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수양딸 사기사건 풀스토리

탈북자 돕자더니…야금야금 30억 ‘꿀꺽’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 김모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미군기지 내 투자 사업을 빌미로 지인들에게 투자금을 받은 후 사업을 무기한 지연시키는 등 총 30억대의 사기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찰조사에서 드러난 피해금일 뿐 실제로는 100억대에 이른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10일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2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그의 얼굴에 먹칠한 수양딸 김모씨의 뻔뻔한 사기사건이 드러났다. 김씨는 2009년부터 지인 윤모씨와 합심해 3년간 개인 사업가 3명에게 8차례 걸쳐 총 3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받은 후 사업을 무기한 지연시키는 사기행각을 벌였다. 피해자 가운데 1명은 투자자 7∼8명이 100억대의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인 끌어들여
계획적 사기행각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황 전 비서의 생존 당시 피해자 차모씨 등 3명으로부터 각각 21억원·5억원·6억원을 가로챘다. 김씨는 재력가 3명에게 용산 미군기지 내 육류납품, 고철처리, 매점운영 등 각종 용역 사업에 투자할 것을 권유한데 이어 미국으로부터 미군기지 내 100여 개에 달하는 거대 수익사업을 탈북자 사업을 위해 위탁받았다며 투자를 유도했다.

투자자금 횡령을 목적으로 피해자들을 꾀어내기 위해 언급한 녹취록을 피해자들 중 1명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기행각에 대한 증거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김씨가 황 전 비서의 수양딸이라는 점과 미 8군 중장 비서를 사칭한 모 중년여성이 사업을 보증하자 신뢰를 갖고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3명 가운데 2명은 과거 황 전 비서의 강연을 듣고 줄곧 존경심을 가졌던 사업가들이었고, 나머지 1명은 ‘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의 직원이 소개한 사람이었다. 김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재력가 3명은 김씨의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은 후 마음 놓고 투자했지만 김씨 등의 사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고 투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미군부대에 찾아가 사업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씨 일행의 계획적인 사기행각이 탄로 났다.


미군 사업 빌미로 투자금 32억원 가로챈 혐의
투자자 100억원 피해 주장…수사 확대 불가피

경찰은 이번 사건을 황 전 비서의 대외적 신뢰와 지명도를 이용,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운 집단 사기극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황장엽이란 이름만 보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 황 전 비서가 생전에 이 사업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미 8군 중장 비서를 사칭 했던 중년여성도 미 육군 범죄수사대 조사 결과 미군 부대에서 일한 적도 없는 여성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의 투자금은 김씨 아들의 법무법인 계좌와 미 8군 중장 비서를 사칭한 공범의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항간에서는 김씨가 회사를 아들 명의로 신청한 것은 엄연히 탈북자를 위한 사업인데 황장엽 수양딸이 직접 사업을 하면 외부에서 좋지 않은 눈초리로 보는 게 뻔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공범 윤씨는 김씨와 10년 지기로 알려져 있으며 김씨의 사건이 보도되기 전 이미 어디론가 잠적한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며 단지 지연되고 있을 뿐 사기는 아니다”라며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의 해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경찰의 지속된 추궁 끝에 김씨가 실체 불분명한 유령사업을 진행했던 사실이 낱낱이 드러난 것. 김씨의 얄팍한 변명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처럼 날아가 버렸다.

결국 김씨는 지난 17일 차씨 등 3명에게 투자를 권유, 3년간 30여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서울남부지법 박강준 영장전담판사는 “혐의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김씨는 누구?
신분 설왕설래

그렇다면 김씨는 누구일까.
김씨는 1997년 황 전 비서의 망명을 중개했다. 이후 황 전 비서가 별세한 2010년 10월까지 무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황 전 비서의 곁을 지킨 유일한 법적 가족이다. 워낙 베일에 싸여진 인물이라 항간에서는 김씨를 두고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의 여동생이다’ ‘북파공작원이다’등 말들이 많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김씨는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정보기관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난 단지 기독교인으로서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갖고 활동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모교에서 영문과 교수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황 전 비서가 망명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당시엔 김 전 대통령에게 황 전 비서의 친서를 수차례 전달하며 중개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씨와 황 전 비서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95년 중국 신양에서 처음 대면했을 즈음이다. 김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황 전 비서가 자신을 처음 본 후 ‘남한에 이렇게 정직한 여자가 있느냐’고 언급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김씨는 1998년 12월 황 전 비서의 호적에 이름을 올렸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아버지와 딸’보다는 ‘동지’에 더 가까웠다. 김씨는 황 전 비서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황 전 비서의 안전가옥에도 자주 들렀다. 둘은 인연을 맺은 후 사소한 것부터 기밀적인 부분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피보다 진한 교감을 했다.

특히 황 전 비서는 망명 이후 김씨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기 전까지 “내가 심리적 안정이 안 되니 부녀의 연을 맺자.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이 내게 안정을 준다”며 간곡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에 대한 신뢰와 애착이 컸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황장엽 이름만 믿고 거액 베팅”
철저한 사전 계획 세운  사기극

일각에선 황 전 비서의 망명 중개를 시작으로 세상을 등지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꿋꿋하게 곁을 지킨 김씨에 대해 ‘황 전 비서가 남긴 거액의 유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김씨에 대한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했지만 측근들은 황 전 비서가 타계한 직후까지도 김씨를 대가 없이 황 전 비서의 곁을 지켜왔던 지고지순한 수양딸로 인식했다.

그러던 중 김씨는 황 전 비서의 별세 직후 두 얼굴을 드러냈다.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달라”며 살아생전 황 전 비서의 의식주 문제 등을 돌본 엄모씨를 상대로 9억원대의 재산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

김씨는 소장에서 “황 전 비서는 지난 2001년 10억여원이 들어있던 자신의 통장을 해지했고 그 중 9억원을 엄씨에게 전달했다. 황 전 비서로부터 9억원을 건네받은 엄씨는 그 돈으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 토지와 건물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황 전 비서가 남한의 경제사정에 어두웠던 점, 사회적 지위나 인지도 상 부동산 매매계약의 대상자로 섣불리 나서기 곤란한 입장이었던 점을 미루어 자신을 돌봐준 엄씨에게 대신 계약을 체결하도록 맡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부동산 구입당시 엄씨는 매매대금을 지불할 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다. 수상한 것은 엄씨가 계약한 해당 부동산의 잔금 지급 하루 전에 9억원이 들어있는 황 전 비서의 예금계좌 2개가 해약된 점이다. 평소 큰돈을 사용하지 않던 아버지가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엄씨 측에 거액을 지급한 것이 분명하다”며 “구입한 부동산의 소유권은 엄씨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매매대금은 부당하게 취득한 이득이므로 엄씨 명의로 돼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 토지와 건물의 실소유자는 아버지”라고 강조했다.

숨겨왔던 욕망
드디어 드러내

그런데 이 소송에서 제기된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엄씨가 그토록 황 전 비서 곁을 오랫동안 지켰으며 ‘둘이 과연 아무 사이도 아니었을까’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수양딸인 김씨보다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떠돌면서 각종 매체는 숱한 취재 끝에 엄씨가 황 전 비서의 사실혼 관계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황 전 비서보다 38세 연하인 엄씨는 측근에서 그를 돌보며 사실상 황 전 비서의 비서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수년간 같이 생활했던 엄씨와 황 전 비서 사이에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인 황 전 비서를 쏙 빼닮아 평소 황 전 비서가 늦둥이 아들 엄군을 무척 귀여워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엄씨는 입국 후 국가정보원 측이 추천한 비서 후보들 가운데 황 전 비서가 직접 선택한 여성으로 현재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하지만 황 전 비서의 호적에는 황 전 비서의 부인과 아들이 올라있지 않아 아들의 성은 ‘황’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1997년 망명 중개…이듬해 호적에 입적
사실혼 부인에 작고 후 9억대 재산 소송

황 전 비서가 사망하기 전 자신의 재산을 수양딸 김씨에게 상속하고 그 중 일부를 엄씨와 그의 아들에게 분배할 것을 부탁했다는 설도 나돌았다. 엄씨 측근은 한 언론에 “황 전 비서의 상속인은 수양딸이다. 황 전 비서는 사후 자신의 재산을 일단 수양딸에게 넘긴 뒤, 자신의 어린 아들과 부인에게 분배토록 약정서 같은 것을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언론에서는 황 전 비서가 남긴 상당한 유산으로 인한 수양딸과 사실혼 관계의 부인 간 분쟁 가능성도 제기했다. 황 전 비서의 사망 장소인 안전가옥이 국가재산이 아닌 개인소유지라는 말도 나왔기 때문에 재산싸움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전혀 사실무근이며 남한에 남겨진 가족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황 전 비서의 스캔들에 대해선 “국정원 내 안가에서는 모든 게 통제가 된다. 24시간 관리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어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고 악의적으로 유포한 것이다. 만약 아들이 정말 있다면 우리에게는 돌볼 책임이 있다. 어른을 부검할 때 구강 내 점막을 떼어놓았다. 언제라도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씨는 지난 4월 엄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결국 김씨가 엄씨와 그의 아들의 존재를 끝까지 부인한 진짜 이유는 ‘황장엽 체면 세워주기’가 아닌 ‘거액 유산 혼자 먹기’가 된 셈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황 전 비서가 엄씨에게 토지를 명의신탁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며 사실상 부부로 지낸 엄씨에게 재산을 증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남의 것 탐하다
망신살 뻗쳐


엄씨를 상대로 낸 9억원대 재산반환 소송과 아버지의 이름값을 빌려 재력가들을 상대로 벌인 30억대 사기행각. 분수에 맞지 않는 끝없는 욕심이 결국 파국을 불러왔다.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오랜 시간동안 고인을 모셔왔다고 자부한 김씨는 돈 한 푼 없이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아버지를 함부로 모함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쇠고랑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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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