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이니텍 ‘무자본 M&A’ 논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4.03 15:21:09
  • 호수 1525호
  • 댓글 0개

돈 냄새 맡은 기업사냥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연이은 구조조정으로 자살 소동까지 벌어진 KT가 신생 사모펀드에 자회사 지분을 매각해 논란을 키웠다. KT는 상장사 이니텍이 모회사 케이티디에스(KT ds)와 업무가 겹친다는 이유로 지분 매각에 나섰었다. 인수 협상할 기업이 없으니 사모펀드에 넘긴 상황이다.

인수합병(M&A) 업계 관계자는 이니텍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KT ds의 매수자 검증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로이투자파트너스(로이)와 사이몬제이앤컴퍼니(사이몬) 컨소시엄(PEF)은 인수 자금을 증빙하지 못하는 등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었다.

과정 보니···

지난해 10월 KT ds는 이니텍을 시장에 내놨다. 당시 KT ds는 이니텍 지분 57%를 매각하기 위해 원매자들을 대상으로 복수의 인수의향서를 받았다. 이후 매도 측은 건설사가 컨소시엄으로 들어간 잠재적 투자자와 우선적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다만 이 원매자는 주요 투자자였던 건설사의 의향이 시들해지면서 우선협상자의 몫은 넘어갔다.

최종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로이와 사이몬 컨소시엄에 대해 시장에선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로이는 2013년 설립된 다담인베스트먼트의 후신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투자사였지만, 사이몬은 지난해 5월 설립된 신생 하우스로 실적이 전무하다는 점에서다.

대형 사모펀드(PE)들도 펀딩이 쉽지 않은 상황서 신생 PE가 600억~800억원 규모의 딜을 성사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다. 이니텍 입찰에 참여했던 일부 원매자는 “거래종결(딜클로징)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매각 측에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선협상자 선정 이후에도 로이·사이몬 컨소시엄은 인수 자금을 증빙하지 못하는 등 조달에 난항을 겪었다. 이에 서울PE, 유니베스트투자자문과 손잡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 2월 협의 과정서 이견이 발생해 컨소시엄은 와해됐다.

사이몬에 정체불명의 자금이 유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이에 로이·사이몬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결국 KT의 책임론이 거론됐다. KT ds는 검증에 철저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성보다 매각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을 받았다. KT ds가 진행한 이니텍 매각에는 새 주인의 자금 조달 능력과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준비가 됐는지에 대한 고민이 빠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금에 군침 흘리는 외부 세력
몽땅 빌린 돈으로 인수하는 꼴

상장사 중에는 기업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킨 뒤 내부 자산을 빼돌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숨어 있는 누군가가 바지사장을 내세워 횡령하는 경우도 있다. 그 피해는 당장 기업의 임직원과 소액주주가 떠안아야 한다.

이니텍은 1000억원의 현금을 가진 데다 금융보안 분야서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다. 이런 강점 덕분에 입찰에서는 사모펀드 등 투자사가 아니라 일반기업인 전략적투자자(SI)를 포함한 다수의 매수인이 관심을 보였다.

이니텍의 매각은 서울PE와 로이·사이몬 간의 법정 다툼으로 확산됐다. 이니텍은 2021년 8월 KT의 자회사 KT ds에 편입됐고 특별 관계자인 에이치엔씨네트워크가 갖고 있던 지분 중 30%를 KT ds에게 넘긴 구조다.


앞서 지난 1월22일 이니텍은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거래에 관한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 체결의 건’을 공시했다. 최대주주 KT ds 주식 593만7275주와 에이치엔씨네트워크 주식 534만2794주 합 1128만69주식, 지분율 57%를 로이·사이몬에 841억4500만원, 즉 주당 7460원에 전량 매각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같은 날, 로이와 사이몬은 유니베스트 투자자문과 서울PE를 투자자로 한 주주 간 약정서를 작성했고 실사 이행 보증금 25억5000만원을 지급했다. 서울PE는 이행 보증금과 인수 대금 중 150억원을 지불키로 했는데 주주 동의 없이 2차례 의사 번복을 거쳐 단독 인수 의사를 밝힌 상태다.

유니베스트투자자문은 인수 대금 200억원, 로이·사이몬이 공동으로 50억원을 분담하고 나머지는 금융회사 자금으로 충당할 예정이었다. 이니텍은 2024년 3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 861억원과 투자 목적 부동산 34억원 어치를 소유하고 있어 기업 사냥꾼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특히 사이먼의 대주주가 M&A 계약 체결 하루 전날인 지난 2월27일 유상증자를 통해 변경되면서 사모펀드가 인수 대금 조달을 위해 쌍방울 측에 손을 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쌍방울은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언급된 조직폭력배(전주 나이트파) 출신 김성태 전 회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다.

지난 2023년 해외 도피 중 태국 방콕의 한 골프장서 체포된 김 회장은 지난해 7월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1심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해당 사모펀드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1심서 유죄가 선고된 김 전 회장을 출처로 한 투자금이 유입됐다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주간조선>에 따르면, 자금을 대기로 한 투자자문사 측이 지난달 12일 KT ds와 매각 주관사인 삼정KPMG 등을 상대로 쌍방울 자금 유입과 관련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는 공문까지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베스트 고위 관계자는 “사이몬을 통해 지급된 계약금이 코스닥 비투엔(b2en)의 관계사를 거쳐 유입된 것으로 안다”며 “이니텍 임원으로 선임된 명단에는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의 사외이사를 지낸 이모씨가 있다”고 말했다.

실적 전무 사모펀드가 800억원을?
쌍방울과 ‘사채’ 투입 의혹 제기

이와 함께 이니텍 새 이사진에 김 전 회장 등과 2001년 게이트 사건의 주인공인 이씨와 밀접한 인물들이 다수 포함됐다고 언급했다. 당초 서울PE와 유니베스트 투자자문이 자금 조달자로 나서고 유니베스트가 계약금 26억원, 서울PE가 58억5천만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사이몬은 LP 자금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제3자 자금 58억5000만원과 서울PE의 이행 보증 자금 25억5000만원을 합해 이니텍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면서 로이·사이몬은 지난 2월12일, 24일 두 차례에 걸쳐 내용증명과 공문을 통해 주주 간 약정서에 명시된 대로 ‘서울PE는 주요 자금 조달자일 뿐, 본인들이 이니텍의 매수인’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주인이 바뀐 이니텍이 신규 선임을 추진 중인 이사진 명단에는 쌍방울그룹의 SI 계열사 비투엔 이사로 있는 인사가 2명이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규 사외이사 후보에 오른 김모씨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뉴미디어 비서관을 지낸 인사로 쿠팡 부사장 등을 거쳐 지난 1월 비투엔 이사로 선임됐다.


상근감사 후보로 오른 또 다른 김모씨 역시 축구선수 매니지먼트 기업인 ‘일레븐매니지먼트 코리아’ 대표 등을 지내고 지난 1월 비투엔 이사로 신규 선임된 바 있다.

두 후보는 지난 1월 비투엔 임시주주총회서 임기 3년의 이사로 동시 선임됐는데, 이니텍의 신규 이사와 감사 후보로도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니텍 인수에 비투엔의 모회사인 쌍방울 자금이 유입됐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비투엔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 시스템을 위탁운영한 SI 업체로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 한동안 구설에 올랐던 곳이기도 하다.

이니텍의 한 관계자는 “해당 후보들이 주총에 앞서 약력서 비투엔 이력을 지워줄 것을 요청했다”며 “쌍방울과 관계된 이력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매각 관련 잡음에 지난달 19일 열린 임시이사회서도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KT의 금융 보안 계열사인 이니텍은 KT ds의 자회사다. KT의 손자회사 격인 이니텍은 1997년 창업한 IT 금융 보안 기업이다. 2011년 KT 계열사로 편입됐고 온라인뱅킹 등과 관련해 국내 다수 금융사들에 금융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T의 자회사인 케이뱅크와 BC카드를 비롯해 국민·우리·신한·농협·수협 등 주요 금융사는 물론 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등 주요 공공기관을 고객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사진 포진

BC카드의 자회사 에이치앤씨(H&C)네트워크는 이니텍의 지분 각각 30%와 27%를 갖고 있었다. 사실상 KT가 57% 지분을 갖고 대표이사 선임 등에 있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회사였다. 순항하던 매각 작업과 달리 사모펀드들의 각종 문제가 불거지자 “무자본 M&A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이는 주가조작 작전 세력이나 기업사냥꾼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다. 무자본 M&A 의혹을 뒷받침하듯 이니텍 인수에 나선 해당 사모펀드는 인수 자금을 빌려주기로 한 일부 투자파트너와 투자금 반환과 관련한 소송에도 휘말린 것으로도 확인됐다.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