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 남자’ 급 들이댄 노림수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4.07 16:42:39
  • 호수 15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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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없다고 욱?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야권 주도로 국회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되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라디오 방송에 직접 출연해 사의를 표명한 비화를 언급했다. 이 원장은 대세에 반발하면서 갑자기 튀어나와 존재감을 드러낸 세 번째 전직 검사가 되는 걸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하 권한대행)이 지난 1일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야권 주도로 지난달 13일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 추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병행 개최 의무화 등 내용으로 구성됐다.

의외의 반발

한 권한대행은 “상법 개정안은 대다수 기업의 경영환경 및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어 고심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적극적 경영활동을 저해할 소지가 크다”며 “일반 주주 보호에도 역행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권의 비난은 예정된 순서였다. 하지만 의외의 인물이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전부터 “거부권 행사는 직을 걸고라도 막겠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사의를 표명했다. 의미심장한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비판을 이어나갔단 사실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취지의 비화를 밝혔다. 그러면서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전화로 사의를 만류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최 부총리와 이 총재가 이 원장의 사의를 만류한 취지는 “시장 상황이 너무 어려운데, 금융감독원장이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이 원장이 비화를 언론에 직접 밝혔단 것과 스스로 “공개된 자리서 다 얘기할 건 아니다”라고 전제했단 사실이다. 현직 금융감독원장이 야당 주도로 통과된 법안에 우호적인 입장을 제시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사의를 거론한 정황을 언론에 직접 공표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다.

또 이 원장은 “윤 전 대통령이 계셨더라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상법 개정안 거부권에 ‘사직서’
갑자기 튀어나와 존재감 드러내

이 발언도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야권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계속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김상훈 정책위의장 주도로 적용 범위를 줄일 수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준비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준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핀셋 규제’ 형식으로 구성돼있다. 개정안엔 ▲주주 보호 원칙 특별 규정 신설 ▲합병 가액 산정 시 기업가치 실질 가치 반영 ▲물적 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공모 신주 최대 20% 배정 등 내용이 담겨있다.

적용 범위도 상법 개정안보다 대폭 줄였다. 상법 개정안은 100만개가 넘는 전체 주식회사 법인에 적용되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2464개에만 적용된다.


이 원장은 인터뷰서 “정부가 준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도 범위가 조금 제한됐을 뿐 원칙이 비슷한 내용이 담겨있다”며 “주주 보호 원칙을 이미 추진하고 있는데, 모양이 조금 다른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거부권까지 행사하느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 발언의 요지는 “정부도 결이 비슷한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모양이 다소 다르단 이유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모순이 된다”는 것이었다.

야권이 상법 개정안을 강하게 준비하고, 국민의힘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해 대기업에 어느 정도는 주주 보호 원칙을 요구하는 개정안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언급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20년 LG화학의 핵심이었던 전지사업본부를 물적분할해 설립한 회사로서, LG화학의 주가가 급락해 주주들이 큰 손해를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와 합병했고, SK E&S 주주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이 산정돼 손해를 입었단 논란이 이어졌다.

두산그룹도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서 두산밥캣을 분할한 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려다가 철회했다. 그 당시에도 제기됐던 논란은 두산밥캣 주주에게 불리하고, 두산로보틱스 주주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이 산정됐단 것이었다.

지난 2015년 진행됐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후 재계서 비슷하게 이어졌던 논란이었다. 이후 야권이 상법 개정안을 통해 적용하려던 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구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것이었다.

“경거망동 안 된다” 만류
다음 행보 주목되는 이유?

아울러 이 원장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도 “상법 개정안을 너무 서두르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남겼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오는 5월경 국회 정무위서 통과되면, 어차피 법사위에 두 개정안이 모두 모인다”며 “재계는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반대하니, 일방적으로 상법을 통과시키면 자본시장법 개정안조차도 거부할 핑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직접 라디오 방송까지 출연했던 이 원장의 반응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이 원장이 정계에 진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 경험 때문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는 윤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시절 진행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고, 이 원장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이었다. 특히 이 원장은 기소를 강행한 수사팀 내 강경파로 통했다.

아울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이들이 모두 참여했던 최순실 특검의 삼성 관련 수사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을 일컬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계 작업 중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제1심과 항소심서 연이어 전부 무죄 판결을 했다. 이 원장은 지난 2월 서울고법의 항소심 무죄 선고 이후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가 법 문헌 해석만으론 주주가치 보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니, 자본시장법 개정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주장도 남겼다.


이 원장으로선 검사 시절 성과가 사법부에 의해 부정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또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는 등 새로운 국면이 열린 현 상황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제3의 출현?

조기 대선이 진행되기 때문에,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이 원장이 원하는 대로 처리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또 금융감독원장 직책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물론 분명한 것도 하나 있다. 대세에 반발하면서 갑자기 튀어나와 정치적 입지를 굳힌 전직 검사를 이미 2명이나 봤다는 사실이다. 이 원장의 존재감은 이 원장 스스로 행보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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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