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58)점점 지옥이 되는 집안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6.30 03:02:43
  • 호수 15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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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좀 드세요.”

엄마가 나직이 말하는 그 순간이었다.

“에잇, 저 쌍노무 새끼!”

쇠약한 아버지가 믿기지 않는 동작으로 미음 그릇을 낚아채 용운에게 내던졌다.

“엄마!”


피 빠는 요물

용운은 기겁을 하고 구석으로 피했다. 벽을 맞고 박살난 그릇 조각과 미음이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아니, 용운 아버지! 왜 그래요, 정말 미쳤어요?”

“왜라니? 임자두 듣잖았어? 저건 내 피를 빠는 요물이지 자식 새끼가 아니라지 않데?”

아버지는 가래 끓는 소리를 그르렁대며 씨근거렸다. 충혈된 붉은 눈에서 살기가 무섭게 뻗쳐 나왔다.

“분명히 알지도 못하면서 애 죽이려고 그래요? 쟤가 왜 요물이에요? 쟤는 당신 자식이에요!”

“뭐가 어째? 저 쌍간나 좀 보라니! 도사님 얘기를 빤히 듣구서두 지 새끼 감싸고 도는 걸 보니 저년두 똑같은 마귀 아니냐?”


“왜, 내 말이 틀렸어요? 그 사람이 도산지 알 게 뭐냔 말예요.”

“이 정신빠진 년아! 그 도사님이 우리랑 무슨 웬수를 졌다구 근거도 없는 소리를 하겠어? 좀 생각해 봐!”

“사람이 무슨 소린들 못해요? 그리고 그분이 진짜 도사라고 쳐요. 그렇다고 그 말이 꼭 맞는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엄마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물론 엄마도 괴신사에게서 받은 충격이 작진 않았겠지만 모성의 본능이 그것을 훨씬 능가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아버지는 달랐다. 한창 젊은 나이로 비명횡사하게 될 자신의 팔자가 믿기지 않는 듯, 그 후부터 용운이 눈에 띄기만 하면 독기를 품고 이를 갈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그 허약한 몸에 완력이 존재한다는 게 기이할 만큼 무서운 증오심의 발로였다. 간혹 이웃 사람이 알고 와서 아버지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봐, 도대체 왜 그러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깟 미신에 현혹돼 자식새끼까지 몰라보냐구?”

하지만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버지에게 그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자꾸 미신 미신 하는데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인류의 지혜가 들어 있단 말이야. 헛소리 하려거든 썩 꺼지라구!”

인류의 지혜가 들어있는 미신
“새하늘 빛을 모시고 신앙해야”

그런 아버지로 인하여 집안은 점점 지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에게 용운은 이미 자식이 아니었다. 엄마가 있다면 모를까, 아버지만 있는 방에 들어간다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얼마 후 그 노신사가 건들거리며 다시 방문했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물 한 그릇을 청해 받아 마시더니 퍽이나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인생만사 길흉화복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오. 우리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천상의 주님께 기도함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가 있소이다.”

“예수교에서 나오셨습니까?”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노신사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오. 예수교는 이미 본토인 서양에서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어요. 미국만 해도 지성적인 교인들은 어떤 허망감을 느끼곤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단 말씀이오. 우리는 참된 구원의 진리는 서양에 있지 않으므로 새하늘을 열어 나가자고 강조하외다. 그렇다고 동양의 낡고 닳은 하늘에 기대어 볼 수도 없는 게 현실이오. 그리하여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낡은 반쪽짜리 하늘을 초월하여 새하늘의 빛을 모시고 신앙하는 것입니다.”

노신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엄마와 아버지의 표정을 힐끗 살펴보더니 엄숙하게 읊조렸다.


청산(靑山)에 자라나는 생명나무의 씨알을 갈구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이제 마음의 눈을 뜨라. 허울뿐인 진리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 구속당했던 과거의 종교 율법의 쇠사슬을 끊고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라.

이제껏 천상 세계에서 이 땅을 굽어 살피시며 역사하시던 천령이 진실한 성전인 인간의 육신에 친히 거하셨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새로운 인간, 즉 신인(神人)이 탄생하려는 순간이 도래했도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인간은 성장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이제 그의 아들딸을 통해 만물을 그 앞에 복종케 하시고, 그 아들딸을 비롯한 만물 속에 거하려 하도다.

창조와 진화의 종점은 현재의 인생이 아니다. 원숭이로부터 인간이란 새로운 종족이 진화했듯 죄와 사망을 초극한 인신이 탄생한다.

실로 경이롭게도 성스러운 몸으로 변신한 초인의 등장이로다! 인간이 영혼의 실재와 만나 영생의 존재로 도약하는 위대한 재창조 앞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하늘에 거하는 신이 아니라 지상에서 성소를 찾은 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바야흐로 영혼의 실재와 만나 껍질을 벗고 우화등선하여 그대들도 모두 새로운 신인으로 탄생하라!

노신사의 눈은 이상야릇한 빛을 내며 희번득거렸다.

“지난번에 좋은 방도를 물으셨지요. 제가 새 빛의 영험이 깃든 주문을 알려 드릴 테니, 아침 저녁으로 지극정성 암송하면 효험이 있을 터입니다. ‘훔! 알라미 살라미 훔!’ 자, 엄숙한 마음으로 따라해 보세요!”

엄마가 먼저 어색한 발음으로 주문을 외자 뒤따라 아버지도 기운을 내어 훔! 훔! 하고 읊조렸다.

“모든 근심 걱정을 버리고 하나된 마음으로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읍내 삼거리에 새하늘 회당이 있으니 직접 나와서 교인들과 함께 기도하면 효험이 백배 천배가 될 터이니 꼭 나오세요.”

노신사는 팸플릿 한 장을 마루에 놓고는 홀연히 일어나 사립문을 나가 버렸다.

세례받는 의식

집에서 이른 새벽에 정한수를 떠 놓고 앉아 열심히 기도를 하던 엄마는 언제부턴가 어딘지 좀 변한 듯하더니 읍내의 회당으로 뻔질나게 나다니기 시작했다. 헌 하늘의 악귀들을 쫓아보내고 새하늘의 빛을 세례 받는 의식이라면서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 큰 잔치를 벌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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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