 없애고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박멸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야당에서는 “여당이 모든 결정을 너무 성급하게 처리하는 게 아니냐”는 하나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15일에 발의됐고 17일에 행안위에 상정됐는데, 오는 25일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야당을 배제한 일방적 처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수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휘몰아치듯 일처리를 한다”며 “오직 이 대통령 한 명을 위해 당을 불사르고 있다. 그런 정당이랑 협치를 논하자니 이쪽(국민의힘)도 얼굴을 마주보기가 영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힘 내 사기가 많이 꺾인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니 다같이 궤멸하자는 소리 밖에 더 되겠나? 보는 눈(지지층)이 있으니 뭐라도 한마디씩 보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국민의힘은 최근 민주당이 주장한 배임죄 폐지를 ‘이재명 구하기’라고 규정하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를 지키기 위해 배임죄 폐지를 결단했다는 게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을 하나로 묶어 표적으로 삼는 등 보수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 추진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과 대장동·백현동 비리, 성남 FC 사건 등 배임죄로 재판을 받았던 이 대통령의 면소 판결을 받으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지난 상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이사 충실 의무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해 개인 투자자들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는데, 배임죄 폐지는 충실 의무를 면제해주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상법 개정 취지를 정면으로 뒤엎는 자기모순”이라고도 지적했다.

이처럼 여야가 내란 프레임을 놓고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추석 이후 정국이 국정감사 모드로 돌입하면 오히려 민주당이 반발 양보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번 국정감사가 ‘민주당발 전 정부 청산’ 난타전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취지에 맞게 감사를 중점으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어쩌면
폭풍전야?

최근 민주당 내에서 ‘책임 있는 여권의 모습’을 부각해야 한다는 기류가 퍼지면서 무분별한 증인 세우기 관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 위주로 증인 채택을 하되 민생, 내란 청산 등 다방면에서 송곳 질문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국정감사 기조는 민생경제, 청산, 개혁, 국민주권”이라며 “국민주권 국감은 국감을 통해 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효능감과 성과를 도출하는 그런 내용으로 국정감사를 임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 대통령 첫 추석 선물, 무엇이 담겼나?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추석을 맞아 국민통합과 민생 회복을 기원하며 사회 각계각층에 추석 선물을 전달했다.

선물은 이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탁상시계와 8도(道) 수산물, 쌀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시계는 ‘대통령의 1시간은 온 국민의 5200만 시간과 같다’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선물 제공 대상은 각계 주요 인사는 물론 호국영웅과 재난·재해 피해 유족, 사회적 배려 계층 등이다.

대통령실은 “특히 올해는 노동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다 안타깝게 생을 마친 산업재해 희생자 유가족에게도 선물을 전달한다”며 “국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정부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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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