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사업에 낀 김건희 측근들 막전막후

“돈만 되면 무속·브로커 꼬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수차례 원조를 진행했다. 이 계획은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전부터 언급했던 내용이다. 실제 윤석열정부 초부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외경제협력기금 지원이 시작됐다. 용산 참모들과 주무 부처 등은 자금 회수 불투명을 우려했다. 지원이 강행된 내막에는 ‘김건희의 입김’이 존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일가. 이른바 김건희 일가의 비리에는 사이비 종교, 무속이 자주 등장한다. 해외 원조 사업에도 개입한 의혹은 최근 드러났다. 공적개발원조(ODA)에 통일교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무 부처 안팎에서는 시작부터 수상했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시작부터
의심 눈초리

윤석열정부는 ODA 공여국 세계 10위를 약속했다.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 간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는 목표였다. EDCF는 개발도상국에 저리로 장기간 자금을 빌려주는 원조 제도다. 지원금을 받은 개발도상국은 항구, 다리, 도로, 댐, 병원 등 시설을 짓게 된다.

이 같은 지원은 국가 간 약속이자 사업인 만큼 철저한 심의가 요구된다.

EDCF 운용위원회는 대외경제협력기금법 제7조를 바탕으로 지원 효율성과 한국과의 경제 교류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평가한다. 하지만 윤정부의 EDCF 사업은 심의 과정 자체가 불공정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대표적으로 캄보디아와 우크라이나 EDCF는 이권 청탁, 주가조작 의혹 등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이 캄보디아에 제공한 EDCF 차관은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 수사로 불공정성이 알려졌다. 캄보디아 EDCF 사업이 통일교의 로비로 인한 특혜성 지원이라는 혐의가 제기된 것이다.

통일교 2인자로 알려졌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은 지난 2022년 3월22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소개로 당선자 신분이던 윤 전 대통령을 만나 통일교가 메콩강 핵심 부지에 종교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공적원조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7월 6000만원대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2개 등을 김건희씨에게 전달했다는 게 특검의 수사 결과다. 실제 윤정부는 캄보디아 EDCF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약 9730억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30억달러(2022~2030년)로 증액했다.

윤정부 때 EDCF 사업을 수주했거나 수주를 시도했던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희림)도 특혜 논란의 주인공이다. 희림은 김씨가 대표인 코바나컨텐츠의 전시회를 후원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때 설계·감리를 맡았던 만큼 정권과 유착관계가 깊은 것으로 의심받은 기업이다.

윤 전 본부장이 통일교와 김씨를 연결한 것으로 알려진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메시지에 “희림 대표도 같이 한번 뵙겠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우크라이나·캄보디아 사업 불투명한데도 추진
정부 논의 전 주가조작범·사이비 종교인 설쳐

<한겨레21> 단독 보도에 따르면 희림은 EDCF로 지원한 캄보디아 국립의과대학 부속병원 건립 사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참여 시점은 2021년이다.

희림은 윤정부에서 2023년 7월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컨벤션센터 건립 사업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잔지바르에 60㏊ 규모의 기업 회의·관광·컨벤션·전시 단지를 조성한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희림이 탄자니아와 이 사업을 약속하고 2년이 지난 뒤 EDCF 지원이 논의된다.

수출입은행은 이 사업에 EDCF 지원을 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지난 7월31일 발주했다.

또 희림은 2022년 케냐 나이로비 지능형 교통망 구축 및 교차로 개선 사업과 같은 해 우즈베키스탄 화학 연구개발(R&D) 센터 건립 사업에 컨설턴트 역할로 참여했다. 2023년 탄자니아 잔지바르 빙구니 병원 및 훈련센터 사업, 지난해에는 모잠비크 베이라 및 펨바 국제공항 현대화 사업 등의 타당성 조사 용역을 수주했다.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EDCF 지원도 주가조작의 뇌관이 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2023년 윤정부는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키이우 교통 마스터플랜 ▲우만시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 ▲보리스필 공항 현대화 ▲부차시 하수처리시설 ▲카호우카 댐 재건 지원 ▲철도 노선 고속화(키이우~폴란드 등) 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김씨 주식 계좌 관리인이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2023년 5월14일, 해병대 예비역 단체 대화방인 ‘멋쟁해병’에 “삼부 체크하고”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틀 뒤 윤석열 부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배우자와 만났다. 이때부터 웰바이오텍 주가가 뛰기 시작했다.

통일교 개입
동남아 지원

이어진 윤정부의 EDCF 논의는 지속해서 관련 주가 상승에 호재로 작용한다. 2023년 5월17일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과 만나 EDCF 추가 지원을 약속하는 방안에 가서명했다.

같은 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삼부토건 인사와 함께 폴란드에 가서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참석했다. 삼부토건과 웰바이오텍 주가는 이 시기에 상승했다.

윤정부는 지난해 4월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에 21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약정도 했다. 약 3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이 차관 협정 직전인 4월9일 삼부토건은 우크라이나 건설사와 우크라이나 내 주택사업 협력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역시 발표 당일 주가가 17%가량 올랐다.

특검팀은 지난 10일 도주했던 이기훈 삼부토건 부회장(겸 웰바이오텍 회장)을 검거했다. 이 부회장이 이끈 웰바이오텍은 삼부토건과 함께 2023년 5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할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여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재건주로 묶여 주가가 급등하던 무렵 전환사채(CB) 발행·매각으로 투자자들이 약 4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와 공조해 오후 6시14분께 이 부회장을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7월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한 지 55일 만이다. 그는 차량으로 압송돼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다. 이 부회장은 2023년 5∼9월 삼부토건 주가조작에 가담해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자본시장법)를 받는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부토건 측은 2023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을 계기로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업무협약(MOU)을 맺었다는 보도자료를 뿌려 재건사업을 추진할 것처럼 투자자를 속였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주가조작과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재건주로 분류된 삼부토건은 2023년 5월 1000원대였던 주가가 2개월 뒤 장중 5500원까지 급등했다.

특검팀은 7월14일 이 부회장과 함께 삼부토건 이일준 회장, 이응근 전 대표, 조성옥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회장과 이 전 대표의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다만 조 전 회장에 대해선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기각했다. 이 회장과 이 전 대표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조 회장은 추가 수사를 받고 있다.

주가조작의 기획자이자 주범으로 지목된 이 부회장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여태 잠적해 왔다. 그가 밀항을 시도한다는 정보도 나돈 바 있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 조사를 토대로 삼부토건 주가조작과 김씨의 연관성을 규명해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의 계좌 관리를 맡기도 한 그는 삼부토건 측과 김씨 간 연결고리로 지목됐다. 하지만 특검팀은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이 전 대표를 별도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만 재판에 넘겼다.

필리핀 지원은 기획재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 의원의 압력으로 재개됐다. 필리핀 재무부는 2023년 11월 한국 정부에 EDCF 차관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필리핀 전역에 산재한 350곳에 모듈형 교량을 짓는 5억1000만달러(약 7100억원) 규모의 건설 사업인데, 필리핀 정부는 이 가운데 4억3900만달러(약 6117억원)의 차관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이 사업은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이름이 들어갔을 정도로 필리핀 정부에 절실한 사업이었다. 필리핀 농촌 지역 350곳에 강철 모듈형 교량을 건설해 농민과 농산물이 이동할 수 있는 농로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2028년까지 루손섬에 210개, 비사야스섬에 88개, 민다나오섬에 53개의 다리를 놓는다는 계획이다.

기재부, 부실·부패 가능성에 필리핀 "지원 불가" 결론
권성동, 최상목에 압력 행사해 판단 여러 번 뒤집어

필리핀 정부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차관 신청서를 한국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차관을 신청하고 한 달 뒤인 2023년 12월 직접 농업개혁부 장관과 차관을 한국에 보냈다. 이들은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와 면담하고, 같은 달 7일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과 EDCF 기금을 운용하는 수출입은행 관계자도 면담했다.

이 사업에는 필리핀 LCS그룹이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기재부는 필리핀의 요청을 받고 해당 사업의 EDCF 지원 여부를 수개월 동안 심의했으나 참여하려는 기업이 없었다. 기재부는 사업 성공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 등으로 2024년 2월 “EDCF 지원이 곤란하다”고 결론 냈다. 특히 기재부가 사업 지원을 거절한 결정적인 이유는 부실·부패 가능성 때문이다.

해당 사업에 현지 컨설턴트로 참여한 필리핀 현지 기업 A사는 과거 비슷한 교량 건설사업에서 부실공사를 했고 부정부패 의혹이 있었다. 이 회사는 1996년 200개 교량을 설치하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고가 납품 논란을 일으켰고, 도로와 연결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교량을 설치하는 등 부실공사 문제로 말썽이 됐다.

그러나 권 의원은 당시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게 “지원을 다시 검토해달라”며 “필리핀 농촌 모듈형 교량 사업에 EDCF를 지원하면, 그 대가로 필리핀 정부로부터 니켈 광산 채굴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에 참여하려는 국내 기업이 별로 없다는 점과 관련해서는 권 의원이 직접 “대우건설과 삼부토건 등이 참여 의향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고 한다.

권 의원의 압박에 결국 EDCF 기금을 운용하는 수출입은행의 필리핀 사무소가 5월 필리핀 농업개혁부 차관과 면담을 했다. 필리핀은 이 사업이 필리핀 정부의 최우선 사업이며, 권 의원이 언급한 대우건설이 참여 의사를 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선정한 사업 대상지 350곳은 엄격한 검토를 거쳐 선정한 곳이라 사업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수출입은행이 재확인한 결과 대우건설은 사업지가 너무 많아 관리 측면에서 사업 참여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우려에도
압박·강행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해당 사업에 대해 즉시 절차를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다행스러운 점은 사업이 아직 착수되지 않은 단계여서 대외경제협력기금 지원 등의 사업비는 지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자그마치 7000억원 규모의 혈세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고, 부실과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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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