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요즘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배달거지’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곤 한다. 배달거지는 악의적으로 음식 환불을 요구하며 업주를 괴롭히는 소비자를 빗댄 표현이다.
배달 플랫폼의 편리함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일부 소비자들이 악의적으로 환불을 요구하거나 폭언을 퍼붓는 행위가 업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해당 문제로 인해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지난 20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게재된 ‘자영업자분들 배달거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을 통해 이 같은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해당 글 작성자 A씨는 “지방에서 프랜차이즈 음식 포장·배달 전문점을 운영하는 30대 자영업자”라며 “오픈한 지 1년 다 돼가는 새내기 사장”이라고 운을 뗐다.
A씨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이날 두시께 평소와 다름없이 배달 앱으로 들어온 주문이었다. 그는 정상적으로 조리해 지연 없이 배달까지 완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됐다. 음식에서 ‘돼지 누린내가 난다’ ‘상한 것 같다’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한 것이다.
혹시나 불량 식재료가 나갔을까 우려된 그는 직접 음식을 회수했다. 그러나 제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함께 제공된 밑반찬조차 대부분 비워진 상태였다.
A씨는 “환불이 어렵다고 설명하자, 고객은 돌연 목소리를 바꾸며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손이 덜덜 떨리더라”라며 “문제가 없는데 왜 환불을 해줘야 하는지,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회수해가라고 해서 가져왔더니 도둑년 취급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고객이 A씨의 개인 휴대 전화로 보낸 문자 내용이다.
문자에는 ‘장사 그딴 식으로 하지 마’ ‘어디 쓰레기 음식을 가져다주고 니네가 먹는 거 내 앞에서 보여줬냐?’ ‘당장 환불해달라’ ‘X둥이가 마비 상태냐, 콧구멍이 막혔냐’ ‘도둑으로 몰리기 싫으면 집앞에 (새 음식) 당장 가져다 놓아라’ 등의 모욕적인 내용이 담겼다.
심지어 해당 고객은 A씨에게 ‘오늘 일 후회할 것’이라며 위협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극심한 불안을 느낀 A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해결해줄 게 없다’는 답변이었다고 한다. 배달 플랫폼의 환불 처리 방식도 A씨를 더욱 좌절케 했다. 그는 해당 배달 앱으로부터 ‘고객 요청으로 인한 취소’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리뷰 테러가 두렵고, 플랫폼이 고객 손을 들어주니 ‘매번 죄송하다’며 머리 숙이며 장사할 수밖에 없다”며 “사람이 무서워지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주요 배달 플랫폼들은 환불·취소 과정에서 소비자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배달 플랫폼 B사는 약관 개정을 통해, 상품 누락·이물질·부패 등 객관적인 문제가 제기되면 업주의 동의 없이도 주문을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C사 역시 배송 완료 후에도 고객이 ‘음식이 식었다’ ‘냄새가 난다’고 주장하면 환불이 이뤄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업주들 사이에선 객관적 문제의 기준이 모호하고, 허위·과장된 불만에도 ‘묻지 마 환불’이 승인돼 사실상 배달 플랫폼들이 ‘블랙컨슈머’를 양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환불 시스템의 문제점은 비용 부담 구조에서도 드러나는데, 환불 비용은 일단 배달 플랫폼이 부담하지만, 음식의 상태 불량 등 환불의 원인이 업주 책임으로 귀결될 경우 배달비와 수수료는 고스란히 업주가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취소된 음식 제작에 들어간 시간과 비용, 인건비 역시 고스란히 업주의 몫이다.
물론, 점주는 고객센터를 통해 손실 보상을 신청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정책으로 실제 피해를 온전히 만회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해당 플랫폼을 차단할 수 없다. 프랜차이즈 본사 방침상 배달 앱을 통해 주문은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A씨의 경우도 그렇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영세 자영업자도 배달 플랫폼을 끊고 영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는 현실 속에서, 플랫폼을 끊으면 고객 유입이 사실상 차단돼 매출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소비자학과 교수는 “플랫폼이 고객 보호뿐 아니라 선량한 업주 보호에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반복적인 악성 환불 요구에 대해 계정 제한이나 증빙 강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22일 <일요시사>는 A씨에게 이후 해당 고객으로부터 추가적인 연락이나 위협이 있었는지, 배달 플랫폼 후속 조치에 대한 자세한 내용 등을 질의하기 위해 취재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당 사연을 접한 보배 회원들은 “음식이 이상하면 안 먹고 전화하고 회수 요청하면 되는데 먹었다니” “자영업자가 늙어가고 있다” “블랙리스트 못 만드냐” “배달 플랫폼은 차단 기능 없냐, 저런 일 겪고 장사를 어떻게 하느냐”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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