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새 대통령에 바란다 - 우봉식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누가 되든 큰 희망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정부의 가장 큰 화두였던 ‘의대 정원’ 문제가 새 정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지난해 의료계는 물론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문제가 또 한 번 변곡점을 맞는 모양새다. 동시에 오랜 시간 숨죽이고 있던 우리나라 의료계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의료 붕괴인가, 대변혁인가.

지난해 2월 윤석열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3058명으로 십수년 간 유지돼온 의대 정원을 단숨에 60%나 증원한다는 소식에 전공의, 개원의, 의대생, 의대 교수 등 의료계가 전부 들고 일어났다. 휴직, 사직, 휴학, 파업 등 의료계는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모조리 사용했다.

철학·돈 개념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를 언급하면서 ‘처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 1년간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얼마만큼 심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후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탄핵 정국이 시작됐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으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우봉식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윤정부의 의료정책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역대 정부의 의료정책 중 가장 나쁘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역사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면, 완전히 망가뜨렸기 때문에 새로 만들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정도”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의협의 정책을 생산하는 기관이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 협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그랜드플랜을 짜는 곳이다. 우 전 원장은 “의료정책에 원래 관심이 많았다. 이필수 전 회장의 선거 캠프서 핵심 참모를 맡았는데 이 전 회장의 당선 이후 의료정책연구원장을 하겠다고 자원했다”고 말했다.


우 전 원장은 일본을 많이 연구한 의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 의료제도의 시작과 발전 과정을 설명하면서 “정부 주도로 의료제도가 도입되고 시행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의사가 의료정책 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개혁의 주체가 다른 부분이 한일 양국의 의료제도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우 전 원장은 “일본은 1000엔권 표지 인물로 기타자토 시바사부로라는 의사를 새겼다.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의사로 감염병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일본이 과학자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성리학, 성리학 교조주의가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의대 정원 문제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관료제서 비롯한 경직된 조직문화를 지적했다. 관료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국가를 개조한 건 맞지만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문화가 너무 경직돼있어 AI 등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관료제가 국가 발전의 장애물이 된 상황이라고도 했다.

부실한 땅에 지진 왔다
고통의 시간 감내해야

우 전 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에는 세 가지가 없고, 세 가지가 부족하고, 또 세 가지가 과하다”고 말했다. 먼저 철학도, 정의도, 경제 관념도 없다면서 ‘3무(無)’를 언급했다. 그는 “전 세계 의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시장 경제 방식이 있는 반면, 영국은 사회주의 의료를 택했다.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진다는 개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영국은 국가가 의료와 복지를 책임지겠다는 일념으로 의료기관과 사회복지시설을 인수했다. 정부가 운영 주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유신정권 때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과정서 어떤 국민적 동의도 받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인 게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 전 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완벽한 사회주의다. 실제 사회주의 의료를 할 거였으면 국가가 투자해서 병원을 인수했어야 했는데, 우리나라는 공급자가 모든 걸 투자하는 구조다. 개업할 때 국가가 돈 내주나? 의대생에게 지원금이 있나? 전공의 수련할 때는 또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저수가, 저보험료, 저급여 등 ‘3저(低)’를 언급하면서 정부가 의사들이 비급여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상황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다른 돈벌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비급여라는 것이다. 우 전 원장은 비급여를 ‘인공호흡기’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요양병원협회 춘계 학술대회서 ‘차라리 국가에서 다 인수해 운영하라. 왜 우리(의사)한테 짐을 다 떠맡겨 놓고 너네(정부)는 규제만 하느냐’는 내용의 발언이 나왔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건물이 서 있는 땅 자체가 이미 부실한 상태인데 여기에 지진이 난 상황”이라고 다시 한번 꼬집었다.

세 가지 과한 부분, 즉 ‘3과(過)’로는 징벌, 규제, 포퓰리즘 등을 지목했다.

우 전 원장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거나 고의로 환자를 사망하도록 한 게 아닌데도 환자가 죽었다고 의사를 처벌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의사가 의학적 지식을 갖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불가항력이 있을 수 있다. 그것까지 처벌하는 건 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규제가 엄청나게 많다. 축구 경기로 비유하자면 선수 11명이 뛰면 주심, 부심 등 심판이 3명 아닌가. 현재 우리나라는 심판이 너무 많다. 심판이 많을수록 흐름은 끊기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규제가 많아질수록 침체하게 돼있다”고 말했다.

우 전 원장은 “정치인들이 의사를 득표의 도구로 보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대학병원이 수련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로 넘어간 ‘의대 정원’
또다시 변곡점 맞는 모양새

그는 “우리나라만큼 대학병원의 분원이 많은 나라가 없다. 대학병원은 병상을 늘려서 돈을 벌기 위해, 정치인은 치적을 쌓기 위해 전국 곳곳에 분원을 만든다. 이게 얼마나 포퓰리즘인가”라고 한탄했다.

우 전 원장은 이 모든 상황이 맞물려 의대 증원이라는 최악의 정책이 나왔다고 꼬집었다.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린다고 지역 의료가 활성화될 것도 아니고 필수 의료가 되살아날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것도 자신들을 교육하는 게 아니라 ‘노예’처럼 굴리는 현 시스템에 대한 분노 표출이라고 설명했다.

우 전 원장은 “지역 의사제를 할 게 아니라 지역 환자제를 해야 한다. 김대중정부 때 진료권을 없애면서 환자가 서울로 몰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현상을 타개하려면 환자를 지역에 묶어둬야 한다. 그러면 의사에게 지역으로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돼있다. 또 지역의 의료기관서 진료를 받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전 원장은 국민연금이 젊은 세대의 미래를 ‘삶아 먹으면서’ 지탱되고 있다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그 ‘시간차’조차 없다고 말했다. 재정이 고갈되면 즉각적으로 문제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비현실적이고 지탱하기 어려운 구도를 가져갈 수 없으니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학병원을 줄이고 수련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병원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미래에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전문의를 길러내는 곳이 돼야 한다. 전공의를 지금 당장 써먹을 일회용 접시 정도로 생각하는 지금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 우리나라 의료의 대가 끊기는 것”이라고 했다.

우 전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 의료 상황은 효율성이 제로다. 돈 있는 사람이 돈 쓰는 걸 막으면 안 된다. 그들이 쓴 돈을 가지고 의료 접근도가 낮은 20%를 확실하게 돌보는 게 더 낫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는 유명한 의사를 만나기 위해 돈을 낸다. 사회주의 국가는 어떨까? 권력을 쓴다. 어떤 게 더 정의로운가”라고 강조했다.

정의도 없다

하지만 우 전 원장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다고 털어놨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현 상황에 이르는 과정서 발생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가가 감당해야 할 게 많아질수록 국민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도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 상황이) 별로 희망적이진 않다”고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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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