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연루’ 정보기관 와해 시나리오

‘윤과 교감’ 이참에 없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보기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에 시달렸다. 조직 규모와 권한이 축소됐다가 회복되는 등 탈이 많았다. 정보기관 입장서 현 시국은 매우 민감하다. 안보 불안정과 함께 조직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 ‘개편’이라는 밀명하에 조직이 와해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12·3 내란 사태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만큼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필요한 조치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지만 우려도 공존한다. 오히려 정보기관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도 높은
정보 통제

민주당은 국군정보사령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추진 중이다. 정보사 예산과 훈련 내용 등의 비공개 필요성을 따져 국회 보고 범위를 넓히는 것이 개혁안 골자다. 정보사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를 현 정보위원회서 국방위원회로 옮기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간 정보사는 대북·해외 비밀공작을 맡으면서 파악한 정보를 극비로 분류해 정보위에 제한적으로 보고해 왔다. 민주당은 정보위와 달리 공개회의로 이뤄지는 국방위로 상임위를 변경하면, 정보사 운용의 투명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보사 예하 부대 등의 훈련 내용을 국회 등에 사후 보고하도록 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정보사 훈련 내용과 편제·부대 위치·병력 현황 등 세부 내용은 특수 2급 군사기밀이다. 정보사 예산 편성 등으로 제어장치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보사 예하 북파공작대(HID) 활동도 보고 대상에 포함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정보부대 특성을 고려해 공개 범위를 조정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군방첩사령부도 컨트롤 대상이다. 민주당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 방첩사의 주요 기능을 세 개로 쪼개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사는 군내 정보 보안과 감찰, 방첩, 신원 조사, 동향 파악 등을 담당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로 군 내부서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민주당서 검토된 아이디어는 방첩사의 정보 보안 기능을 국방부 정보본부로, 감찰 기능은 국방부 감사관실로, 방첩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에 추가 임무를 주는 방식으로 이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첩사는 1977년 창설된 국군보안사령부를 모태로 한다. 보안사는 신군부 권력 장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보안사는 1990년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의 여파로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령받은 방첩·정보사 관리·감독 강화
“개혁 아닌 사실상 권한·조직 축소 방향”

기무사는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다시 권력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개혁 대상이 됐다. 댓글 공작 사건, 세월호 민간인 사찰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친위 쿠데타를 검토했다는 이른바 ‘계엄 문건’ 의혹이 확산하면서 국군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도 대폭 축소됐다.

당시 정부는 ‘해체에 준하는 개편’이라며 해편이라는 표현을 썼다.


안보지원사로 바뀔 당시 기무사는 육·해·공군서 파견된 4200명의 소속 인원 전부를 원소속 부대로 돌려보냈고, 불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인원을 중심으로 부대를 재편성했다. 정치 개입과 민간 사찰이 금지되면서 수사권은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기무사 해편 과정서 방첩 역량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해 2022년 안보지원사를 방첩사로 다시 확대 개편했다. 윤 전 대통령의 계획대로 방첩사는 인력 규모를 3000여명 수준까지 늘리기로 계획하고 원복했던 부대원 수십명을 다시 불러들였다.

기무사에서 나간 인원 중 일부는 군무원으로 신분을 바꿔 돌아오기도 했다. 지난 2020년 안보지원사 첫 군무원 경력 공개 채용이 진행됐지만, 합격자 150명 중 기무사에서 근무했던 전직 부대원은 30명이었다. 경력 지원 자격을 ‘정보수사기관서 군사정보·군사보안·방첩 업무를 한 인원’으로 한정해 결국 같은 사람들이 군무원으로 다시 들어온 셈이다.

특히 외부인 비율을 높여 조직을 쇄신하기 위해 부대령에 넣었던 민간인(군무원) 30% 이상 강제 조항도 폐기했다. 실제 국방부는 ‘국군방첩사령부령 일부개정령’안에 포함된 군인·군무원 인력 비율 조항을 제외했다. 입법 예고안에는 포함됐던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구도 빼버렸다.

정치 외풍
도돌이표

입법 예고 당시 개정령안은 방첩사의 신설 지원 업무를 ‘대테러, 통합방위 지원’으로 표기해 민간인 사찰 우려를 지적받았다. ‘통합방위’는 총력전 개념에 따라 국가를 방위하는 것으로, 통합방위법에 따라 국군, 경찰청·해양경찰청,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예비군, 민방위대 등을 포함한다.

대공 수사권을 잃어버린 국정원도 야권의 정보기관 개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국정원은 내부에서는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정황만 있을 뿐 직접적으로 가담한 물증은 없어 타 정보기관에 비해 자유롭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외치던 ‘국정원 대공 수사권 부활’에 희망을 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대공 수사권이 폐지되면서 방첩 수사 역량 공백을 메우려 애썼다. 현재 시행 중인 국정원의 시행령 개정이 그 핵심이다. 국정원은 대통령령인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 규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제정안은 ▲국정원이 법령상 직무 범위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방식 열거 ▲안보 범죄 등 대응 업무의 원활한 수행과 협조 체제 유지를 위한 유관기관 협의회 설치 ▲합동수사기구 참여 등 각급 수사기관과 협력 등이 골자다.

또 ▲보안대책 및 결과 처리의 통보 ▲안보범죄 등에 효율적 대응을 위한 교육 및 필요한 경우 국정원에 위탁교육 의뢰 등 내용도 담겼다.

이 외에도 2023년 말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이 심의·의결됐다. 해당 시행령은 중요 정보사범, 즉 내란·반란·이적·군사기밀누설·국가보안법 위반 등 공안 사범의 신병 처리(8조 1항)나 공소 보류(9조 1항) 과정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기존 조항은 “의견을 듣는다”로 수정됐다.


공작 활동
올스톱?

이 규정은 국정원이 대공 수사에 개입·관여하는 초월적 권한을 행사할 근거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이 ▲정보 사범의 신문과 신병 처리, 공소 보류 결정 등에 대해 반드시 국정원장 조정을 받고 ▲경찰의 기소 의견 송치·불송치 결정을 뒤집을 때도 국정원장과 협의하도록 강제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사와 입건, 기소, 재판 결과 등을 국정원에 통보하도록 강제하고, 탈북·망명자를 신문할 때 국정원장 조정을 받도록 하는 규정은 그대로다. 국정원의 정보 수사 조정권의 근거 조항의 골격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덕분에 국정원은 지금도 안보수사협의체 등 합동수사기구를 통해 검경의 대공 수사에 관여 중이다.

국정원 출신 한 관계자는 “정권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서 확답하기엔 이르지만 정보사와 방첩사가 사실상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커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며 “계엄이 유지됐다면 국정원도 참여할 수밖에 없다. 해제 이후 국정원도 개혁 대상으로 꼽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내란 사태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는지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의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 조태용 국정원장과 홍장원 전 1차장의 갈등 외에도 <일요시사> 취재 결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복수의 국정원 간부들에게 연락했던 게 핵심이다.

여 전 사령관은 홍 전 1차장과 통화한 이후 국정원 방첩 담당 간부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여 전 사령관이 국정원에 파견 요청을 한 인원은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이었다. 방첩사 관계자들은 내란 사태 이전부터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국정원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미팅을 해 왔다.


정권 바뀔 때마다 간판 바꿔가며 시련
국정원도 대상 “조직 내 분위기 민감”

정보기관 관계자는 “방첩사와 국정원 간 교류·협력은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 통상적인 업무다. 간첩 조사나 대공 수사와 관련된 첩보를 넘겨받거나 확인 과정을 거치려면 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은 당시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국정원 방첩 업무 담당자들은 본래 지난 2022년 말 신설된 대북방첩센터에 소속돼있었다. 센터는 2023년 7월 해체된 이후 2차장 산하 대공 수사국에 다시 편입됐다.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정보사와 국정원 등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지만 역으로 정보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됐으나 제대로 된 수사 성과가 없었기에 정보당국의 권한 및 역할 축소는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출신 한 전문가는 “정보사와 방첩사는 대북 공작 업무와 관련해 수시로 국정원과 소통한다. 국정원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정보사와 방첩사가 해낼 때도 있는데 이들 기관에 대한 권한 축소는 조직 와해와 같다. 차라리 간첩법부터 강화하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

“간첩법
손봐야”

일명 간첩법은 형법 제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